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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폭발 부상자 "목숨 건졌지만 배우의 꿈은 사망했습니다"



사회 일반

    K-9 폭발 부상자 "목숨 건졌지만 배우의 꿈은 사망했습니다"

    K-9 사고로 전신 55% 화상 이찬호씨 전역
    목숨 건졌지만 화상치료는 '또다른 지옥'
    5번 대수술 받고도 도움없이 생활 불가능
    평생 해야하는 화상치료, 지원비로 될지 막막
    가정도 무너져…보훈 제도 있지만 개선 원해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찬호(예비역 병장)

     

    작년 8월 18일 철원의 한 육군부대에서 K-9자주포 폭발사고가 났습니다. K-9 자주포는 쉽게 말하면 탱크라고 여러분 보면 되는데요. 이 사고로 군인 3명이 숨지고 4명이 큰 부상을 당했었죠. 그 당시 크게 보도가 됐었습니다마는 그 후로는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갔죠. 당시 몸 55%에 화상을 입었던 이찬호 씨, 배우를 꿈꾸던 청년 이찬호 씨는 여전히 혼자서는 병뚜껑도 따지 못할 정도의 그런 상황이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병상에서 군생활을 마쳤어요. 이찬호 씨.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오늘 직접 연결을 해 보려고 합니다. 이찬호 씨 만나보죠. 안녕하세요?

    ◆ 이찬호> 안녕하세요. 이찬호입니다.

    ◇ 김현정> 아직도 병원에 계시는 거죠?

    ◆ 이찬호> 네, 사고 이후로 9개월째 계속 병원에 입원해서 5번의 수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 김현정> 상병일 때 사고를 당하셨는데 병장 시절을 다 병상에서 보내고 지난주에 전역을 하셨어요.

    ◆ 이찬호> 네, 맞습니다.

    ◇ 김현정> 4월 전역이던 걸 한 달 미뤄서 지금 5월에 이렇게 전역을 하게 됐어요. 보통 전역하면 축하인사를 건네야 정상인 건데 우리 이찬호 씨는 몸 상태를 생각하면 전혀 지금 그럴 상태가 아닌 거죠?

    ◆ 이찬호> 네. 지금은 후유장해 진단을 받은 상태고 전역하고 나서도 병원에 계속 있으니까.

    ◇ 김현정> 그러니까 지난 8월에 K9 자주포 사격 훈련을 하다가 그게 폭발을 한 건데 온몸에 55% 화상 외에도 안와분쇄골절, 코와 광대뼈 골절, 시력 저하, 안구 함몰 복시 현상. 지금 제가 쭉 자료 조사한 것만 해도 이렇더라고요. 이게 어느 정도 상황이었던 거예요?

    ◆ 이찬호> 그때 압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까 원래는 40kg짜리 탄을 40km을 내보내기 위해서 쓰는 그 화약을 저희가 다 오로지 몸으로 견뎌낸 거죠. 3개가 터졌어요, 그게.

    ◇ 김현정> 3개가?

    ◆ 이찬호> 네, 3개의 화약.

    ◇ 김현정> 40kg짜리 탄약을 40km를 보낼 정도의 그런 압력을 받으신 거예요?

    ◆ 이찬호> 그렇죠. 그러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죠.

    ◇ 김현정> 그러니까 그때 3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4명이 부상을 당한. 그러니까 목숨만 건진 것도 그 당시로서는 다행이다 할 정도였네요.

    ◆ 이찬호> 네, 목숨만 건진 것도 다행이죠.

    (사진=청와대 청원게시판 캡처)

     

    ◇ 김현정> 그런데 그 뒤로 따라오는 고통이라는 것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들었어요. 특히 화상 치료라는 게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면서요.

    ◆ 이찬호> 그렇죠. 눈 떠보니까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지더라고요. 화상 치료는 온몸에 상처 난 부위를 쇠수세미로 긁는 고통이었어요.

    ◇ 김현정> 상처가 이미 나 있는데 거기에 쇠수세미를 긁는 기분?

    ◆ 이찬호> 그런 고통이라고들 말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말에 되게 공감을 많이 하고 눈물과 신음으로 버텼죠, 그냥.

    ◇ 김현정> 그런데 사실은 화상이 몸의 10%만 돼도 엄청 고통스럽다고 들었는데 55%면 반이 넘는 거잖아요, 전신의.

    ◆ 이찬호> 그렇죠. 온몸이 붕대였고요. 팔, 다리, 배, 등, 엉덩이까지 심지어. 화상 부위가 넓었죠.

    ◇ 김현정> 눈물 없이는 지새울 수 있는 밤이 없었겠어요.

    ◆ 이찬호> 그렇죠. 어떻게 버텼는지도 지금은 상상이 안 가요.

    ◇ 김현정> 상상이 안 갈 정도로. 8개월간 그렇게 5번 수술을, 대수술을 하고 매일 치료를 하고 그런데도 여전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합니까?

    ◆ 이찬호> 현재 밥 먹는 것도 그렇고 자는 것도 그렇고 저 혼자서는 불편함이 있죠.

    ◇ 김현정> 그럼 누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어요, 지금?

    ◆ 이찬호> 어머니와 형이 간호 중이십니다.

    ◇ 김현정> 그러면 몸과 마음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지금 경제적으로는 어떡하나 이 걱정이 되네요.

    ◆ 이찬호> 사실 그 부분을 배제할 수 없는 게 2년 이상 꾸준한 치료를 제가 받아야 되고 어떻게 보면 평생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의사 선생님이. 제가 (상이) 등급을 받아도 지원을 받아도 그 돈이 턱없이 부족해서 개인 사비가 계속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거든요.

    ◇ 김현정> 그러니까 지금 군에 있을 때까지는 치료비 전액을 다 군에서 지원을 해 준 건데 그렇죠? 지금 전역 후에도 6개월은 전액 지원, 국방부에서 해 주는 거 맞죠.

    ◆ 이찬호> 맞습니다.

    ◇ 김현정> 그 안에 치료가 말끔히 돼서 회복이 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마는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게 걱정이 되는 거예요.

    ◆ 이찬호> 맞아요. 전역 후 6개월이면 아마 이번 연도까지인데 일단 수술을 하는 게 제 살을 떼서 하는 거기 때문에 제가 (화상) 범위가 워낙 넓다 보니까 뗄 곳이 없어요. 그러니까 뗀 데를 또 떼야 되는 상황이 되는데 그 뗀 곳이 상처도 아물고 이제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시간을 기다려야 되고.

    ◇ 김현정> 그러니 올해 안에 이 치료가 끝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이 걱정을 하시는 거네요.

    ◆ 이찬호>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국방부의 지원은 끝납니다마는 군에서 이렇게 사고 당한 분들에게는 보훈처의 지원이 있지 않아요?

    ◆ 이찬호> 보훈처의 지원이 어떻게 될지 제 입장에서는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모험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 김현정> 그런데 상이등급 심의 판정을 일단 받으면 그 상이등급에 해당하는 보상금 나오고 치료비 나오고 또 학비, 취업 지원 이런 것도 다 되는 거 아닙니까?

    ◆ 이찬호> 일단 지원금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가 전신 55%이기 때문에 3등급 정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보상금 3등급이면 200만원 초반대이기 때문에 많이 걱정을 하고 있죠, 집에서도.

    ◇ 김현정> 그러니까 이게 과연 보상금으로 충분한가. 국가를 위해서 군에 갔다가 이런 상황이 돼서 나왔는데 월 보상금 200만원 정도가 충분한가. 이것에 대해 일단은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말씀이시고. 게다가 화상 전문 치료를 받아야 되는데 화상 전문 치료에 대해서는 이게 지원이 되는가. 이것도 아직 아리송한 건가요?

    ◆ 이찬호> 그렇죠. 아무래도 화상 전문 치료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상태고 저희 집안도 많이 무너졌기 때문에 충당하기는 부족한 게 있죠.

    ◇ 김현정> 학교를 다니다가 지금 군에 간 거잖아요.

    ◆ 이찬호> 네, 맞습니다.

    사고 전, 후 모습 (사진=페이스북)

     

    ◇ 김현정> 복학은 또 언제 해야 되나. 이런 막연함도 좀 앞의 미래에 대한 막연함도 좀 있겠어요.

    ◆ 이찬호> 일단 제가 대학교를 연극영화과를 나왔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예술고등학교 가고 예술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됐는데 학교도 다닐지 말지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사실상 이게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문제가 많이 되죠.

    ◇ 김현정> 그렇죠. 배우라면 사실 외모가 중요한 부분인데 일상으로는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화상 흉터라는 게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으면 꿈에는 큰 장애가 생긴 셈이네요.

    ◆ 이찬호> 이미 꿈은 접었죠, 어쩔 수 없이. 흉터는 평생 간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죠.

    ◇ 김현정> 그런 데서 오는 두려움과 울분과... 솔직히 그런 게 있을 것 같아요.

    ◆ 이찬호> 꿈이 사망한 거니까 상실감이 너무 크죠, 아무래도. 다시 꿈꾸기도 힘들고.

    ◇ 김현정> 지금 경제적인 것도 고민이 되고 또 몸의 고통도 문제지만 정신적으로도 미래에 대한 불안함. 이게 다 겹쳐 있는 상황으로 그냥 군에서 덜렁 전역을 한 거예요.

    ◆ 이찬호> 그렇죠.

    ◇ 김현정> 나라 지키러 갔다가 결국은 나라가 운명을 바꿔버린, 한 청년의 운명을 바꿔버린 셈인데 전역을 한 지금 이 순간 제일 힘들고 제일 걱정되는 건 개인적으로 뭔가요?

    ◆ 이찬호> 이 사고는 제 사고이기는 하지만 온 국민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다시 이런 피해자가 생길 수 있고 누군가의 오빠, 누군가의 형, 누군가의 애인이 될 수 있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제도 개선이 많이 돼야 될 것 같더라고요.

    ◇ 김현정> 그래요. 국가가 보상을 해 주지 않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 보훈처에서 상이등급에 해당하는 어떤 보상 조치를 지금 취하고는 있지만 이찬호 씨가 보기에는 그게 굉장히 듬성듬성하다. 아니, 뭐 나라를 위해서 갔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지 않느냐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 개인으로서는 화나는 일이다. 이건 뭔가 불합리하다. 이런 생각을 하신단 말씀이에요.

    ◆ 이찬호> 그렇죠. 아무래도 한 가정이 무너졌다고 생각해 보시면 적당한가, 부족한가를 생각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가정이 무너졌다고 하셨는데 간병을 어머니하고 형이 하면서 어떤 상황이 된 거예요?

    ◆ 이찬호> 부모님이랑 형은 원래 하시던 일이 있었는데 저 때문에 다 포기를 하시고 간병을 계속해 주고 있습니다. 중간에 패혈증이 와서 사망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순간도 있었는데 다행히 부모님이 밤을 꼴딱 새시면서 같이 옆에서.

    ◇ 김현정> 눈물의 간호를 하신 거죠.

    ◆ 이찬호> 그렇죠.

    사고 전 모습

     

    ◇ 김현정> 군에 아들을 보냈다가 사고를 당하고 아들의 인생뿐만 아니라 지금 온 가정이 무너져 있는 상황. 국가에서 보상을 해 준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적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든다는 말씀이세요. 지금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이찬호 씨, 이찬호 병장에 대한 청원이 올라가 있는 상태더라고요. 우리가 이번 기회에 국가 보훈에 대한 제도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찬호 씨 힘내시고요. 하루빨리 회복돼서 아까 흉터 때문에 배우의 꿈은 지금 사망시킨 상태입니다라고 하셨는데 그 꿈 저는 다시 살리셨으면 좋겠어요.

    ◆ 이찬호> 그랬으면 좋겠죠.

    ◇ 김현정> 꼭 그렇게 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이찬호>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

    ◆ 이찬호> 감사합니다.

    ◇ 김현정> 지난 주에 결국 전역을 했습니다.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몸 55%의 화상을 입었던 이찬호 씨. 지금의 상황 살펴봤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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