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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트럭 모는 北 청년 "얘들아, 북한 만두 먹어봐했더니…"



사회 일반

    푸드트럭 모는 北 청년 "얘들아, 북한 만두 먹어봐했더니…"

    [탈북청년 남한 정착기] 과천 경마공원서 푸드트럭 운영하는 김건웅씨

    50대가 된 내가 30년 전 나에게 편지 한 통을 쓸 수 있다면 무슨 말을 전할까? 주저 없이 짐을 싸들고 여행 가기, 과감한 머리스타일 도전하기. 차마 용기가 안 나 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곤 할 것이다. 푸드트럭 '모락모락'을 운영하는 청년 사업가 김건웅(24·가명)씨의 대답은 소박하지만 특별했다.

    "30년 후의 제가 지금의 제게 편지를 쓴다면 저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나쁘게 생각할까봐 지금도 겁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여서 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도 되고요."

    (사진=우리온 제공)

     

    ◇ 사업가의 꿈을 안고 남한으로

    함경북도 청진에 살던 건웅 씨의 꿈 중 하나는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었다.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로 접한 남한 사람들의 모습은 건웅 씨에게 인상적이었다.

    "남한 드라마 주인공들은 풍족한 집안에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이사, 회장님들이 많잖아요. 북한에서 승용차는 시장 같은 높은 지위의 사람들만 타고 다니기 때문에, 능력이 있어도 마음대로 차를 운전하기 어려워요. 저도 남한에 와서 열심히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죠. 사업가가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어요"

    건웅 씨의 어머니도 오래 전에 남한에 와 있었다. 그래서 건웅 씨는 2015년 1월 중국과 라오스, 태국을 거쳐 남한 땅을 밟았다.

    국정원에서 2개월 반, 하나원에서의 3개월 생활이 마무리갈 때쯤 건웅 씨는 어머니가 2년 전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하나원을 나온 건웅 씨는 인천으로 향했다. 하나원에서 친하게 지내다 먼저 나간 형이 있는 곳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들은 관련법에 따라 기본금·가산금·장려금 등 정착지원금을 받는다. 건웅 씨도 정착지원금을 받았지만, 탈북을 도와 준 브로커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나니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이 거의 없었다. 건웅 씨는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함께 살던 형과 자동차 프레스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 '북한 사람이 중국 사람보단 낫지'의 의미

    아침 여섯시에 집을 나서고, 구부정하게 서서 하루 종일 자동차 부품을 찍어내다 저녁 6시가 되면 하루 일이 끝났다. 공장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건웅 씨는 "북한에서도 몸 쓰는 일을 해 봐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남한은 시간, 분 단위로 일한 만큼 돈을 주니 쉴 틈이 없어 더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언젠가, 자동차 공장에서 일할 때 사장님이 '북한 사람이 중국 사람보단 낫지'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북한 사람들이 말도 통하고, 열심히 일하는 편이라는 의도로 하신 말이긴 했죠. 하지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통일은 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지금은 남과 북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갈라져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늘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했던 건웅 씨. 싱숭생숭한 마음에 형과 고향 이야기를 밤새 하다 눈도 못 붙이고 다시 일을 나가야 하는 날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임금도 6개월 정도 체불되는 바람에 마음고생도 만만찮았다.

    결국 건웅 씨는 자동차 공장 일을 그만뒀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격증 공부와 대학 입시 준비에 매진했고 올해 3월 동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 북한 음식도 알리고, 북한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건웅 씨는 주중엔 대학 새내기로, 주말엔 푸드트럭 '모락모락' 사장님으로 지내고 있다. 2016년 11월부터 건웅 씨가 운영하고 있는 푸드트럭은 통일부와 한국마사회 렛츠런재단, 남북하나재단이 협업하는 탈북민 소자본 창업 지원 사업의 일환이다. 주말이 되면 건웅 씨는 과천 경마공원에서 푸드트럭을 몰고 다니며 북한 만두와 찐빵을 판다.

    "장사를 겨울에 시작했기 때문에 따뜻한 음식으로 정했죠. 제가 북한에서 왔기도 하고,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북한 만두엔 당면 대신 찹쌀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랍니다."

    경마 경기를 보러 온 관람객 뿐 아니라 근처 놀이공원에 온 가족,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푸드트럭을 찾는다. 건웅 씨는 "경기에서 돈을 땄다며 팁을 주시는 분, 음식이 너무 느리다며 괜히 트집 한 번 잡아보고 가는 사람, '아들!' 하고 불러주시는 손님도 있다"며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라 재밌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하루는 건웅 씨가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와서 북한 만두 먹어'하고 말했더니, '북한 안 좋아요' 하고 가 버린 일도 있었다.

    "남한 사람들 중에 북한 사람을 처음 본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5천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 탈북민이 3만 명이니 많은 수는 아니죠. 나 하나부터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나중에 넘어 올 북한 사람들이 자리 잡기가 지금보다 수월할 거고요. 통일이 된다면 남과 북 주민 들 간에 화합하기도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푸드트럭에 찾아오는 이들이 돌아갈 때에는 북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바뀌길 바라며, 또 멋진 사업가라는 꿈을 그리며 건웅 씨는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 우리온은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돕는 커뮤니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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