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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에 개봉된 구로구청 투표함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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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반

    29년 만에 개봉된 구로구청 투표함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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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대통령기록관)
    - 1987년부터 2007년까지 20년간 투표함은 어디에 있었는가?
    - 구로구청 사무실 케비넷에서 나온 1500장 넘는 투표용지 정체는?
    - 투표함의 용지들, 30년전의 용지가 맞을까?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7월 21일 (목)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한희덕 대표 (섬앤섬 출판사)


    ◇ 정관용> 일명 구로구청 사건. 여러분 들어보셨습니까?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어찌 보면 직선제 쟁취 이후에 첫 선거였었죠. 그런데 시민들이 부정 선거다, 이런 의혹을 제기하면서 구로을 선관위를 점거해서 한 이틀가량을 그러다 또 강제 진압된 그런 사건인데 결과적으로 투표함 한 개, 개봉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선관위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투표함 한 개가 29년 만에 오늘 개봉됐다고 하네요. 어떤 사건이었는지 이 개봉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앞으로의 숙제는 무엇인지 짚어보기 위해서 당시 구로구청 농성에 참여하셨던 구로동지회 소속 회원 한 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지금은 출판사 대표를 하고 계시네요. 한희덕 대표 어서 오십시오.

    ◆ 한희덕> 반갑습니다.

    ◇ 정관용> 그때 몇 살이셨어요?

    ◆ 한희덕> 만 25살이죠.

    ◇ 정관용> 직업은요?

    ◆ 한희덕> 그때는 대학 3학년 휴학 중이었습니다.

    ◇ 정관용> 대학 3학년 휴학 중. 어쩌다가 거기를 가시게 됐어요?

    ◆ 한희덕> 저도 20대였지만 사실 대통령선 거는 처음 했죠. 그 전에 선거가 없었으니까요.

    ◇ 정관용> 직선제가 아니었으니까.

    ◆ 한희덕> 그렇죠, 그리고 저도 처음 해 보는 대통령 선거였고 그때 당시 공정선거감시단이라고 있었는데 그 활동을 하다가 오후에 저희 지역에서 투표 끝내고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했는데 오후쯤 되니까 구로구청에 대한 소식이 퍼진 거죠. 그래서 각 지역의 학교, 특히 대학생들 중심으로 시민 단체하고 구로구청에서 그래서 일반 전파를 통해서 많이들 모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 저녁에 오후에 저 같은 경우에 저녁에 갔고 이 사건이 최초 발생한 건 오전 11시 무렵인데.

    ◇ 정관용> 그날이 12월.

    ◆ 한희덕> 16일 대통령 선거 당일이죠.

    ◇ 정관용> 16일 11시, 투표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상황.

    ◆ 한희덕> 그렇죠.

    ◇ 정관용> 그렇죠.

    ◆ 한희덕> 한 절반도 채 안 된다고 봐야 되죠. 12시, 6시까지는 투표를 해야 되니까.

    ◇ 정관용> 저녁 6시까지 해야 되니까. 그런데 그 11시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죠?

    ◆ 한희덕> 그러니까 구로구청에서 투표가 진행 중인데 구로선관위 직원이 투표함을 미리 개함장소로 옮긴 겁니다. 자기들 그때 표현으로는 일정이 바빠서 개함장으로 미리 옮기는 거다, 그런데 그것이 저희...

    ◇ 정관용> 원래는 6시 종료된 후에 가야 되는데 투표함을 미리 옮겼다?

    ◆ 한희덕> 네.

    ◇ 정관용> 어떤 투표함인데요?

    ◆ 한희덕> 그게 이제 일명 부재자투표 내지는 우편투표라고 하는 부분인데.

    ◇ 정관용> 부재자 투표함은 미리 도착하죠, 원래.

    ◆ 한희덕> 그렇죠. 당일 날 도착하겠지만.

    ◇ 정관용> 그러니까 이건 미리 옮겨야겠다, 그건 돼요.

    ◆ 한희덕> 당일 날 일반 투표함도 있으니까 그게 끝나면 한꺼번에 가기 바쁠 테니까 미리 좀 옮겨놓겠다. 이게 아마 그때 당시에 선관위 직원들이 했던 이야기인데. 법규상으로는 명확하게 규정이 없었답니다. 요즘은 6시에 종료가 돼야 투표함을 옮겨야 되는데 그때는 명확한 명문규정이 없어서 선관위에서는 불법이 아니라고는 얘기를 했죠. 그런데 불법은 아니지만 달리 얘기하는 또 다른 합법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거예요. 6시까지 투표가 진행이 돼야 되니까. 그래서 그때 당시에 처음 발견한 시민들과 실랑이가 오가다가 점점 커진 거죠.

    ◇ 정관용> 그 투표함 딱 한 개만 미리 옮기려고 했다고 해요?

    ◆ 한희덕> 그렇죠.

    ◇ 정관용> 딱 한 개만? 트럭에 싣고? 아니면 자동차에...

    ◆ 한희덕> 트럭에 싣고 옮겨나가다가 발단이 된 겁니다, 발각이 돼서.

    ◇ 정관용> 아니, 투표함 한 개 사이즈가 얼마 안 되는데 트럭이 딸랑...

    ◆ 한희덕> 차라리 투표함 하나만 나갔으면 또 문제가 의외로 간단히 끝났을지도 몰라요. 투표함을 트럭 뒤에다가 싣고 그 투표함 위에다가 현수막, 빵 봉지, 빵 같은 과자, 이상한 봉투, 이런 게 잔뜩 있었던 거예요. 어떻게 보면 투표함이 덮여버렸던 거죠.

    ◇ 정관용> 그게 어찌 해석하면 투표함을 숨겨서.

    ◆ 한희덕> 당시에는 누구나 다 그렇게 봤던 거죠.

    ◇ 정관용>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모양으로.

    ◆ 한희덕> 그런데 선관위 직원은 참 저희가 웃을 수도 없는 게 선관위 직원은 그때 당시에 뭐라고 했냐면, 그러면 이 무거운 투표함 위에다 빵을 올려놓지 빵 위에다가 투표함을 올려놓으면 되겠습니까라는 이런 얘기까지도 했었는데.

    ◇ 정관용> 옆에다가 두면 되죠.

    ◆ 한희덕> 그렇죠. 그때 당시는….

    ◇ 정관용> 그러니까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 한희덕>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시민들은 누가 봐도 숨겨서 빼가는 걸로 봤다.

    ◆ 한희덕> 그렇죠, 맞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요?

    ◆ 한희덕> 그래서 그때부터 실랑이가 벌어지고 이송을 막았는데 그때 저희가 그때나 지금이나 또 한 가지가 얘기하는 게 뭐냐 하면 원래 투표함 이송이라는 게 개인 사물 옮기는 것도 아닌데 예를 들면 요즘 같은 경우도 학생들 대학입학 수능입니까? 시험이 끝나고 나면 시험지 같은 거 그다음에 사전에 시험지를 배포하는 것도 호송 경찰들이 있지 않습니까?

    ◇ 정관용> 당연하죠.

    ◆ 한희덕> 그런데 어떻게 국민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투표함을 옮기는 데 호송경찰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 정관용> 경찰도 없이 그냥.

    ◆ 한희덕> 그렇죠, 저희가 오늘도 기자회견에서 말씀드렸지만 당시에 제복을 입은 공권력의 상징이라는 경찰 한 번만 같이 동행을 했어도 이런 일이 안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걸 시민들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건 저는 말이 안 된다고 보는 거죠.

    ◇ 정관용> 아무튼 그런 석연치 않은 트럭을 발견하고 시민들이 모여서 지금 사진에도 다 나옵니다마는 그 투표함을 시민들이 다 깔고 앉아서.

    ◆ 한희덕> 그렇죠, 지켜낸 거죠.

    ◇ 정관용> 버티기 시작한 거예요.

    ◆ 한희덕> 이 안에 과연 뭐가 들어 있느냐 이게 정상적인 투표냐, 투표지인가.

    ◇ 정관용> 일단 완전히 봉인은 되어 있는 투표함이었죠?

    ◆ 한희덕> 외관상으로는 봉인은 되어 있었죠, 그런데 저희가 그때 그 상황에서는 일일이 지금처럼 면밀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덮여 있긴 했지만 어떤 상태인지까지는 그때는 검증을 못했던 거죠.

    ◇ 정관용> 그리고 시민들이 더 나와서 구로을 선관위 사무실을 점거했죠.

    ◆ 한희덕> 맞습니다.

    ◇ 정관용> 그 사무실 안에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들이 있었지 않았나요?

    ◆ 한희덕> 엄청나게 많이 나왔죠.

    ◇ 정관용> 어떤 것들인가요?

    ◆ 한희덕> 캐비넷 같은 곳 안에서 투표용지가 한 1500장이 넘는 투표용지가 나왔죠. 그리고 우리가 얘기하는 붓두껍이라고 하는 투표 기구가 있지 않습니까?

    ◇ 정관용> 기표 기구.

    ◆ 한희덕> 기표 기구, 그다음에 인주.

    ◇ 정관용> 그러니까 12월 16일 투표 당일 오전 11시에 첫 그런 투표함 반출 하려고 하는 현장이 석연치 않게 보여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때 몇 명 정도가 모였습니까?

    ◆ 한희덕> 저희가 16일부터 18일 오전 이렇게 해산될 때까지 경찰에 의해서 물리력에. 한 연인원 2박 3일 동안 한 2만여 명이 넘는 사람이 집결했었거든요.

    ◇ 정관용> 18일 새벽이었죠?

    ◆ 한희덕> 18일, 제 기억에도 6시 무렵부터, 6시 이전부터, 11시 이전부터 경찰들이 침입을 했고 그 과정에서 또 엄청난 희생자들이 나왔죠.

    ◇ 정관용> 그중의 한 분은 옥상에서 떨어져서.

    ◆ 한희덕> 당시 서울대 4학년이었던 학생인 양원태 군 같은 경우가 옥상이 아니고 5층, 선거 그때 당시에 상황사무실에서 경찰, 백골단에 맞아서 유리창이 깨지면서 유리창과 함께 비품함같이 5층에서 떨어진 거예요. 척추가 부러지면서 하반신 마비가 온 거죠, 전신마비가 온 거죠.

    ◇ 정관용> 총 몇 명 정도가 연행됐죠?

    ◆ 한희덕> 정확한 숫자는 제가 모르는데 한 1000여 명 이상이 연행이 됐고 200여 명 이상이 제가 알기로는 구속 기소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실형을 다 받았어요?

    ◆ 한희덕> 도중에 기소 전에 나온 분들도 있겠지만 1심, 2심까지 가고. 저 같은 경우도 1심 채우고 2심 전에 집행유예로 나왔으니까.

    ◇ 정관용> 1심에서는 아무튼 실형으로.

    ◆ 한희덕> 거의 다, 그렇죠.

    ◇ 정관용> 몇 년 형을 받으셨어요?

    ◆ 한희덕> 1년에 집행유예 3년인가 그랬고 나왔죠.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은 제가 보기에는 2년 이상 그리고 기억할 것은 그중에 김병곤 선생이라는 분은 그분은 2심 재판 도중에 결국 돌아가셨죠.

    ◇ 정관용> 그래서 16일 투표 당일 그렇게 투표함 한 개가 시민들에 의해서 어떻게 보면 점거당하고 있는 상태로 18일 새벽 6시까지 갔으니까 그 투표함을 개봉하지 않은 채로 개표를 종료한 거죠? 그 당시에.

    ◆ 한희덕> 그렇죠.

    ◇ 정관용> 그 하나만 빼고. 그렇게 해서 노태우 당선. 선포가 다 끝나고 그리고 그 투표함은 경찰이 가져갔죠?

    ◆ 한희덕> 아니죠.

    ◇ 정관용> 그럼요?

    ◆ 한희덕> 이게 지금 저희가 계속 그래서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가 12월 18일 날 경찰이 공권력이 투입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로부터 올해가 29년인데 이 투표함의 이력이 말이죠. 이 투표함의 이력이 2007년부터 드러납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 10년 된 거죠. 그럼 1987년부터 2007년까지 이 투표함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 정관용> 아무 설명이 없어요?

    ◆ 한희덕> 정부 관계 쪽 사람들 아무도 이 얘기를 못합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자기들이 발표하기로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88년 12월 18일 날 경찰이 압수를 해서 구로선관위에 넘겼고 구로선관위가 다시 그걸 무효 처리화 했기 때문에 자체 보관을 하다가 2007년에 중앙선관위로 넘겼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볼 때 상식적으로 조그마한 개인 기업에서 물품이 오가고 1년이 되면 총무처에서 비품 같은 거 현황파악 하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고물상에서 물건을 다뤄도 그렇게 다루지 않을 텐데 국가기관이 이 중요한 증거품인 투표함을 20년 동안 아무런 기록도 없이 방치했던 거죠, 어떻게 보면.

    ◇ 정관용> 구로구 선관위에 있었다는 얘기만 나오고.

    ◆ 한희덕> 그렇죠. 그런데 그 기록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저희들은 20년 동안 어디 있었던 증거 기록들이... 도대체 어디서 갖고 온 건지, 하루아침에 나온 거냐.

    ◇ 정관용> 알겠어요. 아무튼 지금까지 설명은 경찰이 구로구 선관위에 그냥 줬고 구로구 선관위는 20년 동안 방치해두다가 2007년에 중앙선관위로 옮겼습니다. 이거다 그거죠?

    ◆ 한희덕> 그렇게 자기들은 얘기하는데 중앙선관위에 들어갈 때 실제 중앙선관위로 인수해진 주최 측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입니다.

    ◇ 정관용> 그건 또 왜 거기서 갑자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등장을 해요?

    ◆ 한희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아마 사료로 그걸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구로구 선관위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갖다 줬는지 아니면 구로경찰서가 가져다주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으나 중앙선관위에 들어간 기록은 그때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중앙선관위 수장고의 기록은.

    ◇ 정관용> 그런데 중앙선관위에 전달한 측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한테 물어보지 그랬어요.

    ◆ 한희덕> 거기도 역시 지금. 예를 들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007년 정권 교체된 이후부터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다 바뀌어 나가고 사료 관리했던 분들 굉장히 중요했던 분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전부 다 인수인계 관계가 명확하게 지금 기록이 안 남아 있는 거죠.

    ◇ 정관용> 그나저나 29년 만에 이게 어떻게 해서 개봉되게 됐습니까? 그 과정은요.

    ◆ 한희덕> 그 부분은 중앙선관위가 알겠죠. 명확하게 공식적으로 표명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저희에게 비공식으로 통화가 왔다거나 아니면 대외적으로 얘기했던 것 중 하나는 한국사에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제도 도입된 게 2018년이면 만 60주년이 된답니다. 60년을 정리하고 싶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과정에 1987년 대통령선거 때 투표함, 의문의 투표함, 이거는 어떻게든 해결을 하고 넘어가야 되는데 그냥 무한정 방치할 수 없으니까 중앙선관위 내에서는 전임 임원들 때도 이거 어떻게 하자, 어떻게 하자 그런 논의가 내부에서 내부에서는 있었나 봐요. 그래서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이번에는 개함을 하자 해서 정치학 쪽에 의뢰를 했다는 게 자기 선관위 쪽의 의견인데.

    ◇ 정관용> 한국정치학회 쪽에 의뢰를 했다?

    ◆ 한희덕> 그렇죠. 이게 원래는 14일 날 개함을 한다고 했었거든요. 언론에 발표하기를.

    ◇ 정관용> 맞아요.

    ◆ 한희덕>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저희도 언론을 통해서 그 얘기를 듣고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어서 저희도 급히 회원들 다시 모이고 논의해서 저희가 기자회견을 했죠, 국회에서.

    ◇ 정관용> 한 번 연기해 달라고 하셨잖아요.

    ◆ 한희덕> 네, 저희가 그냥 연기가 아니고 이게 어디서 나온 투표함인지 그리고 개함과정을 그때 분명히 당사자였던 우리와 선관위와 정치학회가 3자가 같이 공정하게 개함을 해 보고 이후에 과정도 검증, 분석, 연구 같이 하자. 그거 잡는 게 어려운 거 아니지 않습니까? 충분히 상의하고 우리가 협의할 수 있으니까. 그랬는데 부랴부랴 선관위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 정관용> 뭐라고요?

    ◆ 한희덕> 일단은 연기를 하겠다. 우리 쪽에 찾아오겠다고 그래서 선관위 사무국장이 대외협력국장한테 찾아왔었어요. 그리고 다시 조절을 해 보겠다. 일정을 다시 잡는 게 아니고 무기한 연기한다고 그랬죠.

    ◇ 정관용> 일단 연기하고 그러니까 구로동지회, 그분들도 참여시켜서 하는 식으로 바꾸겠다라고 했다는 거죠? 처음에는.

    ◆ 한희덕> 아니요, 참여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일단 연기만 하겠다. 그리고 논의를 하자는 얘기죠. 그래놓고 논의하자 해 놓고 다시 일주일 만에 개함, 21일 날 딱 일주일만 연기한 거죠. 개함을 하겠다고 또 발표를 한 거예요. 우리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정치학회를 통해서 중앙선관위가 일방적 개함을 하려다 저희가 반대한다는 논의가 있으니까 일단은 한 번은 연기를 한 거죠, 명분 쌓기용으로 그리고 접촉도 시도를 했고 그래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니까 우리는 일방적으로 개함하겠다. 이런 과정이었지 진지하게 저희하고 논의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21일 날.

    ◇ 정관용> 오늘 개함하는 현장에 가시긴 했죠?

    ◆ 한희덕> 저희도 갔죠. 분명히 저희 입장 표명하고 또 선관위가 호도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구로동지회가 개함을 반대한다고 하는데 저희는 그냥 개함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고 일방적이고 투표함 자체에 대한 진상규명 같은 게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87년 당시에 이 투표함 하나가 전부가 아니고 87년 당시에 광범위하게 벌어졌던 부정선거의 의혹들 이런 것들을 다 사장시키고 투표함 하나만 가지고 87년을 규명하겠다는 것은 그거는 어불성설이고 사상누각이다. 그런 부분을 서로가 인정하고 공유하고 개함을 들어간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같이 할 수 있다, 이거였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무시하고 오늘 일방적으로 진행을 하기 때문에 저희는 그 현장에 가서 그냥 괜히 들러리 설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요즘 사회에 우리가 언론 믿지 않습니까? 기자도 들어가는데.

    ◇ 정관용> 입장 표명만 하시고 개함 현장에 참관은 거부하시고. 87년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셨다?

    ◆ 한희덕> 그리고 이 투표함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하는 투표함의 이력,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30년 중에 20년이라는 기간이 아무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 있으니까요, 지금.

    ◇ 정관용> 어떤 걸 의심하시는 거예요. 그 투표함의 이력에 대해서는.

    ◆ 한희덕> 이 투표함을 누가 보관하고 있었으며 일부에서는 투표함 자체를 바꿔 치기 한 거 아니냐 하는 그런 얘기들도 있을 수가 있고. 그리고 학자들 얘기로는 그쪽 표현은 오염이라고 하던데 투표함이 어딘가에 방치된 속에서 그냥 물리적 오염이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예를 들면 새로 집어넣는다든지 하는 이런 오염도 될 수 있다는 거죠.

    ◇ 정관용> 그렇죠. 그럴 수 있죠.

    ◆ 한희덕> 근데 그런 부분들은 도대체 얘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아야 그런 오염이 됐는지 아닌지 이런 거를 규명할 수가 있을 텐데 그런 거를 검증 없이 그냥 개함을 진행을 하니까 이거는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도 이상의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저희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던 겁니다.

    ◇ 정관용> 입장 표명하신 말씀까지는 들었고. 그런데 어쨌든 궁금하니까 저희들은. 당장 열었더니 4325표가 나왔습니다. 4325표 모두가 다 우편으로 된 이른바 부재자투표였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개표한 결과 노태우 후보가 3133표, 김대중 후보가 575표, 김영삼 후보가 404표, 김종필 후보가 130표. 압도적으로 노태우 후보가 많네요.

    ◆ 한희덕> 그렇죠.

    ◇ 정관용> 이건 뭘 의미할까요?

    ◆ 한희덕> 물어보시는 사회자 분도 충분히 아시겠지만 선거는 기본적으로 보통선거이고 비밀선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통선거, 비밀선거, 평등선거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겠죠.

    ◇ 정관용> 군 부재자 투표죠?

    ◆ 한희덕> 그렇죠.

    ◇ 정관용> 그리고 몇 년 후에, 92년인가? 이지문 중위 사건으로 군 부재자 투표에서 광범위한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그런 폭로가 있었고.

    ◆ 한희덕> 폭로가 있었죠.

    ◇ 정관용> 그래서 그 이후로 제도가 많이 바뀌었죠. 군는이 영외에 나와서 투표하는 식으로 영내 투표를 금지하는 식으로 제도도 바뀌었죠. 그러니까 적어도 이 개함된 숫자로만 봐도 87년 대선에 군 부재자 투표에서는 노태우 후보를 강제적으로 찍게 한 게 참 많이 보인다?

    ◆ 한희덕> 그렇죠.

    ◇ 정관용> 여기까지는 얘기할 수 있는 거죠?

    ◆ 한희덕> 맞습니다. 그건 정치학계 학자들도 자기들도 충분히 예상을 하나 학문적으로 한 번도 규정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도 궁금하다,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학문적으로도 필요한 사료가 될 수는 있겠으나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으니까 확진된 결과가.

    ◇ 정관용> 아니, 87년 대선에 총 집계를 해서 노태우 후보 몇 % 득표율 다 나오잖아요.

    ◆ 한희덕> 나왔죠.

    ◇ 정관용> 그게 선거구별 지역구별해서 부재자투표는 따로 그때는 분류가 안 됐나보죠?

    ◆ 한희덕> 당시에는 부재자 투표함이 오면 일반 투표함하고 섞어서 했다고 해요.

    ◇ 정관용> 그래요. 그러니까 부재자투표만의 따로 된 기록은 없는 거군요.

    ◆ 한희덕> 그렇죠.

    ◇ 정관용> 이게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겠군요.

    ◆ 한희덕> 맞습니다. 증거도 되고 사료가 되겠죠. 그리고 또 하나 문제되는 부분은 부재자 투표 용지만이 아니라 부재자 투표가 과연. 군대에는 가 있지만 주소가 구로로 된 사람들이니까 이쪽으로 왔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 투표에 이 사람은 현재 군대에서 복무 중이어도 구로구선관위에 유권자 투표인 명부에는 등재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이 투표인 명부가 함께 있어야 이 우편 투표함이 맞는 건지 아닌지 이런 것들을 기록하고 또 하나는 그 사람들한테 투표용지를 제대로 보냈는지 이 투표용지 발급 대장, 이게 함께 있어야 되는데 지금 그런 게 없는 거죠.

    ◇ 정관용> 달랑 투표함만 있는 거죠.

    ◆ 한희덕> 그래서 이게 중요한 사료임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미비점이 많은.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의혹설이긴 합니다마는 과연 그 사이에 누가 새로 뭘 넣었거나 바꿔치기한 건 아닌가? 이런 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나서서 몇 십 년 된 종이인지 아닌지 검증한다니까. 그건 또 지켜볼 필요가 있겠네요.

    ◆ 한희덕> 정치학계에서도 우리한테 얘기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가능하면 사실 우려했던 부분은 그거거든요. 국과수만이 아니고 민간 전문가들도 같이 참가해서 지금 말씀하신 물리적인 과학적인 것을 통해서 30년 전의 용지인지 예를 들면 우체국 소인 같은 게 찍혀 있는지 이런 검증이 또 필요하죠. 시간도 요하는 거고.

    ◇ 정관용> 개함은 했으나 풀리지 않은 숙제는 너무나 많은.

    ◆ 한희덕> 이제 시작인 거죠.

    ◇ 정관용> 그렇게 말할 수 있겠고요. 궁금해서 여쭤보는데 한 대표는 87년에 정말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행해졌다고 보세요? 그래서 개표결과가 뒤바뀌었다고 보세요?

    ◆ 한희덕> 저는 그렇게 거의 단정하죠.

    ◇ 정관용> 투개표 과정의 부정.

    ◆ 한희덕> 투개표 과정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구로구청 선관위 사무실에 있었던 용품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하나의 방증, 증거 자료였거든요.

    ◇ 정관용> 그러니까 그 투개표 과정의 부정이 광범위하게 있었고. 그래서 당락이 뒤바뀌었다라고 보신다?

    ◆ 한희덕> 전 그렇게 할 수도 있죠. 예를 들면 말이죠. 예를 들면 우리가 군대에 병력이 한 60만 이상을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발표한 것을 놓고 보면 그때 당시에는 노태우 후보가 한 35% 안팎, 그것도 엄청나게 공권력을 통해서 한 건데 오늘 개봉한 4000표 중에 한 75% 이상을 가져갔지 않습니까? 80% 육박하게. 그럼 60만에서 80%면 40만 표 그냥 가져갔다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그렇게 됐다면 100만 표 이상의 차가 뒤바뀌었을 수 있다는 거죠. 이거는 학자들의 몫이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말씀 들을게요. 오늘 고맙습니다.

    ◆ 한희덕> 감사합니다.

    ◇ 정관용> 구로동지회 소속 회원이시죠. 한희덕 대표를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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