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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의인' 수의사 박상표의 삶을 비추다



책/학술

    '촛불 의인' 수의사 박상표의 삶을 비추다

    부조리에 대항한 시민과학자 '박상표 평전' 출간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는 '촛불 문화제'로 불리며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평가됐다. 이 집회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든 인물들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시민의 편에서 '친미' 정부와 가장 치열하게 싸운 사람은 바로 '박상표'라는 수의사다. 언론과 집회에 수없이 등장했던 그는 당시 '촛불 의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광우병 정국에서 주목할 점 가운데 하나는, 정부나 주류 전문가들의 의도적이고 편향된 주장에 맞서 국민과 일반 시민의 편에서 전문적이고 정당한 주장을 일관되게 펼친 자발적인 '시민과학자'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박상표는 바로 그 '시민과학자'였으며, 일명 '대항 전문가(counter expert)'였다.

    2016년 현재, 즉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 국내에서 아직 실제 임상 사례로 보고된 적이 없고 2008년 촛불 집회 및 광우병 논란과 관련된 다수의 재판에서 정부가 승소한 지금, 많은 시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꺼려하면서도 광우병 논란과 촛불 집회를 시 류에 휩쓸려 오도된 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도된 휩쓸림'이 아니라 '당시의 최선책'이었다. 지금 다시 그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박상표 같은 '대항 전문가'는 꼭 필요하고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설 것이다.

    앞으로 더 전문화되는 각 분야에서 이런 '대항 전문가'들은 계속 나타나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상표'는 '시민과학자' 겸 '대항 전문가'의 전범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당시 그는 현직 수의사이자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국건수)'의 정책국장이었다. 그는 2008년 이후로도 계속 수의사 겸 국건수 정책국장으로서 주로 공중보건이나 식품과 관련 있는 문제들을 제기하며 사회운동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2014년 1월 19일에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이유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적인 이유 때문에 공적으로 커다란 기여를 한 인물을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 건강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표상적인 인물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하고 오래도록 기념되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그의 대학 동문들(바른사회를 지향하는 청년수의사회)이 나서서 그의 삶을 기리는 책을 기획했고,그를 아는 여러 사람들의 지원 하에 약 2년간의 집필과 편집 과정을 거쳐 2주기인 2016 년 1월 19일을 앞두고 『박상표 평전』으로 출간됐다.

    저자 임은경은 박상표의 행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찾아다니며 큰 틀에서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하고 재구성했다. 저자가 만난 박상표의 모습은 매우 다양했다. 시를 좋아하는 바닷가 도시의 조용한 아이였고,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과 행동으로 치열하게 고민한 대학생이었으며, 해박한 문화유산 답사가이자 안내자였고, 문학을 사랑한 작가이자 역사를 탐구한 인문학자였으며, 과학사(科學史)학자이자 수의학자였고,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사회운동가였으며, 정직하고 우직한 수의사이자 검소하고 성실한 생활인이었다. 이 책에는 그의 이러한 다채로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박상표는 아는 것이 많은 만큼 모르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도 '달인'이었다. 광우 병 정국 때부터 이후 정부와의 소송에서까지 박상표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PD수첩」 조능희 책임PD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보다 박상표 국장의 도움이 컸어요. 이메일이 오면 본문이 오고 첨부 파일이 오잖아요. 그 첨부 파일을 일일이 열어보기 힘들어서 하나의 파일로 만들려다가 포기했어요. 양이 너무 많아서요. 외교통상부, 국회, 전 세계 관련 사이트에서 찾아낸 엄청난 자료들이 었죠. 그에게 부탁하면 나오지 않는 자료가 없었어요. 최신 이론이나 통계 수치도 찾아서 일일이 표로 정리하거나 자료집 형태로 만들어서 보내주었죠. 우리는 그런 그를 '자료 대마왕'이라고 불렀어요. 박상표 국장은 대충 검색한 자료를 보내준 것이 아니라 일일이 찾아서 읽고 분석해서 확실한 것만 우리에게 보내주었어요. 그 노력이 얼마겠어요. 어떤 때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밤늦게 왔어요. 휴일에도 일을 했다는 거지요."(192쪽)

    박상표의 일생

    1969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났으며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했다. 문학 동아리 '반도문학회'에서 활동하며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인천에서 노동 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한편 문화유산 답사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가져서 답사가나 안내자로 전국 곳곳을 다녔는데, 항상 사전에 충실한 자료집을 준비하고 답사지에 숨겨진 이면의 역사와 사실까지 탐구하는 학자의 자세로 임했다. 그래서 나중에 전문가 수준의 역사 칼럼과 책을 쓰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수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문화유산 답사를 하며 경실련과 참여연대에서 활동했는데, 이를 계기로 평화와 통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운동가로서의 영역을 넓혀갔다. 2005년에는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에 합류했는데, 이듬해 초부터 들끓기 시작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미 FTA 정국에서 정부와 주류 전문가들의 주 장에 맞서 일반 시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시민과학자'이자 '대항 전문가'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8년 촛불 시위를 이끈 이후 2014년 홀연히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외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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