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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노컷

    의리가 윤리보다 앞서면 조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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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의 향기

    흔히 '기축옥사'라고 하는 '정여립 모반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첫째, 모반자 정여립은 명사와 교유한 선비이며, 벼슬을 지낸 사람으로 자기가 왕이 되려고 했다는 점이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옥사에 연루됐는데, 격화된 당쟁 속에서 발생한 모반은 진영으로 변질됐고, 정여립과 교분이 있던 정개청도 잡혔다.

    그가 지은 '동한진송소상부동설(東漢晉宋所尙不同說)'이 절의를 배격하는 내용이라 해 역심의 증거로 제시됐다. 아래 글은 동한진송소상부동설 중 일부다

    '절의파는 천하를 깔보며 세상을 우습게 안다. 예의범절 따위에 얽매이지 않으며 인간의 바른 본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하의 사람들이 오직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마침내 간웅이 들고 일어나 임금의 자리를 엿보게 한다. 청담가는 실상 바람 불고 물결치는 대로 세태를 좇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부귀는 원하는바 아니며 빈천도 잊었다고 하지만,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고, 돌아서서는 권력을 탐하고 재물을 챙긴다. 이 또한 추종하는 사람들을 오만하게 만들어 마침내 퇴폐한 세상 바로잡을 방법이 없도록 하니, 역시 찬탈의 형세를 만들어 낸다.

    절의파가 소부 허유를 흠모하고, 청담가가 노자 장자를 숭앙해 쌓여온 폐단이 이에 이르렀지만, 따져보면 모두 수신과 치국의 학문을 모르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즉 절의는 인륜과 도덕에서 벗어난 독선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청담은 인간 사는 이치를 생각하지 않고 지켜야할 예의범절을 무시하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이는 모두 말세에 숭상하는 것이다.'

    효를 충으로 확대해 국가의 기본 질서로 삼은 것이 서한이라면, 의리를 충절로 만들어 왕조 유지의 동력으로 삼은 것이 동한의 절의이다. 그리고 위진의 시대가 열리며 청담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는데, 효, 충, 절과 같은 관계의 긴박으로 피로해진 결과 탈출구를 모색한 것이다.

    그래서 주희는 절의가 변질된 것이 청담이라고 했으며, 정개청은 절의나 청담이나 나라 망치기는 매일반이라고 했다.

    기축옥사를 맡았던 정철은 누이가 인종의 후궁으로 어려서 궁중을 출입했고 왕자들과 친숙했다. 따라서 임금에게는 오직 충절뿐이라는 오롯한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모반도 차마 못 볼 일이거늘, 스스로 임금이 되겠다고 나섰으니, 정철이 보기에 경을 치고도 남을 놈들이며, 그 자체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그래서 선조에게 정개청의 글을 내보이며 절의를 배격하는 역적의 글이라고 몹시 분개한 것이다.

    주군 관계의 핵심적 요소인 충절은 의리가 본바탕이다. 이 의리라는 것이 관계유지에 초점이 있다 보니, 도덕윤리와 충돌할 때 쉽게 유리 된다. 재미있는 점은 윤리도덕을 벗어 던질 때 오히려 빛을 발하고 강고지는데, 이때 의리는 조폭적으로 변질된다.

    절의라는 덕목으로 혁명도 하고 왕조도 유지한 것이 동양의 전근대이고, 거기에 당쟁으로 진영화된 것이 조선의 한 단면인데, 그래도 청담으로 갈지언정 조폭으로 가지 않은 것은 의리가 윤리도덕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정문 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더욱 자세한 글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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