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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 인골, '백제 무왕' 가능성 높아져



문화재/정책

    익산 쌍릉 인골, '백제 무왕' 가능성 높아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7세기 사망한 큰 키의 노년기 남성' 인골 분석 결과 발표

     

    최근 익산 쌍릉에서 발견된 인골은 백제 무왕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에서 남성 노년층의 신체 특징과 병리학적 소견을 확인했다.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인골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쌍릉의 존재는 '고려사'에서 처음 확인되RH 고려 충숙왕 때(1327년) 도굴됐다는 사건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부터 고조선 준왕이나 백제 무왕의 능이라는 설이 있었다.

    1917년 조선총독부는 쌍릉을 단 며칠 만에 발굴하면서 백제 말기의 왕릉이거나 그에 상당한 자의 능묘라는 것은 확인했지만, 1920년 고적조사보고서에 단 13줄의 내용과 2장의 사진, 2장의 도면만 공식기록 전부로 남겨놓았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익산시와 공동으로 쌍릉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석실 끝부분에서 지금까지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인골 조각이 담긴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100년 전 일제가 발굴하면서 다른 유물들은 유출했지만, 이는 꺼내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 인골 자료가 무덤의 주인과 연결된다면, 백제 무왕의 능인지를 결정짓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물리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참여시켜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다.

     

    102개의 조각으로 남아있던 인골을 분석한 결과, 성별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팔꿈치 뼈의 각도(위팔뼈 안쪽위관절융기 돌출양상), 목말뼈(발목뼈 중 하나)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먼쪽 뼈 부위)의 너비가 남성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해 산출한 결과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추정된다.

    훨씬 후세대에 속하는 19세기 조선 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이다.

    참고로 '삼국사기'에는 무왕에 관한 묘사로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라고 돼 있다.

    639년에 작성된 '미륵사지 서탑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대왕폐하'로 불린 기록도 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

    목의 울대뼈가 있는 갑상연골에 골화가 상당히 진행됐고, 골반뼈 결합면의 표면이 거칠고, 작은 구멍이 많이 관찰되며, 불규칙한 결절이 있다.

    남성 노년층에서 발병하는 등과 허리가 굳는 증상(광범위특발성뼈과다증), 다리와 무릎의 통증(정강뼈와 무릎뼈의 척추외골화)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옆구리 아래 골반뼈(엉덩뼈능선)에 숫자 1(∣) 모양으로 골절됐다가 치유된 흔적이 있다.

    어긋나지 않아 타격보다는 낙상 등 때문으로 판단된다.

    치료기간이 3개월 정도 되므로, 직접적인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돼 인골의 주인은 7세기 초중반의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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