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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말이 통해야 바벨탑을 쌓지'…문재인·트럼프 그리고 김정은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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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말이 통해야 바벨탑을 쌓지'…문재인·트럼프 그리고 김정은의 경우

     

    기원전 1700년 경 사람들은 하늘에 닿겠다는 욕심으로 탑을 쌓기 시작했다.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건설' 서사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기 때문'에 하늘에 오르는 탑을 건설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사를 중단하고 온 땅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상황을 창세기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인간의 욕망과 교만을 벌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봄날 꽃길 같던 한반도 분위기가 바람 불고 춘설 내리는 악천후로 급변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간 세기의 담판을 앞두고 갑자기 차가워진 냉기는 무엇 때문일까.

    서로가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인 듯하다. 사람들은 대화가 잘 안되면 상대를 비난하며 '말이 안 통한다'고 화를 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 오해를 사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세 사람 사이에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말이 안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말을 놓고도 서로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보니 대화가 될리 없다.

    남한의 문재인이 '완전한 비핵화'를 말하면 미국의 트럼프는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파괴로 읽는다. 그런가하면 북한의 김정은은 미국의 핵 전략자산 전개 금지를 포함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로 이해한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의제를 놓고 문재인과 트럼프, 김정은 세 사람 모두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다. 19일 트럼프와 문재인 간의 전화통화가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김정은을 만난 뒤 자기에게 전달해 줬던 개인적인 장점들과 북한의 공식 담화내용이 상충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고 한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22일 만나는 한미 정상이 각각 북한의 입장을 파악한 내용을 바탕으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과 적대시 정책 철회와 관련해서도 북한의 의도를 읽고 한미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정상회담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서로가 오해할 수 없도록 명확한 입장을 정리함으로써 말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지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신뢰가 떨어지고 불신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결국 상종하지 않게 된다.

    하늘에 오르겠다는 뜻을 모아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자 결국 흩어지고 말았다. 바벨탑이라는 거대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말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은 욕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탑이 완성됐을 때 더 많은 이득을 챙기려는 욕심이 작동하자 이전에는 잘 통하던 말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대화가 안 되자 서로 등을 돌려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말았다. 신이 인간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바벨탑 서사의 본질이다.

    문재인과 김정은 그리고 트럼프 사이에 오가는 말이 불현듯 통하지 않게 된 것은 서로에게 생겨난 욕심 때문일 확률이 높다. 욕심이 돋아나면 상대방의 말을 달리 해석하게 된다. 자기 욕심의 거울로 상대의 말을 비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석이 달라지면 같은 말이라도 엉뚱하게 받아들여져 말이 통하지 않게 된다.

    이 난제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문재인이 강조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이타심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입장이 되어보고, 김정은은 트럼프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한번 쯤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면 그동안 통하지 않던 말이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바벨탑이 그랬듯이 인간은 어리석다. 돌이킬 수 없게 됐을 때야 후회한다. 과연 문재인과 김정은 그리고 트럼프는 한반도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지혜와 용단을 발휘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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