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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죠"… MBC는 돌아선 시청자들 마음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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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었죠"… MBC는 돌아선 시청자들 마음 열 수 있을까

    [노컷 리뷰] MBC스페셜 '내 친구 MBC의 고백'

    14일 방송된 MBC스페셜 '내 친구 MBC의 고백' (사진='내 친구 MBC의 고백' 캡처)

     

    "그동안 보도를 안한 것도 있지만 악의적인 보도를 한 것도 있잖아요. 그런 건 다 어디 가고 뭔가 대외적으로 필요하니까 우리에게 연락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오늘 여기 오면서 약간 들더라고요. 이분들(MBC 구성원들)의 사과 퍼포먼스에 내가 끌려 나온 것인가 이런 생각도 살짝 들더라고요. MBC의 여러 보도들을 보지 않은 지 꽤 된 거 같고요.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저는 관심도 없었고, 물론 저희 아버지 사건을 여러 매체에서 다룬다면 그건 저한테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걸 MBC가 안 했다고 해서 제가 상처를 입었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냥 속된 말로 MBC가 뭘 하건 '안물안궁'이니까요."
    _ 故 백남기 농민 딸 백도라지 씨

    14일 오후 11시 방송된 MBC스페셜 '내 친구 MBC의 고백'에서는 딱 이틀 전 방송됐던 MBC 'PD수첩'보다 훨씬 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반응이 나왔다.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의 MBC를 표현했지만, 특징은 분명했다. 방송에 나온 그 누구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고, '사회적 약자'들로부터 더 강한 질책 혹은 더 깊은 체념이 나왔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직접 들어본 시민들의 목소리는 담담하고도 냉정했다. MBC뉴스를 즐겨보느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안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는 다양했다. "전 정권의 찌꺼기라는 생각", "국민이 알고자 하는 것을 가리는 뉴스", "이명박-박근혜 따까리라는 이미지", "권력의 개", "MBC가 뉴스인가를 먼저 묻고 싶다", "착한 척하는 악당 이미지" 등.

    MBC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예전의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약해졌다는 평을 꾸준히 들었다. 그 정점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수많은 언론이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안산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 외에도 MBC의 보도 행태는 도드라졌다. 진상규명 목소리를 왜곡하고 유가족을 폄하하는 보도가 걸러지지 않고 전파를 탔다.

    사고 당일 저녁뉴스에서 보험금을 계산했고, 16일 뒤에는 민간잠수사의 죽음을 성숙하지 못한 유가족의 조급증 탓으로 돌렸으며,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논란을 집중 조명했다. 광화문 천막 농성을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세월호 특별법의 목적과 취지,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는 데에는 소홀했지만 단원고 대입 특례나 보상액은 부각시켰다.

    내부 구성원들은 이 같은 보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입사 26년차 고참기자조차 MBC의 세월호 보도를 두고 "MBC에 대한 증오는 친정권적이라는 차원이 아니"며 "이 사회의 가장 약자를 괴롭혔기 때문에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장겸 사장 퇴진 및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의 파업 23일차였던 지난 9월 26일, MBC 구성원들은 안산 세월호 분향소를 찾았다. 그들을 향했던 날선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사진='내 친구 MBC의 고백' 캡처)

     

    故 박성빈 양 어머니 김미현 씨는 "유가족들 돈 많이 받았는데 아직도 뭘 더 받고 싶냐고 일주일 동안 계속 방송 나갔다, MBC에서. 그래서 저희 자식 팔아먹는 사람 만들었다"며 "정부 관료들이 방송 보고서 '전원구조 됐다고 한다'고 하더라. 그 역할도 MBC가 하셨다. 그럼 우리 아이들 저렇게 만든 데 일조하신 분들이 MBC다. 왜 안 싸우셨나"라고 반문했다.

    故 오영석 군 아버지 오병환 씨는 "나는 말 돌려서 못한다. 당신들은 쓰레기였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반성을 해야죠. 저희가 분향소 안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MBC 구성원들이) 먹고 살려고 비굴하게 산 게 솔직한 것(얘기)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당시 MBC라는 본래 이름보다는 '엠X신'이라는 비속어로 훨씬 많이 불렸고,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냉대를 받았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촛불집회 취재를 위해 MBC 로고를 떼고 JTBC 차량으로 위장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등장했다.

    바닥까지 치달은 상태에서, 돌아선 시청자들의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권력 비판을 피하지 않았고 소수자나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노력했던 건강한 과거가 있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MBC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로 MBC를 바꾸고 싶다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 MBC의 고백'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MBC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2010년대 입사자에서부터 1990년대 입사자까지 다양한 연령과 다른 경험을 지닌 'MBC인'들이 느끼는 바를 말했다. 단순히 망가진 MBC에 대한 애석함과 현장에서 느꼈던 피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과오를 인정하고 털어놨다.

    촛불집회는 줄이고 태극기 집회는 키우는 방향으로 편집된 리포트를 보면서 "제가 가서 열심히 촬영하는 게 결국 뉴스가 잘못 나가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는 사람, "공정방송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처절히 저항했는지 묻는다면 아니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는 사람, 4대강 보도를 막을 때 충분히 논박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검열을 해 아이템을 접었다는 사람, 비제작부서 발령 후에는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전에는 항의했을 것도 참게 된다는 사람까지.

    (사진='내 친구 MBC의 고백' 캡처)

     

    내부 구성원들은 짧게는 7년, 길게는 9년간 MBC에서 벌어진 '조직 황폐화'에 자신들 역시 책임이 있다며 머리를 숙였다. 보직 간부라는 자리와 뉴스의 공정성을 바꿔치기하는 내부자들이 너무 많았다거나, 이런 체제를 만들어 온 다수의 사람들이 솔직하게 참회해야 한다는, '치부를 드러내는 고백'이 이어졌다.

    또한 시민들은 각종 프로그램 파행으로 시청자들의 '불편'이 손에 잡히는 수준이었던 2012년과 달리 올해 파업에서는 하나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경험담을 전했다. MBC를 대표했던 프로그램도 이미 너무 힘이 빠진 상태였다. 'PD수첩'의 제보창은 무용지물이었고, 제작진은 "MBC는 너무 늦었죠"라는 말을 들으며 번번이 섭외를 거절당했다. 이는 더 이상 '지상파 프리미엄'도 고유한 '브랜드 파워'도 잃은 MBC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MBC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었을 때 많은 시민들이 '무한도전'이라고 답했다. 2012년 파업 이후 MBC를 대표하는 것은 '무한도전' 하나로 더 강력히 수렴돼 버린 것이다. 김태호 PD는 "'무도'가 제대로 방송 나가는 게 MBC 정상화를 위해 싸우시는 분들한테는 안 좋은 영향이 될 수도 있는데, 왜 응원해 주시지 생각하다가도 '아, 내가 더 잘해야 선배들과 동료들이 돌아올 수 있겠구나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3일 그간의 불공정 보도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꼽히는 김장겸 전 사장이 해임됐다. 2012년 파업 때 해고됐던 최승호 PD는 신임 사장이 된 후 노조와 '해직자 즉각 복직'에 합의하는 것으로 첫 행보를 펼쳤다. 이후 대규모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MBC는 '변화'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시도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파업 잠정 중단 후 재개된 MBC라디오 '시선집중' 첫 방송 당시 변창립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에는 MBC 구성원들의 다짐이 잘 담겨 있다. "길고 복잡한 얘기로 핑계대거나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공영방송 MBC를 지키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한 가장 큰 책임은 저희 MBC 구성원 모두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방송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왜 MBC가 이렇게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부-국정원-방송사 내부의 공범자들에 초점을 맞춘 'PD수첩-MBC 몰락, 7년의 기록'(12월 12일 방송)과, 보다 내밀한 구성원들의 토로와 시민들의 신랄한 평가가 더해진 이날 MBC스페셜-'내 친구 MBC의 고백'도 '반성'의 산물이다.

    방송은 "우리는 방송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심하고 공영방송으로서 정직한 언론과 건강한 문화 창달을 통해 사회적 공익과 국민이 권익 증진에 이바지할 것을 선언한다"는 MBC 방송강령의 글귀로 시작해서, 바로 그 글귀로 문을 닫았다. 공개적으로 드러낸 구성원들의 속죄와 반성의 '의지'가 약속의 '실현'으로 이어질까. 그 역시 내부의 노력에 달렸다.

    (사진='내 친구 MBC의 고백'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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