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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종료] '법꾸라지' 김기춘 어떻게 잡았나



문화 일반

    [특검 종료] '법꾸라지' 김기춘 어떻게 잡았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을 부른 핵심 공범으로 지목된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 지난 50여 년간 대한민국 권력의 심장부에서 호의호식해 온 '법꾸라지' 김 전 실장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운 무기는 특검의 '블랙리스트 그물'이었다.

    90일 동안 대장정을 이어오면서, 특검은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 전 실장을 필두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 등 모두 5명을 구속기소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각각 지난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대통령 비서실장, 2014년 6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면서 반정부 성향 예술인들을 소위 '좌파'로 몰아 각종 정부 지원에서 배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주도했다는 이야기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지난해 10월 12일이다. 당시 한국일보는 문화예술계 한 인사의 증언을 인용해 "지난해 5월 흔히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청와대에서 내려왔다"고 보도했다.

    이 명단은 블랙리스트 인사들을 크게 네 부류로 나눴다. 지난해 5월 1일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1608명까지 모두 9473명에 달했다.

    특검은 청와대와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하면서 문화·예술 분야에 개입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인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특검은 블랙리스트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작성·관리된 것으로 파악했다.

    당시 특검은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 문건 일부를 확보해 분석했고, 특정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 배제 명단이 실제 존재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특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가 지난달 6일 정례 브리핑에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소환 시기를 두고 "못 부르는 게 아니고 안 부르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블랙리스트 수사를 위한 특검의 촘촘한 그물은, 먼저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이를 이행한 것으로 알려진 정부 인사들에게로 향했다. 지난달 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등을 공개 소환하면서 '몸통'으로 지목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주변을 서서히 조여 간 것이다. 정 전 차관은 지난 2014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으로 일하면서 김 전 실장, 조 장관(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과 함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가 김 전 실장 지시로 정무수석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작성돼, 교육문화수석을 거쳐 문체부에 전달된 것으로 봤다. 당시 윗선의 지시를 받고 블랙리스트를 이행했다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이 이미 구속된 점도 이를 뒷받침했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특검보)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특검사무실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김기춘 조여 나간 특검의 촘촘한 그물, 뻔뻔함을 무너뜨리다

    그렇게 든든한 토대를 마련한 특검은 '법꾸라지' 김 전 실장을 향해 그물을 던졌다. 특히 특검은 김 전 실장의 국정 개입 의혹과 관련한 지시사항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확보하고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한 예로 이 비망록의 2014년 8월 6일 기록에는 '광주비엔날레특별전. 광주시장(윤장현)'이라고, 이튿날인 7일에는 '우병우팀, 허수아비 그림(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 8일에는 '광주비엔날레-개막식에 걸지 않기로'라는 메모가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한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을 가리키는 것이다.

    현실의 상황은 메모대로 흘러갔다. '세월오월'은 2014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광주 정신展'에 걸릴 예정이었으나, '대통령을 희화화한다'는 이유로 광주시로부터 수정 압박을 받았다. 수정 뒤에도 전시 유보 사태가 벌어지자, 홍 화백은 결국 '세월오월'을 전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이 적힌 다음날인 8월 8일 보수단체들은 이 작품을 고발했고, 같은 날 '세월오월 전시 유보 결정'이 나왔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 조치에 의혹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연출 이상호)도 김영한 비망록에 등장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인 2014년 9월 5일 메모에는 '다이빙벨-교문위-국감장에서 성토 당부(신성범 간사) 부산영화제 MBC 이종인 대표 이상호 출품'이라고 돼 있다. 이튿날인 6일에는 '다이빙벨-다큐 제작 방영-여타 죄책(죄를 물음)'이라고 쓰여 있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21일 블랙리스트 작성을 진두지휘한 혐의로 조윤선 전 장관과 함께 구속 수감됐다. 지난 국회 국정농단 국조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왔을 당시, '블랙리스트에 관여했냐'는 의원들의 추궁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 "모른다"로 일관하던 두 사람의 뻔뻔함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는 28일 오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가진다. 두 사람은 국회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특검은 이들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블랙리스트 공모자라고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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