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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접시에 궁녀의 마음 실어 보내니



공연/전시

    백자 접시에 궁녀의 마음 실어 보내니

    '신안 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2만여 점 전시

    시가 있는 접시靑白磁 釉裏紅 雙葉文 詩銘 盤원元 | 입지름 16.4cm | 신안18994(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신안해저선에 실려 있던 백자 접시 하나. 백자에 적힌 싯귀의 시적 정취와 조형적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뤄 그 인상이 삼삼하게 뇌리에 감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신안 해저유굴 발굴 4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25일 개막했다. 이 백자 접시는 전시 공간 맨 마지막에 배치된 유물이다.

    분홍빛 나뭇잎 두 개가 그려지 이 접시는 다음과 같은 싯귀가 쓰여 있다.

    流水何太急 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고 급하고
    深宮盡日閑 깊은 궁궐은 종일토록 한가한데

    이 싯귀는 당나라 때의 한 궁녀가 지은 시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그 후반도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殷勤謝紅葉 은근한 마음 붉은 잎에 실어 보내니
    好去倒人間 인간 세상으로 쉬이 흘러가기를

    먼저 이 시의 정취를 음미해보자.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빨리 지나가는데, 깊은 궁궐은 아무 일 없이 한가하기만 하다. 궁녀의 입장에서 보면 권력자의 눈에 띄어 사랑을 나누는 일에 바빠야 하건만, 한가하다는 건 자신의 존재감이 없다는 얘기이다. 이 시의 후반부에서 은근한 마음을 붉은 잎에 실어보내니, 인간 세상으로 쉬이 흘러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붉은 잎은 사랑을 불태울 수 있는 완숙한 나이에 이르렀음을 의미하고, 또한 이 때가 지나고 나면 잎을 떨구는 게 자연의 섭리인만큼 좋은 시절을 놓치지 말라는 뜻도 던지고 있다. 하얀 백자 바탕에 분홍빛 발그레한 잎이 새겨진 백자를 대한 권력자라면,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궁녀가 누구인지 마땅히 떠올리게 되리라. 이 백자를 만든 도공의 재기넘치는 감각에 감탄이 나온다. 권력자의 시선을 끌고 싶은 궁녀라면, 이 백자를 구해 여기에 음식을 담아 올리고 싶으리라. 인생과 자연의 진리를 짧은 문구에 담은 시, 그리고 그 시를 하얀 백자 위에 분홍빛 잎과 함께 그려낸 도공의 솜씨가 놀랍고 경이로울 뿐이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신안해저선은 당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이 서려 있는 침몰선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는 생활사와 문화사를 보여주는 '보물선'으로 남았다. 그 당시 신안해저선에 탔던 모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국화 ·구름 ·봉황무늬 접시용천요 원대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

     

    지금까지 여러 차례 신안해저선에서 발굴된 문화재들을 전시해 왔지만, 종류별로 대표성이 있는 것들만을 골라서 공개한 명품 위주의 전시였다. 2만 4천여 점에 이르는 발굴품 가운데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전체의 5% 정도인 1천여 점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특별전에서는 신안해저선의 전모를 생생히 실감할 수 있도록, 발굴된 2만 4천여 점의 문화재 가운데 현시점에서 전시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모아 공개한다.

     

    특별전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신안해저선의 문화기호 읽기’에서는 복고풍의 그릇들과 차茶, 향, 꽃꽂이 등과 관련된 완상품들을 소개한다. 이로써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중국적 취향과 그에 따른 일본 상류층이 선호했던 문화생활을 살펴보고, 나아가 고려에 있었던 비슷한 문화적 취향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제2부‘14세기 최대의 무역선’에서는 신안해저선이 닻을 올렸던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닝보(寧波)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역 활동을 소개한다. 신안해저선의 선원과 승객들의 선상 생활도 살펴본다.

    연꽃 넝쿨무늬 주전자고려 12-13세기

     

    제3부‘보물창고가 열리다’는 으뜸 전시공간으로서 신안해저선에 실렸던‘화물’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도록 도자기, 동전, 자단목, 금속품 및 향신료 등을‘큰 덩어리’로 소개한다. 일부는 당시의 발굴 상황 등을 재현해 전시한다. 이로써 신안해저선의 실체와 함께 중세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양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가 타임캡슐처럼 650여 년 만에 나타난 신안해저선 발굴 문화재들은 14세기 동아시아의 경제적·문화적 교류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신안해저선은 당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이 서려 있는 침몰선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는 '보물선'으로 남았다. 신안해저선에 탔던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특별전 연계 학술행사로서 9월 2일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마련하며, 전시 내용과 수량을 조정하여 국립광주박물관에서도 개최한다(기간: 2016.10.25.~2017.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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