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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일이 넘었는데, 아직 사과 한 마디가 없어요”



사회 일반

    “200일이 넘었는데, 아직 사과 한 마디가 없어요”

    물대포 맞고 의식불명 200일.. 농민 백남기 씨 장녀 백도라지 씨

    - 뇌 영구적 손상.. “의식 회복하기 어렵다고..”
    - “아빠는 자식들 사랑하시고 친구들 좋아하신 그냥 농부였어요”
    - "검찰이 수사만 제대로 했으면.. 이게 국회까지 나서야 될 일인가요?"
    - “당시 경찰청장 아직도 자리보전.. 견딜 수가 없어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6월 2일 (목)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백도라지 (농민 백남기 씨 장녀)


    ◇ 정관용> 지난해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이걸 요구하는 행사였고 무려 13만 명이 운집한 대규모 시위였죠.

    그런데 그날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 중에 물대포에 맞고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202일 됐네요.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고 계시지 못한데요. 지난 3월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해오고 있는 백남기 씨의 큰 따님입니다. 백도라지 씨를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백도라지> 안녕하세요.

    ◇ 정관용> 어느 병원에 계시죠, 아버님이?

    ◆ 백도라지> 지금 서울대병원에 계세요.

    ◇ 정관용> 전혀 차도가 없습니까?

    ◆ 백도라지> 네. 머리를 그때 워낙 크게 다치셨고 해서 뇌출혈 수술을 하셨고 그때부터 의식은 계속 없으셨고요. 지금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보니까 장기들도 약간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간염수치라든지 이런 것들도 올라가고 있어서요. 썩 좋은 상태는 아니세요.

    ◇ 정관용> 의식 없으시고.

    ◆ 백도라지> 네, 호흡기 꽂고 계세요.

    ◇ 정관용> 호흡기 꽂고 계시고. 계속 영양제 같은 거 링거투약 그런 식으로 그냥 버티고 계시고.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스스로 호흡도 못 하시는군요, 그러니까.

    ◆ 백도라지> 네. 100% 기계 호흡이에요.

    ◇ 정관용> 처음부터 그런 상태였습니까? 수술 직후부터?

    ◆ 백도라지> 네. 병원에 실려 오셨을 때부터 호흡기를 끼고 계셨어요.

    ◇ 정관용> 그때부터.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그리고 뇌출혈 수술 다 끝나고서도.

    ◆ 백도라지> 계속.

    ◇ 정관용> 계속.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네요.

    ◆ 백도라지> 네,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 정관용> 그러면 병원에서 지금 하고 있는 조치는 별다른 치료라든가 이런 건 없군요?

     


    ◆ 백도라지> 보존적 치료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뇌가 다친 건 영구적으로 손상이 된 것이기 때문에 뇌가 다시 회복되도록 하는 치료는 사실상 없고요. 몸의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약물 투여라든지 수액 투여라든지 그다음에 온도가 떨어지면 높이고 온도가 또 너무 낮아지면 데우고 이런 식으로 온도 맞추는 것, 혈압약 등등 그런 처치예요. 보존적 치료라고 하시더라고요.

    ◇ 정관용> 언급하신 것처럼 이제는 장기에도 문제가 생기고 그러면 걱정이 크시겠어요.

    ◆ 백도라지> 네. 너무 누워계시는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장 마비 같은 것도 오고 췌장 기능도 조금씩 떨어져서 인슐린도 맞으셔야 되고요. 그런 식으로 약간씩 문제들이 오고 있어요.

    ◇ 정관용> 병원에서는 그래도 극적으로 회복되실 가능성이 있다. 이런 얘기를 하긴 합니까? 어떻습니까?

    ◆ 백도라지> 의식을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하셨어요.

    ◇ 정관용> 의식은 어렵고. 호흡을 되찾거나 이런... 그것도?

    ◆ 백도라지> 그것도 사실상은 어렵다고 봐야 될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나저나 지금까지 치료비나 병원비도 상당할 텐데 그건 어떻게 지금 하고 계십니까?

    ◆ 백도라지> 지금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모금을 하셔서 그걸로 충당하고 있어요.

    ◇ 정관용> 경찰이나 이런 데서 병원비도 안 줍니까?

    ◆ 백도라지> 네. 사과하러도 안 왔으니까. 아직 인정을 안 하고 있는 거고 그다음에 강신명 경찰청장은 그 사건 발생 직후에 질문을 받았을 때 ‘법적으로 잘잘못을 가려야 되는 문제다’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아직 수사가 진행이 안 되고 있으니까요.

    ◇ 정관용> 그러니까 사과조차 안 했고.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는 말은 했지만.

    ◆ 백도라지> 수사가 진행이 안 되고 있고요, 검찰에서.

    ◇ 정관용> 그런데 가족 분들께서 그 당시에 경찰관계자들 고발하시지 않았습니까?

    ◆ 백도라지> 네. 고발했죠.

    ◇ 정관용> 그 고발한 게 언제인데요?

    ◆ 백도라지> 고발한 게 11월 17일이에요.

    ◇ 정관용> 그 사고 있고 바로 직후인데. 그럼 고발인 조사도 안 했어요?

    ◆ 백도라지> 고발인 조사는 고발장 접수하고 한 달 지나서 한 번 불러서 갔고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 정관용> 전혀 통보가 없어요?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지금 몇 달인데.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어허. 고발은 어떤 죄목으로 고발을 하셨죠?

    ◆ 백도라지> 살인미수로요. 경찰청장 이하 7명 경찰관들을 고발을 했죠.

    ◇ 정관용> 그 7명은 아마 현장지휘책임자, 이런 식으로 갔겠죠.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실제 살수차에서 물대포를 쏜 경찰관이 누구인지 이런 것까지 신상파악이 됐습니까?

    ◆ 백도라지> 그건 국회에서 질의서를 보내셔서 그때 살수차 조작한 경찰관이 2명이다. 그렇게만 있고 누구인지 이런 건 몰라요.

    ◇ 정관용> 그러면 고발장에도 아마...

    ◆ 백도라지> 직위로 들어가 있어요.

    ◇ 정관용> 직위로만 그냥 2명, 이렇게 하셨겠군요.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고발하고서도 고발인 조사 끝나고 전혀 진척이 없다, 경찰 단계에서.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검찰로 넘어갔다든지 이런 것도?

    ◆ 백도라지> 아니요. 애초에 검찰에서 수사를 했고요.

    ◇ 정관용> 아, 검찰에서 시작을 했고.

    ◆ 백도라지> 검찰에 가서 고발인 조사를 받은 거고 고발인 조사를 했으니까 그다음 피의자 조사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만약에 경찰청장이 출두를 했다거나 했으면 제가 언론보도로 알았을 텐데 전혀 그런 게 없고 그다음에 다른 기자님들이 검사님한테 전화를 해 봤다고 하는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어서 한마디도 해줄 수 없다’ 이런 답변을 받으셨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수사 진행되고 있는 기미가 없는데 답변을 못 한다.

    ◆ 백도라지> 네.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 정관용> 법적으로 그렇게 수사 안 하고 계속 시간 끌어도 상관없는 건가요?

    ◆ 백도라지> 변호사님 말씀으로는 그런 고발장에 들어온 지 3개월 내에 진행을 시켜야 된다는 내부 규정 같은 게 있대요. 그런데 그게 법적인 구속력이 있지는 않나 보더라고요.

    ◇ 정관용> 그러니까 지금 경찰 측은 살인미수 이건 물론이고 업무상 과실 이런 것조차 인정을 안 하는 거죠?

    ◆ 백도라지> 그렇죠.

    ◇ 정관용>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

    ◆ 백도라지> 그렇죠.

    ◇ 정관용> 하지만 국회나 이런 데서 많이 논의가 됐잖아요. 살수차라고 하는 것을 직접 직사해서는 안 된다. 이런 규정들이 있지 않습니까?

    ◆ 백도라지> 네. 그리고 변호사님들의 해석에 따르면 경찰 내부에 살수차 운용지침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그 운용지침이 일단 법적인 근거가 없어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그 내용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경찰 내부에 있는 지침이고요. 그래서 그 살수차 운용지침 자체가 법적인 근거가 없는데 그 지침조차도 어겼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요.

    ◆ 백도라지> 그래서 저희가 그걸로 헌법소원을 냈어요, 지금.

    ◇ 정관용> 아. 어떤 걸로 헌법소원을 내신 거예요?

    ◆ 백도라지> 살수차 운용지침이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거랑 직사살수가 위헌이라고 그런 논지로 헌법소원에 제출했어요.

    ◇ 정관용> 그건 제출만 된 상태고?

    ◆ 백도라지> 네. 그것도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 정관용> 참... 아버님은 어떤 아버님이셨습니까?

    ◆ 백도라지> 아버님이요? 저희 아빠는 자식들 되게 사랑하시고요. 친구들도 좋아하시고 술도 좋아하시는 그냥 그런 농부셨어요.

    ◇ 정관용> 형제가 어떻게 되시죠?

    ◆ 백도라지> 1남 2녀.

    ◇ 정관용> 맏딸이시고?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밑으로?

    ◆ 백도라지> 남동생, 여동생.

    ◇ 정관용> 남동생, 여동생. 백남기 씨가 68년도에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셨더라고요. 그런데 학생운동을 꽤 열심히 하셨던 모양이에요.

    ◆ 백도라지>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 정관용> 몇 번 제적도 당하시고.

    ◆ 백도라지> 네. 3번? 졸업은 못하셨어요, 결국.

    ◇ 정관용> 결국. 그러다 80년도 서울의 봄 때 복학하셔서 총학생회 부회장도 하셨더라고요.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68학번이 80년도면 굉장히 나이가 많으셨을 텐데.

    ◆ 백도라지> 네. 서른 넘어서 학교로 돌아간 거죠.

    ◇ 정관용> 그런데 총학생회... 원래 그때는 정상적으로 그 당시 다니고 있던 사람들이 주로 학생회를 맡는데.

    ◆ 백도라지> 네, 그래서 학생회장은.

    ◇ 정관용> 한참 후배.

    ◆ 백도라지> 네. 그리고 부학생회장을 복학생이 맡았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또 그러고서는 5월 17일날 잡혀가셨죠?

    ◆ 백도라지> 네. 학교로 군인들이 와서 잡아갔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런데 언제부터 농사를 지으셨던 거예요?

    ◆ 백도라지> 그때 80년 5월 17일에 구속되셔서 군사법정에서 재판받고 수감되셨다가 그다음 해인 81년도 3월에 3.1절 특사로 나오셨거든요. 그래서 출소하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가셨죠.

    ◇ 정관용> 그래요?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그러니까 68년도 대학 입학 이후는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그런 인생을 사시다가. 그러면 특사를 나오신 후에 더 민주화운동을 하시거나 아니면 정치를 하시거나 아니면 어디 대기업이나 이런 데 취업도 하실 수 있었을 거고. 아, 졸업장이 없어서 안 됐나?

    ◆ 백도라지> 그렇죠. 졸업장은 없었죠. 졸업장은 없었고 정치를 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으셨을 것 같고요. 그런데 원래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짓고 싶으셨었대요. 그래서 애초에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농고를 가겠다고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청 뜯어말리셨다고. 그런데 행정학과를 가면 농림부가 또 있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백도라지> 그러니까 농림부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농부랑 비슷한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셨었다고 그래요.

    ◇ 정관용> 농촌, 농사에 대한 사랑이 많으셨군요?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그래요. 그리고 한때 68년 대학 입학 후 몇 번 제적당하시는 사이에 수도사 생활도 하셨다고 자료에서 봤어요.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천주교 신자이신 거 맞죠?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수도사 생활을 했다는 것은 아예 신부님이 되고 싶었다는 얘기인가요?

    ◆ 백도라지> 수사님.

    ◇ 정관용> 수사.

    ◆ 백도라지> 네. 그러니까 수배되고 그래서 계속 도망 다니시고 이럴 때 73년? 그쯤에 명동성당에서 피신을 하셨었대요. 그래서 명동성당에서 한 2년 정도 계셨었는데 그때 천주교로 입교를 하시게 됐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 포도농장 이런 데서 일도 하시고 그러다가 그러면서 수녀원에서도 일 거드는 것, 머슴 같은 걸 하셨었대요. 그러다가 아마 수도원에 가시게 된 것 같아요. 수사를 해야 되겠다 생각을 하시고.

    ◇ 정관용> 그러다 어떻게 또 나오셨대요?

    ◆ 백도라지> 아빠가 외아들이시거든요.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게 애가 타셨을 거예요.

    ◇ 정관용> 그랬구나. 대 끊긴다.

    ◆ 백도라지> 네, 그런 거겠죠.

    ◇ 정관용> 그래도 어떻게 나오셔서 결혼해서 아들까지 두시긴 했네요.(웃음)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할아버지, 할머니 원은 푸셨네.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방금 말씀하신 바로 밑에 남동생, 그 밑에 여동생인데 여동생이 백민주화? 큰 딸은 백도라지, 가운데 아들은 이름이?

    ◆ 백도라지> 백두산.

    ◇ 정관용> 참 자식들 이름을 아주 독특하게 지으셨네요.

    ◆ 백도라지> 네. 무슨 생각이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 정관용> (웃음) 백민주화, 막내. 네덜란드 이런 해외에서 1인 시위하는 모습, 저희도 많이 언론보도를 통해서 봤는데.

    ◆ 백도라지> 결혼해서 네덜란드에 살고 있어요.

    ◇ 정관용> 그렇죠. 그 네덜란드 현지에서 1인 시위하는데 현지 네덜란드 시민들이 굉장히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고요.

    ◆ 백도라지> 네. 한국에서 일어난 일 맞냐? 북한 아니냐. 그런 말씀도 하시고 지나가는 경찰관 분들이 읽어보더니 ‘같은 경찰로서 내가 미안하다’ 그런 얘기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 1인 시위는 지금도 계속 이어갑니까, 아니면.

    ◆ 백도라지> 지금은 안 하고 있고요. 그때가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기간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했던 거고 지금은 이번 달에 제네바에서 UN 인권위원회 총회가 열리거든요. 그래서 저번 1월 달에 UN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님이 오셔서 조사를 하고 가셨어요. 그래서 그 보고서를 이번 6월 총회 때 제출을 하고 그걸 그 보고서를 채택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제네바에 아마 제 동생이 갈 것 같아요.

    ◇ 정관용> 네. 그 보고서의 내용은 혹시 파악되셨어요?

    ◆ 백도라지> 보고서 내용은 그때 출국하시면서 출국기자회견에서 간단하게 밝히셨는데요. 그 특보님이 한국이 차츰차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고 그런 집회결사의 자유라든가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는 정황이 있다, 이렇게 결론을 내셨었고. 그런데 경찰은 그 보고서가 틀렸다, 반박자료를 내겠다는 대응을 했어요.

    ◇ 정관용> UN 인권위원회에서조차 공식적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후퇴를 지적하고 있군요.

    ◆ 백도라지> 네. 그래서 그 보고서가 채택이 되면 UN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 권고사항을 내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백도라지 씨는 지금 청와대 앞에 1인 시위를 이어가고 계시죠?

    ◆ 백도라지> 네. 주말에 하고 있어요.

    ◇ 정관용> 언제 시작하셨죠?

    ◆ 백도라지> 3월 하순부터.

    ◇ 정관용> 요구사항은요?

    ◆ 백도라지> 요구사항은 수사하고. 사과하고 처벌하라고 하고 있죠.

    ◇ 정관용> 수사, 사과, 처벌. 혹시 가족들한테 경찰이나 경찰 외의 어떤 정부관계자나 연락 온 적 있습니까?

    ◆ 백도라지> 저희 아버지가 서울대병원에 계시잖아요. 그래서 가까운 혜화경찰서의 정보관님이 한 분 담당이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이 그냥 와서 아버지 상태 물어보고 가시고. 그런데 그분이 사과를 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확인하러 오시는 분이 한 분 계시고 그 외에는 없죠.

    ◇ 정관용> 그분은 가족들한테 뭔가 메시지를 전하는 그런 분이 아니죠?

    ◆ 백도라지> 아니죠.

    ◇ 정관용> 자기 업무하는 거죠.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자기 관할의 정보 보고해야 하는 당사자 대상이니까.

    ◆ 백도라지> 순찰 오시는 거죠.

    ◇ 정관용> 순찰. 좀 심하게 말하면 감시.

    ◆ 백도라지> (웃음) 네, 그렇죠.

    ◇ 정관용> 그 외에는 전혀 없다?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아무도?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얼마 전에 농민 출신 유일하게 이번에 국회의원 당선된 김현권 의원,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농민이시고 해서 저희가 백남기 씨 건을 물어봤더니 국회 청문회를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정치권 쪽의 반응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 백도라지> 우선 야3당에서 합의사항으로 저희 아버지 건하고 세월호, 어버이연합 또 다른 건을 청문회 추진을 하겠다고 야3당이 공동으로 발표를 하셨었더라고요. 그리고 각 야 3당에서 어쨌든 의원 한 분 이상씩은 약간 담당같이 해서 청문회 준비를 하는 TF 회의를 하고 계시고요.

    그런데 그게 여소야대이긴 하지만 과반은 아니어서 새누리당이 반대를 하면 잘 안 될 것 같은, 잘 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새누리당의 협조를 끌어내야지 추진이 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더라도...

    ◇ 정관용> 여소야대고 과반은 야당이 하고 있지만 국회선진화법, 이런 거 때문에. 그렇죠?

    ◆ 백도라지> 네, 그런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래도 아무튼 야3당이 첫번째로 규명해야 할 사안의 대상으로 꼽았다는 점. 이런 점들이 좀 기대해볼 만한 그런 대목이군요.

    ◆ 백도라지> 네. 그런데 저는 이것을 어쨌든 한 명의 생명이 거의 침해당한, 생명권이 침해당한 범죄사건인데 이게 국회까지 나서야 될 일인가. 검찰이 수사만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고 검찰이 수사하고 경찰들 옷 벗고 감옥 가고 그러면, 그렇다고 해서 저희 한이 다 풀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해결이 되는 거잖아요.

    ◇ 정관용> 그게 정상적 절차죠.

    ◆ 백도라지> 네. 그런데 그게 안 돼서 국회의원님들까지 나서야 된다는 게 사실 저는 받아들이기가 좀 힘들어요.

    ◇ 정관용> 정부한테, 대통령한테도 좋고. 누구한테도 좋고. 한 말씀 하시죠.

    ◆ 백도라지> 대통령한테도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다음에 저는 가장 참을 수 없는 게 그 진압 책임자인 강신명 경찰청장이 온전히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는 게 제일 참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분이 빨리 파면되기를 아니면 누군가가 파면을 안 시킨다면 본인이라도 사임을 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 정관용> 고발한 지휘체계에 있는 분들, 다 지금 다들 경찰에 근무하고 계시죠?

    ◆ 백도라지> 네. 잘 근무하고 계시고 승진까지 하셨다고 들었어요.

    ◇ 정관용> 승진?

    ◆ 백도라지> 네.

    ◇ 정관용> 누가요?

    ◆ 백도라지> 그때 진압에 참가하셨던 경찰 분들이 그 진압이 끝나고 나서 승진을 했다는 기사를 봤거든요. 그러니까 진압을 잘 했다고 칭찬을 하는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저희도 앞으로 끝까지 관심 갖고 계속 정부를 향해 함께 이야기를 하겠고요. 부디 기적적으로 아버님 회복되시기를 정말 바랍니다.

    ◆ 백도라지>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백도라지> 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관용> 백남기 씨의 큰 따님 백도라지 씨 함께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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