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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 가사도우미는 왜 법 앞에 유령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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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배동 가사도우미는 왜 법 앞에 유령이 됐나

    • 2016-04-05 06:00

    [노동의 그늘 속 가사도우미 ②] "아파도, 다쳐도 내 책임" 법 앞에 실종된 이들

    '新 하녀' 소변이 급해도 일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꽝꽝 언 밥을 먹고, 비싼 목걸이가 없어졌다며 의심을 받기 일쑤다. 다른 가정의 가사 노동을 대신 해주는 가사도우미들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속에 일하면서도 '근로'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CBS는 63년째 법 앞에 실종된 가사도우미의 실태를 짚어보고 이들이 노동자로 바로 서기 위한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사모님이 만족할 때까지" 21세기 新하녀 일기
    ② 방배동 가사도우미는 왜 '법' 앞에 유령이 됐나
    ③ "한번 만져주면…" 성희롱 '고객' 오늘도 모십니다
    ④ "고용주가, 아줌마 아닌 가정관리사로 불러준다면"
    ⑤ 가사도우미도 新하녀도 아닌, 노동자로 서는 길
    전화 한 통에 해고 당하고, 몸이 힘들어도 쉴 수도 없는 가사노동자들 (사진=서울YWCA 제공)

     

    지난 1월 28일 서울 서초구 한신 서래아파트 3층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오전 11시 30분 점심식사 시간을 앞두고 시작된 불은 30여분만에 꺼졌지만 집안에서 가사일을 돕던 조선족 출신 이모(54,여)씨는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일을 시작한 지 3개월만에 '사고'를 당한 이씨.

    집주인 가족들이 대신 장례를 치러주고 장지를 마련해주는 걸로 그의 죽음은 '마무리'됐다.

    '일터'에서 업무 중 사망했지만 그에게 적용되는 보상이나 보험은 없다.

    근로기준법과 함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도 가사도우미와 같은 가사사용인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헙법 시행령 2조 4항 (사진=법조문 캡처)

     

    ◇ 깨진 유리에 손바닥이 찢어져도 보상 無

    가사서비스가 법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다보니 업무중 발생하는 '사고'는 가사도우미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 됐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가사도우미 800명을 상대로 벌인 '가사서비스 노동자의 노동환경 건강실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490여명(61.3%)이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위험한 곳을 청소하도록 하는 사용자의 요구를 따른 적 있다고 답했다.

    요구에 따라 일한 가사도우미 10명 중 2명(90명)은 실제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도 조사됐다.

    그러나 사고 이후 병원 치료를 받거나,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는 등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70%뿐이었다.

    10명 중 3명은 다쳐도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병원 치료비나 약을 구입한 비용을 대부분 본인이 지불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0년 넘게 가사도우미를 하고 있는 정모(54)씨는 "동료가 쓰레기봉투를 치우다 안에 있던 깨진 유리컵에 손바닥이 찢어진 적이 있어도 보상은커녕 몇달 동안 일을 못 나가는 걸 보고 면장갑을 꼭 준비한다"고 말했다.

    베란다 창틀을 닦다 어깨 근육 파열로 3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는 박모(58)씨는 "입원 당시 옆 침대 환자는 취직한 지 4일째에 다쳤어도 회사의 보험을 적용받았다"면서 "병원비 370만원을 고스란히 내가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서러웠다"고 말했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중개업체들도 도우미들이 다쳤을 경우 개인 보험으로 처리하길 권하고 있다.

    규모가 큰 A 중개업체의 경우 "도우미들이 부상당했을 때를 대비한 보험은 없다"며 "다만 파손된 물건에 '고객'이 다쳤을 경우에만 보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전화 한 통에 해고…미래가 없는 직업"

    언제 일을 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도 가사도우미들의 고충 중 하나.

    약속 시간을 앞두고 '다음에 와 달라'는 취소 전화 한 통에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최모(49,여)씨는 "월요일과 목요일 청소를 가기로 했는데 가족들이 중국 여행을 간다고 해 한주 동안 일을 전혀 못했다"며 "가사도우미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미래가 없는 직업"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생계형 가사도우미 강모(53)씨는 "일하면서 가장 불안한 부분은 고용"이라며 "몸이 너무 힘들어서 몇 달만 쉬겠다고 하면 그 날로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안창숙 행복한돌봄협동조합 이사장은 "갑자기 전화 한 통에 일할 곳이 없어지는 게 가사도우미들의 현실"이라며 "노동관련법이 하루빨리 개정돼 가사도우미들에게 4대 보험이 적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진심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서울지부장은 "청소하다 다쳐도 치료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고 '오늘은 집에 오지 말라'며 막무가내 해고를 당해도 가사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한다"며 "가사도우미도 노동자로 인정하고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부장은 "내 몸이 다쳐도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루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라며 "노동부는 왜 가사노동자 입법화를 미루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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