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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우황을 구하려 소를 무차별 도살하다



문화 일반

    [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우황을 구하려 소를 무차별 도살하다

    음력 7월 16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숙종의 명에 따라 생우황을 구하기 위해 농사에 필요한 소까지 무차별적으로 도살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1713년(숙종 39)에 숙종은 생우황을 대궐 안으로 들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우황은 구하기 쉬운 약재가 아니었습니다.

    우황은 소의 담낭이나 담관에 염증으로 생긴 결석을 건조시켜 만든 약재로 사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즉 모든 소가 우황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우황 조달이 쉽지 않았는데, 숙종은 빨리 구할 것을 다그쳤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 소를 사사로이 도살할 것을 허가하기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이후 불과 며칠 사이에 수백마리의 소가 죽어 나갔는데, 소는 농사에 꼭 필요한 가축이다보니 백성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이에 홍우서라는 관리가 "소안에 우황이 있는지 여부를 겉에서는 알지 못하므로 갑자기 구하기가 어렵고, 이미 수백마리가 도살됐으나 우황을 많이 얻지 못했다"며 굽어살펴달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숙종은 "생우황을 얻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비록 짐승이지만 불쌍하니 푸줏간의 도살을 우선 닷새간 정지하라"고 뒤늦게 지시했습니다.

     

    ■ 세종 1년 (1419) : 왜적을 잡지 못한 충청도 수군절제사를 개인 말로 상경케 하다
    ⇒ 왜적을 놓친 충청도 수군절제사를 벌 주기 위해 서울로 불렀는데 공용 말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 세종 16년 (1434) : 자치통감을 인쇄할 종이 30만권을 마련토록 지시
    ⇒ 자치통감 : 중국 북송의 사마광이 편찬한 역사서
    자치통감을 큰 활자로 인쇄해 노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하려고 5~6백 질을 인쇄할 종이 30만 권을 준비하라 했다. 당시 종이는 매우 귀해 여러 관청이 공동으로 종이를 준비 했다

    ■ 광해 9년 (1617) : 1, 2년내에는 집 짓는 것을 금지하라고 한성부에 지시
    ⇒ 궁궐을 짓는데 동원된 장인들을 대신들이 집을 짓는다고 빼내가 공사가 늦어지자 1~2년간 집을 짓지 못하게 했다

    ■ 숙종 39년 (1713) : 임금이 생우황을 찾는 바람에 수백 마리의 소가 도살당하자 반대 상소가 올라와 중단했다

    ■ 정조 12년 (1788) : 여름철에 사냥한 멧돼지를 봉진하지 못하게 하다
    ⇒ 한창 바쁜 영농철인 여름에 사냥한 멧돼지를 상납하지 말라고 했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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