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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한 조선문화재와 오구라…그리고 JP와 전두환?



문화재/정책

    약탈한 조선문화재와 오구라…그리고 JP와 전두환?

    日이 한일협정 깼으니 정부가 문화재 환수 나서야

    도쿄박물관이 소장중인 고종황제의 투구

     



    ■ 방 송 : FM 98. 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8월 15일 (목) 오후 6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

    ◇ 정관용> 어제 오늘 인터넷 상에서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 투구를 되찾기 위해서 그 캠페인 자금을 모으자. 인터넷 모금운동이 진행 중입니다. 이게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라는 사람이 가져간 것으로 지금 알려지고 있는데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일본에 가 있게 됐는지, 환수할 수 있는 것인지.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 황평우>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게 조선왕실 투구인 것은 분명해요?

    ◆ 황평우> 네, 맞는 것 같습니다. 현재 지금 투구가 있는 곳이 러시아에도 있고요. 미국에도 있고 일본 동경박물관에도 있는데 세 투구를 비교해 보면. 일본 동경박물관에 있는 게 가장 화려하고요. 어떤 기법들이나 보관상태 이런 것들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왕실에서 임금께서 한 벌 정도만 입는 게 아니라.

    ◇ 정관용> 여러 벌 있겠죠.

    ◆ 황평우> 두세 벌 정도 있으니까 러시아에도 가 있고. 러시아는 김일성이 기증했다라고 하고요. 그다음에 미국은 덕수궁에 있던 걸 가져갈 수도 있고요. 이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수집해서 가져갈 수도 있죠.

    ◇ 정관용> 투구뿐 아니라 갑옷도 있다고 해요.

    ◆ 황평우> 그럼요, 제가 외규장각 환수운동도 했지만요. 왕실에서 쓰던 물건은 쉽게 말하면 로열패밀리들 아닙니까? 그분들이 쓰던 건데 당대 최고의 공예 그다음에 기능, 여러 가지 작품들 그다음에 재질 이런 것들은 당시 최고의 수공예품이죠. 그래서 민속이나 공예적으로나 또 옷감 이런 차원에서도 보면. 전쟁사 이런 것에서 보면 최고의 작품은 당연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조선왕실이라고 그랬는데 또 왕마다 다 자기 옷을 따로따로 만들었을 것 아니에요.

    ◆ 황평우> 그렇습니다. 한 벌이 아니니까요.

    ◇ 정관용> 이건 누구의 것일까요?

    ◆ 황평우> 현재 추정하기로는요. 저희들이 아직까지 저도 지금 오구라컬렉션 도록을 쭉 보고 있는데. 아마 고종황제나 순종황제 정도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추정이군요.

    ◆ 황평우> 네.

    ◇ 정관용> 오구라라는 사람이 어떤 사업을 했던 사람이고 몇 점 정도나 가져간 거예요?

    ◆ 황평우> 지금 우리가 조금 이해를 했어야 되는데 오구라컬렉션이 있고요, 오구라호텔이 있어요. 이게 뭐냐면 오구라라는 사람이 대구 쪽에 와서 어떤 중소기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인데요. 이 사람 이름은 오구라 다케노스케. 그러니까 이 양반이 아주 악질적으로 한국에서 대구, 경북 쪽의 문화재를 많이 훔쳐갔는데요.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보고 “뭐뭐 가져오면, 무덤에 들어가서 도굴해 오면 엿 줄게.” 이런 식으로 해서도 많이 가져갔고요. 이렇게 가져간 것만 해도 이 사람이 1981년도에 죽으면서 아들한테 주고 그 아들이 동경국립박물관에 기증을 한 것만 1000점이 넘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1000점밖에 없었느냐 이건데요. 그러면 환수는 해 왔냐, 환수는 하나도 못해 왔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 400점은 빼앗아 왔습니다.

    ◇ 정관용> 어떻게요?

    ◆ 황평우> 이게 무슨 얘기냐면요. (웃음) 이 양반이 대구에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기 저택이 있었어요. 관리인도 두고요. 그런데 64년도에 우리나라의 방첩대장이 그 집에 있다는 걸 알고 전부 압류를 해 버립니다. 64년도면 혁명군부겠죠. 당시의 방첩대장이면 아마 제가 알기로 영문 이니셜이 JP라고 제가 알고 있는데요..

    ◇ 정관용> 김종필 전 총리.

    ◆ 황평우> 네. 압류를 했는데 당시에 이 압류품들을 전부 수집해서 공화당 창당하면서 여당, 야당 하나씩 선물주고 ...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82년도 신군부 때 부정축재자 압류한 것 아시죠?

    ◇ 정관용> 네.

    ◆ 황평우> 그때 이 김종필 씨 집에 도자기 있던 걸 다 압류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화면에 잠깐씩 도자기하고 몇 점 보였죠?

    ◇ 정관용>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갤러리 이런 데서.

    ◆ 황평우> 시공사 같은 데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 작품들이 남아있는 게 이번에도 다시 한번 압류된 것 아니냐.

    ◇ 정관용> 그것도 역시 아직은 추정이죠?

    ◆ 황평우> 그런데 이것은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제작하고 있는 중에 제가 인터뷰한 것을 처음 말씀드리는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어쨌든 오구라라는 사람이 해방되고 바로 모든 자기가 수집했던 걸 다 가져간 게 아니고. 60년대까지 그냥 한국에 갖고 있었던 것도 있었군요.

    ◆ 황평우> 대구에 가면 오구라 저택이 있었는데 여기에 한 400여 점의 여러 가지 도자기와 회화작품들이 남아 있었죠. 그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죠.

    ◇ 정관용> 그런데 도굴을 했건 아니면 헐값에 샀건 도자기나 이런 것들은 이해가 되는데. 왕실의 투구나 갑옷은 어떻게 입수하게 됐을까요?

    ◆ 황평우> 예를 들자면요. 이런 사람들이 주로 보면 조선총독부의 관료들한테 항상 상납을 하거나 어떤 스폰서를 대고 있는 거죠. 이런 스폰서 문화가 예전부터 오랫동안 있었죠. 그러면서 이런 돈을 대주면서 대가로 받는 것들이 무슨무슨 문화재를 좀 다오, 이렇게 하는 거죠.

    ◇ 정관용> 조선총독부는 조선왕실의 것을 그냥 맘대로 가져갈 수 있었나 보죠?

    ◆ 황평우> 당시에 마음대로 가져가는 건 사실 도굴이 1860년대부터, 한일합방이 되기 전부터 일본 낭인들이 청자 같은 것을 강화도에서 많이 도굴해요. 그러면서 엄격하게 법적인 제도 1910년도에 공물관리법이라고 생기는데. 아무리 생겨도 문화재위원회의 승인 받고 이렇게 서류 조작해서 가면 아무리 웬만한 법이 있더라도 사람이 운용을 하니까.

    ◇ 정관용> 알겠습니다. 조선총독부 앞에 사실 조선왕실은 벌벌벌 떠는 그런 관계에 있었으니까. 달라고 하면 주고 그랬을 수 있겠죠.

    ◆ 황평우>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이거 우리가 환수받을 수 있습니까? 법적으로 가능한가요?

    ◆ 황평우> 지금 이걸 강하게 나가야 되는데요. 지금 동경국립박물관이 주장하는 게 뭐냐면 우리는 기증받았다. 그런데 기증받았다고 해서 기증유물에 대해서는 이거 불법적으로 간 게 아니지 않느냐. 그렇지만 이런 게 있습니다. 아이콤(ICOM) 국제박물관협회윤리규정 2조 2항에 보면 ‘박물관은 유물을 입수할 때 가장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안 하면 안 된다.’라고 되어 있어요. 우리가 얘기하는 게 뭐냐면 이 오구라컬렉션은 가장 악질적이고 악랄하게 유물을 약소국에 위압을 가해서 가져간 것이기 때문에 이건 합법적으로 수집한 게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증받은 국립동경박물관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서 돌려받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 외교부나 우리 문화재청이 또 국외문화재단에서 못하니까 일반 이런 민간단체에서 하고 있는 거죠.

    ◇ 정관용> 정부가 이렇게 나설 수 있을까요? 이 대목에서.

    ◆ 황평우> 저는 나서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안 나서는 이유는 역시 1960년대의 한일협약 때문에. 그게 아마 걸림돌이 됐기 때문에 못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이나 국내성의 의궤들이 돌아왔지 않습니까? 저는 이렇게 주장하는 거죠. 일본이 스스로 한일협약을 파기한 거다, 돌려준 것은. 그래서 우리는 이 점을 외교부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한일협약의 문화재 환수에 대해서 다시 협약을 하자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라는 거죠. 왜냐하면 일본 국립기관에서 우리한테 조선왕조실록을 돌려준 사례가 두 번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일협약이 파기됐다. 파기됐으니까 다시 협약을 하자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거죠.

    ◇ 정관용> 조선왕조실록을 우리가 돌려받는 과정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건 정부가 나섰던 거예요? 어떻게 됐던 거예요?

    ◆ 황평우> 아니죠. 제가 그때 모 방송국의 방송도 같이 하고요. 그다음에 여러 방송을 하면서 많은 시민들한테 응원서 이런 것도 받아서 전달을 했고 또 우리 같이 하던 혜문께서도 같이 줄기차게 노력을 했는데.

    ◇ 정관용> 혜문스님.

    ◆ 황평우> 혜문스님요. 그래서 민간 주도에서 성공을 해서 돌아오게 된 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민간이 여론을 확장시키고 일본에 대한 압력을 넣으니까 그냥 선선히 내준 거예요?

    ◆ 황평우> 선선히 내주지는 않았죠. 그다음에 저희 혜문스님께서는 동경국립박물관을 어떻게 했냐면 법적인 소송으로 가려고 했죠. 그런 부분도 있고 그다음에 국내성 것은 우리 외교부와 또 문화재청에서 협의를 통해서 돌려받은 것이고. 또 그것 같은 경우는요, 빌려갔어요. 도서 이런 것들을. 사실 빌려갔는데 책 대출할 때 늦게 돌려받으면 연체료 있죠? 연체료가 아마 수십억 원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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