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기지 환경오염과 정화비용 등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용산 미군기지 주변지역 오염 문제를 둘러싸고 서울시와 환경부, 주한미군 측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CBS노컷뉴스가 2007년 반환된 주한미군기지 주변지역들에 대한 오염 실태 조사 결과를 단독 입수했다. CBS노컷뉴스는 주한미군기지 오염 문제를 4회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순서 |
① [단독] ''기름 범벅'' 미군기지 주변…기준치의 85배 ② 미군기지 정화비용 ''3억→143억'' … 왜? ③ "지하수 오염은 말기적 증상" … 후세에 재앙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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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운 기름 냄새가 일순 코를 찔렀다. 주변에 주유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 용산구청에서 남산터널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삼각지와 남산터널, 이태원 방향으로 갈라지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태원 방향으로 돌기 직전에 도로 쪽으로 불뚝 튀어나온 자그마한 광장이 있다. 이태원 광장이다. 용산 미군기지 입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100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냄새의 진원지는 이곳이었다. 광장 모서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절반 쯤 눌러놓은 듯 한 시설물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도로 관련 시설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까이 가보니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시설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시설물은 지하수 저장탱크로서 담당기관의 허가 및 관리하에 운영하고 있사오니…"
용산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지하수의 오염도를 측정하고 정화하기 위해 서울시가 설치해 놓은 저장탱크다. 서울시는 매주 한두 차례 이곳으로 끌어올린 지하수를 관찰하고 정화 작업도 동시에 하고 있다.
01 지하수 탱크 전경
CBS노컷뉴스 취재팀이 이곳을 찾은 지난달 30일에도 서울시와 용산구,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들이 나와 수질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용산 미군기지 주변지역 오염 조사 문제를 놓고 최근 서울시와 환경부, 주한미군 측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터라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조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허락을 받고 시설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폐수 처리통이나 정화약품통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통 20여 개가 죽 늘어서 있었다. 역겨운 냄새가 더욱 진동했다.
저장탱크의 뚜껑을 열어젖히자 양수기로 끌어올린 누런 지하수가 눈에 들어왔다. 뽀글거리는 거품과 함께 기름 오염 물질로 보이는 덩어리들이 곳곳에 둥둥 떠 있었다.
02 탱크 내 부유물
◈ 2001년 발견…12년째 계속 기름 오염 지하수 흘러서울시 물관리정책과 신정현 주무관은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건설 당시 용산 미군기지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기름이 발견됐는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름 유출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 주무관은 "기름 유출로 인한 토양 오염과 수질 오염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염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용산 미군기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울시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군 측은 SOFA(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규정을 들어 기지 내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용산기지 주변의 녹사평역, 캠프 킴 주변지역 등에서 기름 유출 오염이 확인된 대지 면적만 최소 1만 2,235㎡(약 3,700평)에 이른다. 오염을 정화하는 데 그동안 58억 원 가량이 들어갔다.
오염 비용 또한 주한미군이 아닌 우리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 비용을 받아내기 위해 해마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용산기지는 2016년 반환될 예정이고, 정부는 기지 전 지역을 국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CBS노컷뉴스 취재팀과 동행했던 녹색연합 관계자는 "오염 치유가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토양 오염도 문제지만, 지하수가 오염됐다는 건 사람으로 따지면 말기 증상을 보이는 것"이라며 큰 우려를 나타냈다.
◈ "오염돼 있는 줄은 알지만…"
03 부영공원 산책
닷새 후인 6월 4일 오전,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을 찾았다. 부대 일부인 7만 1,773㎡가 반환돼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부영공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오염 정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 지역 최대 현안이 돼 있다.
일본군 병참기지에서부터 시작돼 주한미군 용산 기지의 배후 병참기지로, 1973년부터 1991년까지는 일부 지역이 한국군에 의해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오염 주체를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공원 입구를 들어서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맑은 날씨임에도, 땅속에서 기름이 섞인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04 부영공원 기름 둥둥
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 눈치였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유니폼을 차려입고 나와 축구와 야구를 즐기는 동호인들, 산책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공원을 산책 중이던 70대 할머니는 "오염돼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주변에 운동할 만한 곳이 이 곳밖에 없어서 그냥 매일 나와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40대 한 남성 주민은 "기지 100미터 안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3개가 있다. 오염 정화 문제가 빨리 해결돼 아이들도 학교를 안심하고 다니고 공원에서 운동도 마음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조사결과, 정화계획부터 공개해야"공원 입구 바로 왼쪽으로 캠프 마켓의 DRMO(폐기물처리장)가 눈에 들어왔다. 오염 문제가 부각이 되면서 현재는 폐쇄된 상태다.
지난해 DRMO 주변 지역에서 실시된 오염 조사에서 발암 물질인 다이옥신까지 다량 검출돼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더욱이 지표 부분뿐만 아니라 땅속 1~2미터 아래 지점에서도 다이옥신이 검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05 인천녹색연합 장정구 사무처장
인천녹색연합 장정구 사무처장은 "다이옥신은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인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땅속 깊은 곳에서 검출 될 수가 없다"며 "정화비용 등은 나중에 따지더라도, 주민들의 안전과 재산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정밀조사 결과와 구체적인 정화계획을 투명하게 조속히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사무처장은 이어 "유해물질에 의한 토양 또는 지하수 오염은 당장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 년, 이십 년, 그 이상으로 후세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 후세에 ''재앙의 땅'' 남겨줄 수 없어용산기지 주변도 부영공원도 언뜻 보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BestNocut_R]
하지만 땅을 한 꺼풀만 벗겨 봐도, 지하수 저장탱크의 뚜껑을 살짝만 열어 봐도, 그 곳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각종 오염물질이 켜켜이 쌓이고 계속 녹아내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세에 재앙을 남겨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또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 정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