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
정치권의 정부조직개편 협상이 난항을 겪는데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문회를 통과한 장관들에게까지 임명장을 수여하지 않고 있어, 새 정부의 내각 구성이 2주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까맣게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이명박 정부 장관들이다. 주군(이명박 전 대통령)은 떠났지만 장관들은 새 장관이 임명되지 않아 여전히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 박재완 장관, "학교 가야하는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획대로라면 지금 대학 강단에 서 있어야 한다. 박 장관은 성균관대 국정대학원 교수로 복직해 이번 학기부터 재무행정과 재정관리 등의 강의를 맡았다.
이미 강의 일정은 시작됐지만, 박 장관은 세종시 기재부 장관실에 묶여 있는 상태다. 학기 시작 첫주는 수강변경 신청기간이라 강의계획서와 참고도서 목록만 나눠주고 넘어갔지만, 문제는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는 다음주부터다.
성균관대학교 관계자는 "한시바삐 학교로 돌아와야 하는 시점"이라며 "자칫하면 폐강될 수도 있어 여의치 않으면 당장 대학원 저녁 강의라도 오셔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박재완 장관은 다음주에도 강단에 서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기재부 장관 내정자의 청문회가 오는 13일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빨라도 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기까지 2~3일은 걸리고, 자칫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장관실에 붙잡혀 있는 기간은 한정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
경제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기재부의 경제정책과 관련한 법적인 최종 결정권자는 여전히 박재완 장관이기 때문에 섣불리 그만둘 수도 없다. 차관에게 맡기고 사퇴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재부는 현재 차관 2명이 모두 장관급으로 내정 또는 임명된 상황이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박 장관 스스로도 지난달 21일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강의 차질이 최대 고민"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 "여행 못가고", "딸 못봐" 발동동...''1부처 2장관''에 조직도 어수선유영숙 환경부 장관도 지난 5일 기자단 송별오찬에서 "5일이나 6일쯤 장관임기가 끝나는 줄 알고 오는 9일부터 휴가를 잡았다"며 "현재로선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청문회를 통과한 윤성규 장관 내정자가 다음주부터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업무를 시작하지만, 대통령이 임명장 수여를 보류하면서, 유영숙 장관도 당분간 좌불안석인 상황을 버티는 수밖에 도리가 없게 됐다.
''한 부처 두 장관''이 이미 현실로 다가온 곳도 있다. 외교부의 경우 윤병세 장관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한 뒤 외교부 인근 빌딩 사무실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그러나 김성환 장관이 집무실을 지키고 있어 외교부 직원들은 똑같은 보고서를 두 개씩 만들어 각각 보고 중이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당장 무슨 일이 터졌을 때 결정을 해야하는 사람은 김성환 장관인 만큼, 윤병세 장관 내정자에게만 보고할 수는 없다"고 속사정을 전했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자도 지난 6일과 7일, 구미와 목포 등 사고 현장을 방문하며 본격적인 장관 행보를 시작했지만, 아직 장관실은 맹형규 장관이 지키고 있다.
맹 장관은 퇴임 후 5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미국에 있는 딸과 손주들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여행 일정을 잡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 임채민 장관도 당초 7일 오전에 간단하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떠날 계획이었지만 새 장관이 임명이 안 돼, 여전히 ''대기'' 상태다. 복지 현안은 산적해있지만, 직원들도 분위기가 어수선해 업무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다.
◈ "행정은 일관성 있어야…정치 볼모 안돼"이른바 ''식물 장관''들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성대 이종수 교수(행정학)는 "정치는 표류해도 행정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부조직개편을 볼모로 잡고 있는 정치권도 문제고, 그렇다고 청문회를 통과한 장관마저 임명장을 수여하지 않는 대통령도 이해할 수 없다"며 "행정부를 볼모로 잡고 정치적 공방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한편, 임명장 수여 보류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11일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친 각 부처 장관 내정자 7명에 대해 임명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