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각시붓꽃'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를 통해 알아본다.
각시붓꽃
한동안 따스하던 날씨가 어제부터 다시 추워져 꽃봉오리를 올렸던 복수초가 꽃잎을 다물었습니다. 오늘은 생태숲에도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고 조금 있으면 꽤 많이 쌓일 듯합니다. 이번 추위가 계속된다면 아무래도 올해 제주의 설 연휴는 눈과 함께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덕이 심한지라 추운 날씨에는 따스한 봄볕이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봄기운으로 가득한 오름의 할미꽃이 보고 싶기도 하고 햇볕이 드는 언덕 위 풀섶에 피어있는 각시붓꽃도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각시붓꽃은 전국 산지에서 볼 수 있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 풀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붓꽃 종류로는 각시붓꽃 말고도 기본종인 붓꽃을 비롯해서 금붓꽃, 노랑붓꽃, 솔붓꽃 난장이붓꽃, 꽃창포, 타래붓꽃 등이 있고 제주에서는 붓꽃, 각시붓꽃, 솔붓꽃, 꽃창포, 금붓꽃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각시붓꽃이 가장 먼저 꽃을 피웁니다. 제주에서는 봄이 절정인 4월로 접어들 무렵 오름이나 햇볕이 잘 드는 숲으로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붓꽃이라는 이름은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의 모습이 붓을 닮았다 해서 붙여졌습니다. 기본종인 붓꽃은 키가 1m 가까이 되는 것이 있을 만큼 큰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시붓꽃은 꽃이 필 때는 10cm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식물 이름의 접두사 '각시'는 '작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국어사전에는 '각시'를 '갓 결혼한 새색시'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또는 '여리고 수줍은'이라는 뜻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결국 각시붓꽃은 '새색시처럼 아름답고 키 작은 붓꽃'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와 관련지어 각시붓꽃을 가장 작은 붓꽃이라 하여 애기붓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제주에서는 각시붓꽃이 이르면 3월 말이면 꽃이 핍니다. 오름 등성의 풀섶이나 햇볕이 잘 드는 숲 그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꽃이 필 때는 가금씩 꽃이 잎 보다 크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늘씬한 잎 아래에 위치합니다. 그러나 잎은 꽃이 진 후에도 계속 자라 30cm까지 크기도 합니다. 꽃잎은 보라색으로 곤충의 눈에 잘 띄게 했고 꽃 안쪽에 깊숙이 꿀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꿀샘 앞에는 수술과 암술을 배치했고 꽃잎에는 하얀 줄무늬를 그려놓았습니다. 이 줄무늬는 각시붓꽃을 곤충의 눈에 잘 띄게 해줄 뿐만 아니라 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꽃으로 날아든 곤충은 꽃잎의 줄무늬를 통해 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다 보면 꽃가루를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꽃의 암술에 꽃가루를 묻힘으로써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각시붓꽃1
잎은 칼처럼 날카롭게 보입니다. 잎의 모양과 관련된 각시붓꽃에 대한 전설이 내려옵니다. '신라와 백제가 격렬하게 싸웠던 황산벌 전투에서 화랑 관창은 죽게 됩니다. 그런데 관창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무용이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관창이 죽은 후에도 변치 않았던 무용은 영혼결혼을 하고 무덤에서 슬픈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슬픔을 못이긴 무용은 홀연히 세상을 떠나게 되고 이를 가엾이 여긴 사람들은 관창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 주었는데 이듬해 보라색 꽃이 피었습니다. 이 꽃의 모습이 새색시 무용을, 잎은 관창의 칼을 닮았다 하여 각시붓꽃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꽃이나 잎을 보면 각시붓꽃이 얼마나 아름답고 단아한 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캐어다 집에 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개체수가 줄고 있어 걱정입니다. 정말 각시붓꽃을 잘 키워보고 싶다면 5월 이후 익은 열매를 받아서 바로 화단에 뿌리는 방법이 좋겠습니다. 각시붓꽃은 특별한 토양을 가리는 것 없이 적응력이 강한 편이지만 모래가 섞인 곳이면 더욱 좋습니다. 특히 건조하지 않게 지표면에 낙엽이나 볏짚을 썰어 덮어 주어 습기가 유지되도록 하면 잘 자랍니다. 각시붓꽃의 학명 Iris rossii 가운데 속명 Iris는 무지개라는 뜻입니다. 비가 내린 후 맑은 날 건너편에 떠있는 무지개를 보면 왠지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무지개가 뜬 그 곳에서 기쁜 소식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각시붓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각시붓꽃을 생각하면 따스한 봄날의 기쁜 소식이 금방이라도 전해질 듯합니다. 지난 일을 추억하는 것만큼 미소 짓게 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예전 들꽃보기를 시작할 당시 오름에 각시붓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 만났던 일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훈훈한 봄바람을 타고 피는 4월의 각시붓꽃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