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을 수행할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게 억 대의 돈을 받고 편파심사를 해 주거나, 공공기관의 고위임원을 소개해 준 대학교수가 구속됐다.
경찰 조사결과, 일부 공공기관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과정이 불투명한 허점을 이용해 검은 돈이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구속된 서울 모 사립대 교수 A(59)씨는 정보통신분야 국책사업 때마다 심사위원 후보에 이름이 오르는 국내 정보통신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9년 5월 특허청은 산하 발명진흥회의 의뢰를 받아 특허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을 발주하고 정보통신 업체인 B사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때 사업자 평가를 맡은 심사위원장이 A교수였고, A교수는 B업체에 월등히 높은 점수를 부여해 B사가 선정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경찰 조사결과 A교수는 심사위원에 선정되기 전, B사 대표 C(52)씨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4천5백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특허청은 원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심사위원을 랜덤(random), 즉 임의추첨 방식으로 선발해왔지만 왠일인지 이 사업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누가 심사위원이 될지 미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 사건을 수사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박관천 경정은 "특허청 컴퓨터의 로그인 기록을 살펴보니, 이 사업에서만 심사위원을 추첨한 로그인 기록이 없었다"며 "문제의 사업에서는 랜덤으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허청 사업을 수주한 B사는 2010년 3월에는 교통안전공단이 발주한 14억 원 규모의 정보기술 국책사업 수행자로도 선정됐는데, 이 때도 A교수의 입김이 작용했다.
A교수는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경찰 조사결과 업체대표 C에게 5천9백여만 원을 받고, 당시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이던 D씨를 소개해줬다.
경찰에 따르면 교통안전공단은 심사위원을 추첨이 아니라 이사장이 지명해 선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따라서 심사위원들은 이사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사장과 친분을 맺은 B사는 쉽게 사업을 따낼 수 있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돈을 받은 A교수를 배임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돈을 준 업체대표 C씨는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업체에게 접대를 받은 전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D씨는 기관통보하고, 이례적으로 추첨방식을 활용하지 않은 특허청에 대해서는 배후에 다른 불법행위가 있는지 여부를 추가 수사 중이다.
경찰은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 난수표를 활용해 심사위원을 임의 추첨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며 "공정성을 위해 랜덤방식을 전면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