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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배우 주지훈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앞만 보고 질주하던 그는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잠시 쉬어야만 했다. 쫓기듯 간 군대와 제대 그리고 스크린 복귀까지 몇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한층 단단해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잘못된 선택에 대한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동시에 극복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연기로 속죄하는 길 밖에 없다"는 그의 다짐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개봉을 앞두고 노컷뉴스와 만난 주지훈은 "몇 년 더 지나고 돌아봐야 단단해졌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며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잘 보낸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또 그는 "배우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오랜 만의 복귀임에도 익숙함 보다는 도전을 선택했다. 처음으로 사극을 경험했고, 코믹 연기를 펼쳤다. 세자 충녕과 노비 덕칠, 1인 2역을 오갔다. 하지만 어려웠던 기억보다는 스크린에 비칠 자신의 모습에 대한 설레임과 궁금증이 가득하다.
주지훈은 "작품을 볼 때 주지훈이란 배우만 보는 것도 아니고, 장르를 떠나 영화를 봤을 때 마음이 풀릴 때가 있다"며 "그런 것을 의도할 순 없지만 진실되게 다가간다면 많은 분들과 교감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사극, 코미디 등이 중요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 카메라 앞에 선 것은 거의 4년 만인데 여러가지로 궁금한 게 많다"며 "마지막으로 영화를 찍었을 땐 필름이었는데 이번엔 디지털이다. 또 노비 역할 때문에 몸무게를 6kg 늘렸는데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내용도, 배경도 다르지만 왕을 연기하고, 1인 2역을 한다는 이유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후반기 개봉될 '광해, 왕이 된 남자' 등과 비교 선상에 오르고 있다. 주지훈은 "분명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왕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라며 "충녕이 세종으로 즉위하면서 영화는 끝난다"고 못박았다.
"세자가 궁 밖으로 나가 민초들의 모습을 보고 비통해 하고, 안쓰러워하는 게 아니라 진짜 '개고생'을 한다. 세자로 평생 교육 받은 사람이 밖에서 3일 굶는다고 생각해 보면 된다. 궁에서 나가자 마자 멍석말이 당하고, 추노한테 쫓긴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들이 더 담겨 있다."
1인 2역에 대해서는 "다행스러운 게 대본상으로도 차이점이 명확했다"며 "성격이 비슷했다면 아무래도 부담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덕칠은 처음부터 캐릭터의 특징을 만들어 갔고, 충녕은 리액션이 많은 역할이라 그 상황에 맞춰갔다"고 설명했다.
전작들에선 주로 또래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췄다면 이번엔 변희봉 박영규 백윤식 김수로 임원희 등 베테랑들과 동고동락했다. 연기는 물론 인생에 있어서도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는 "후배가 아니라 거의 손자뻘이다. 그런 분들과 함께 했다는 자체가 굉장히 영광스럽다"며 "항상 화면으로 보다가 눈 앞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BestNocut_R]
최근 제작보고회에서 변희봉, 박영규 등 대선배 배우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오랜 만의 복귀에 독을 품었나 보네요"라고 묻자 그는 "칭찬의 말에는 여러가지가 포함된다"며 "홀로 120신 이상 촬영했다. 물리적인 시간, 노력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중간에 지치지 않고 계속하려는 의지가 보여서 칭찬해 주신 것 같다"고 손을 내저었다.
주지훈은 이번 작품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인기'라는 것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8월 8일 영화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SBS 드라마 '다섯손가락'으로 안방을 찾아갈 예정이다. 더욱 단단해진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예전에 드라마 '마왕'의 박찬홍 PD가 '스타가 뭔지 아냐'고 묻더라. '스타가 별이죠'라고 했더니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스타라고 한다'고 하더라.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