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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맥 밟히는 건 눈 뜨고 못 봐!"
중학교 후배 김 모(15) 군의 "도와달라"는 전화에 3학년 선배 정 모(16) 군은 발끈했다. 싸움 잘하고 욕 잘하는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을 불러모은 정 군은 김 군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너냐? 내 후배한테 시비건 놈이? 니가 감히 내 맥을 건드려?"
김 군의 '빽'을 자청하고 나선 정 군은 김 군의 뒤에서 김 군 친구에게 눈을 부라렸고, 김 군의 '인맥'을 확인한 친구는 아무말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친한 사람을 모아 세력을 형성하는 이른바 '맥'이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인맥의 줄임말인 '맥'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었을 때 자신의 편에 서서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통한다.
청소년들은 온·오프라인에서 나이나 성별, 지역에 관계 없이 "내 편이 돼 줄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실제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맥을 구한다'는 10대들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청소년 친목 도모 모임인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에서는 '저 커버해주고 빽 들어주실 맥 구한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제가 까이고 있는데 도와달라"는 13살 여학생은 "싸움 잘하고 말발 세고 인맥 좋은 14~16살 구한다"며 "무조건 우리 학교 학생이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13살 남학생이라는 네티즌도 "잘나가고 싶어서 맥을 구한다'며 "노는 형이나 누나들 저의 빽이 되어 달라"고 글을 남겼다.
인터넷에서 맥을 구하고 있는 박 모(14) 양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맥이 많으면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어서 학교 생활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맥'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잘 나가는 아이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셈.
중학교 2학년 최 모(15) 군은 "내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권력이 얼마나 센지가 맥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맥이 많을수록 친구들 사이에 권력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6학년 박 모(13) 군도 "인맥이 많으면 있어보이고 없으면 뭔가 왕따가 된 기분"이라며 "최근에 인맥을 70명까지 채웠다"고 자랑했다.
◈ 맥 해달라 돈 내거나 술, 담배까지…맥들 모아 맞짱 뜨는 인맥전 하기도맥이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의 척도로 자리잡으면서 맥이 학교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부 학생들은 힘 센 아이들과 맥을 맺기 위해 돈을 주거나 술 담배 등 일탈 행동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 6학년 최 모(13) 양은 "맥 구하려고 친구한테 잘 보이거나 1만원씩 돈을 주기도 한다"며 "돈을 주고 맥을 사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 모(15) 군은 "센 인맥을 모으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싸움 잘하는 아이들과 같이 담배 피우면서 친해지는 방법으로 맥을 모은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아이들의 '맥'이 인맥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맥들을 데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혼내주는 소위 '인맥전' 등 학교폭력으로까지 번진다는 점이다.
시비가 붙었을 때 혼자 힘으로 이길 수 없을 경우 맥을 데려가 '맞짱'을 뜬다는 것.
며칠 전 맥을 데려가 학교 근처 공원에서 마음에 안 드는 동급생을 "밟았다"는 정 모(14) 양은 "처음엔 일대일로 말싸움했는데 맥 언니들이 제 옆에서 거들어줘서 이길 수 있었다"며 "선생님한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처리했다"고 말했다.[BestNocut_R]
"잘나가는 형을 맥으로 가지고 있다"는 김 모(15) 군은 "그 형 빽 믿고 학교에서 나한테 까부는 애들은 그냥 때린다"며 "맥이 많으면 학교에서 짱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때문에 10대 청소년의 맥 열풍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경기대 청소년학과 이광호 교수는 "인맥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사회적 요소가 녹아든 것 같다"며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 위해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거나 다른 조직과의 폭력 등 갈등을 야기하는 부정적인 쪽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아이들이 건전한 공간에서 소통하면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보상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