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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와 박근혜 위원장?…비교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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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웅산 수치와 박근혜 위원장?…비교불가!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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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민족민주동맹이라는 야당을 이끌고 있는 아웅산 수치(66) 여사가 지난 1일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승리가 확정되면 수치 여사는 생애 처음으로 미얀마 중앙정치 무대에 서게 된다.

    지난해 3월 군사정부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은 테인 세인 대통령의 민간 정부는 국가 재건을 위해 민주화 절차를 밟고 있어 선거 결과를 거부하는 과거의 엉뚱한 사태는 재발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군부정권이 아직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 민주화의 길은 아직 멀기만 할 듯하다.

    ◇버어마에서 미얀마로 바뀐 사연은...

    미얀마로 이름을 바꾸기 전 버어마는 동남아시아에서 태국에 이어 2번째로 큰 나라였다. 19세기 영국이 강제로 점령해 식민통치를 했고 2차 대전 후인 1948년에 독립 했다. 이후 민주국가를 유지하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1962년 군사 쿠데타로 사회주의 국가로 전환해 군사정권의 부패타락으로 지금은 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

    국민의 민주화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던 1988년에는 귀국한 아웅산 수치 여사를 중심으로 전 국민적인 민주화 봉기가 일어났다. 1988년 8월 8일에 거국적인 봉기가 있었기에 ''''8888 민주운동''''이라고도 부른다. 민주화가 이뤄질 듯 했으나 또 다른 군사세력에 의해 쿠데타가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 2만여 명이 학살되었다. 군부는 1989년에 나쁜 이미지를 가리려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

    1990년 실시된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야당이 82%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UN까지 나서 결과를 인정하도록 촉구했으나 군부가 거부하고 아웅산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 됐다. 1,400 여명이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힌 것도 이때고 대대적인 정치망명이 시작됐다. 모든 정치적 발언과 집회가 금지되고 독재 정권의 공포 정치가 이어졌다.

    여기에 맞서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의미로 노벨 평화상이 1991년에 수여 됐다.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이라 시상식 갈 수 없었고 10대 소년인 아들이 어머니 대신 시상식장에 가 수상소감을 대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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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이름은 ''The Lady''

    아웅산 수치 여사는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온 국민이 숭앙하는 국민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다. 아버지가 군부 정권에 의해 살해된 뒤 영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영국인 학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어머니가 위독하자 귀국했다.

    영국의 남편은 민주화 운동으로 헤어지게 된 수치 여사를 만나기 위해 미얀마로 들어가려 했으나 군사정권이 비자를 거부했다. 수치 여사에게는 부부가 만나고 싶으면 당신이 영국에 가면 될 것 아니냐, 얼마든지 마음대로 가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나가면 다시는 못 들어오게 할 것이 뻔해 버어마를 떠나지 못했고 남편은 얼마 뒤 병으로 사망해 부부는 영원히 이별했다.

    뤽 베송 감독이 만든 ''The Lady'' 라는 영화가 있다. 바로 수치 여사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얀마 사람들은 수치 여사를 부를 때 ''더 레이디''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세계 주요 국가들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교역을 중단했다. 경제적으로 고립된 버어마는 탈출구를 찾는데 그것이 해외관광객 유치였다.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관광 인프라로 호텔 리조트 등을 건설하고 교통시설을 확충했다. 이후 대대적인 홍보 마케팅에 나서 꽤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1990년 대 말 영국 등에서 버어마 여행 보이코트 운동이 벌어졌다. 군부 독재가 민중을 탄압하는 상황에서는 버어마 여행을 거부하겠다는 취지였다. 호텔과 여행사, 교통수단 대부분을 군부정권이 독점하고 관광객이 쓰는 외화 역시 여러 경로를 통해 군부가 빨아들인다는 점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전하면서 벌어진 일.

    한 쪽에선 여행 보이코트 운동이 벌어졌지만 다른 한 쪽에선 군부가 운영하는 시설은 절대 이용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매뉴얼을 짜서 미얀마 돕기 관광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허름하고 불편한 좁은 숙소에서 묵고 덜컹 거리는 낡은 교통수단들을 이용하고 반정부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코스.

    2010년 가을 미얀마 정권이 총선을 수락하는 걸로 물러서고 민간 정부로 권력을 이양하는 절차를 밟자 수치 여사가 관광 보이코트 운동을 접는다고 선언했다. 다만 군부정권이 소유한 시설을 이용하지 말고 지역 소규모 관광을 해달라는 당부를 곁들이고 있다. [BestNocut_R]

    아버지가 정치적 이유로 살해당하고 딸이 정치에 나선 행로가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과 비슷하다 해서 가끔 비교를 하지만 같고도 다른 이야기.

    박 위원장은 군부 독재 권력자의 딸이고, 수치 여사는 군부 독재에 의해 살해된 민주화 운동가의 딸이다. 박 위원장은 성장 후 5.16장학회 이사장,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대 이사장을 거치며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 일선에 나섰고, 수치 여사는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야당 지도자로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수치 여사가 26년의 망명, 귀국해 21년 중 15년을 가택 연금당한 것과 박 위원장이 ''나도 사찰 당해 본 적 있다''는 비교불가로 보인다. 두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면 간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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