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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정겨운 아메리카의 오지…클린턴의 정치적 고향



여행/레저

    민둥산 정겨운 아메리카의 오지…클린턴의 정치적 고향

    [자동차로 미국 누비기30] 최대 노천 온천 핫스프링스의 어제와 오늘

    호수

     

    텍사스를 거쳐 루이지애나, 알칸사스를 돌아보는 미국 남부여행의 종착점은 알칸사스주 관광의 핵심지역인 핫스프링스 국립공원이었다.

    핫스프링스로 북상하는 길, 겨우내 헐벗었던 가지 위로 연녹색 물감을 뿌린 듯 수목들은 한창 봄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숲은 물이 오르기 시작해 연두빛으로 부풀고 산수유는 연분홍 꽃빛으로 단장해 풋풋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은 간간이 떠있는 뭉게구름 솜털구름을 한껏 부풀리고 나무로 숲으로 대지로 뻗어나가 사방을 온기로 채운다. 알칸사스 중부의 산야에는 그렇게 봄기운이 완연했다.

    열흘에 걸친 자동차여행의 여독도 여독이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이른 봄의 스산한 한기는 핫스프링스 온천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핫스프링스는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온천휴양도시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국립공원 푯말

     

    핫스프링스 온천지구의 한 가운데는 ''핫스프링스 마운틴''이란 높이 3~4백미터쯤 되는 나지막한 산이 놓여 있고 산의 서쪽 경사면 기슭에서 골짜기에 걸쳐 목욕탕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베스하우스 로우(Bath house row)라고 불리는 곳이다.

    핫스프링스 크릭(creek)으로 알려진 온천수가 흐르는 작은 개울은 파크 에비뉴 부근 지역으로부터 베스하우스 로우-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온천로''까지 지표 아래로 흘러 핫스프링스 산기슭에서 땅위로 솟아 나온다.

    이 곳 47개 온천에서는 하루 백만 갤런(379만 리터)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천연온천수가 용출된다. 미국의 모든 지역이 그렇듯이 핫스프링도 첫 주인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었다. 콰포(the Quapaw)인디언들은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온천수가 각종 질병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했던 사람들이다. 인디언들은 치료 목적으로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핫스프링스 골짜기로 몰려 들었고 일부는 그 지역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모양이다.

    솟아 오른 온천수가 핫스프링스 크릭을 따라 흘러 내리다 군데군데 웅덩이를 만나 만들어진 노천 온천탕이 즐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연의 온천지대였으니 애써 온천탕을 만들 필요도 물을 따로 모을 필요도 없는 자연그대로의 온천이었던 것이다.

    노천온천

     

    따뜻한 온천이 흘러 넘치고 야트막한 야산이 유난히 많은데다 드문드문 크고 작은 호수까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바로 알칸사스이다. 핫스프링스 도심은 해밀턴 호수 북쪽에 자리잡고 있고 시가지 근처에 캐서린, 아치타 등의 크고 작은 호수가 많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배출하기 전까지는 그저 미국 남부의 자그만 시골 주 정도로 인식됐지만 루이지애나에서 북상하면서 알칸사스의 속살을 들여다 보니 그 땅의 진면목이 보였다. 넓고 광활하기만 한 미국땅과는 거리가 먼 곳, 사방 팔방으로 민둥산이 많은 알칸사스 땅은 한국의 산천과 닮은 꼴이자 미국 내의 이색지대였다.

    자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른 봄 미국인들도 한기를 잊고 싶었던 탓인 지 핫스프링스로 이어지는 도로는 붐비는 편이었고 파스텔톤의 하늘빛이 투영된 에메랄드 물결이 봄바람에 일렁이는 호수가에는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그곳이 휴양지 임을 알려준다. 태양이 중천에 이르러 온기가 적당히 퍼질 무렵 핫스프링스의 구도심에 도착했다.

    베스하우스 로우는 도시의 중심축 도로 파크 에비뉴를 따라 대략 600~700미터 구간에 걸쳐 있다. 베스하우스 로우 뒤쪽으로 핫스프링스 마운틴이 병풍 처럼 둘러쳐져 있고 베스하우스 로우에서 산 속으로 조성해 놓은 산책길 주변을 흘러내리는 온천수에서는 하얀 김이 쉼없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용출 온천수의 수온은 섭씨 60도를 넘는다.

    19세기 초 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됐던 그 시절 건축된 목욕탕 건물들이 오늘날까지 보존돼 베스하우스 로우에는 온천의 초기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온천이 벅 스탭(The Buckstaff)과 콰포(the Quapaw), 두 곳은 2008년에 내부를 수리해 신장개업했다. 그리고 포디스(the Fordyce)는 리모델링을 거쳐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베스하우스 로우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온천탕으로는 Swan song spa, The Rose Garden Spa & Salon, Turtle Cove Spa 등을 꼽을 수 있다.

    텍사스를 시작으로 10여일간 진행된 미국 남부유람이 끝날 무렵, 여행의 피로가 쌓인 탓에 한국식 목욕탕의 화끈한 열기가 그리웠고 또 미국의 목욕문화가 궁금하기도 해 가장 널리 알려진 콰포 스파를 찾았다.

    목욕탕콰포

     

    한국의 대중탕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많았다. 목욕탕 입구에 마련된 카운터에서 사용료를 치른 뒤 옷장 열쇠를 받아 탈의실을 거쳐 탕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알 몸으로 입욕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 온천지대의 대중탕에는 수영복이나 짧은 바지를 반드시 입어야 한다.

    미국의 목욕문화를 몰랐던 나는 옷이 비치돼 있겠거니 하고 준비없이 갔다가 발 길을 되돌려야 했다. 수영복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옷을 입고 들어가기 때문일까? 한국 처럼 남탕 여탕이 따로 나뉘어져 있지 않고 남녀가 한 탕에서 목욕을 한다.

    수영복을 입는다고 한국의 물놀이 시설을 겸한 이른바 ''스파''겠거니 생각하면 안된다. 탕 내부는 냉탕과 온탕, 열탕 등으로 종류별로 탕이 설치돼 있고 규모도 한국의 대중탕과 비슷해 목욕에 레저의 개념까지 포함된 한국의 물놀이 시설과는 다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벌거벗고 입욕하는 한국의 목욕탕은 여러가지 면에서 아주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지만 미국의 대중탕은 매우 개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콰포는 카운터가 위치한 로비에서 목욕탕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아예 목욕탕의 한 쪽 벽면에 커다란 유리창을 설치했다. 그 목욕탕을 오가는 사람 누구나 탕 안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대중 목욕문화가 덜 발달된 점으로 미뤄 볼 때 아마도 남녀가 함께 들어가는 목욕탕 내부에서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성적 접촉이나 집적거림 등의 불미스러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장치 아닐까 싶었다.

    미국의 워싱턴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는 한국과 같은 개념의 대중탕이 없다.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데다 한국 처럼 대중목욕탕에서 찌든 떼를 벗기는 문화가 아니라 매일 샤워하는 문화 때문일 것이다.

    온천탕의 내부 구조 역시 매우 단조롭다. 한국의 대중탕은 냉탕과 온탕 열탕 외에도 독립된 샤워부스와 앉아서 떼를 벗길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고 이태리 타월 등이 기본으로 비치돼 있다. 그러나, 핫스프링스의 대중탕에는 온천욕을 즐기다 이따금 쉴 수 있는 간이 침대 몇 개가 놓여 있을 뿐 다른 시설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샤워부스는 탕 내부가 아니라 탈의실 안에 설치돼 있다. 핫스프링스는 그 이름 그대로 온천을 위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알칸사스산천의꽃

     

    핫스프링스 온천수가 여러가지 면에서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 곳은 20세기 초중반에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을 위한 트레이닝 캠프로도 각광받았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나 시카고 컵스, 보스톤 레드삭스 같은 비교적 겨울날씨가 혹독한 지역에 기반을 둔 메이저리그 팀들은 핫스프링스에다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선수들의 몸만들기에 나섰다. 한 때 미국 프로야구계를 주름잡았던 베이브루스(Babe Ruth) 같은 선수들이 베스하우스 로우를 활보하고 주변 경마트렉을 찾아 돈을 거는 모습도 쉽사리 목격됐을 것 같다.

    사실 알칸사스주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곳이었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워싱턴주 처럼 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곳이다. 그나마 한국인들에게 알칸사스란 주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빌 클린턴 알칸사스 주지사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미국의 42대 대통령에 올랐기 때문이다.

    클린턴으로 인해 한 개 시골주에 불과했던 알칸사스가 유명세를 타게 됐지만 핫스프링스는 더 더욱 그렇다. 어린 빌을 부모에게 맡겨두고 뉴올리언즈로 간호학 유학을 갔던 그의 어머니 버지니아가(Virginia Dell Cassidy) 1950년 귀향해 정착한 도시가 바로 핫스프링스였다. 클린턴은 핫스프링스에서 초중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냈고 사춘기를 맞이한 곳도 그곳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클린턴으로 인해 핫스프링스는 유명세를 타게 됐지만 클린턴이 핫스프링에서 보냈던 시절은 인생에서도 가장 우울하고 힘겨웠던 시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우프에 살던 클린턴 가족이 핫스프링스로 이주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가 그곳에서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던 로저 클린턴과 재혼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계부와 재혼한 것은 클린턴에게 행과 불행의 씨앗을 동시에 뿌렸다. 클린턴은 대통령이 된 뒤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고하면서 "계부를 도박꾼, 아내와 동생을(로저 클린턴)학대하는 알콜 중독자로 기억한다, 나는 폭력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알칸사스의 봄

     

    꿈 많고 감수성 예민한 시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 마음 고생이 말이 아니었을 법하다. 그런 탓일까? 클린턴은 학교생활에 몰입하는 경향을 보였다. 핫스프링스 하이스쿨 재학 당시 합창단원이었고 색소폰 주자였으며 학생회의 리더로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BestNocut_R]

    유명한 독서광으로도 알려졌다. 책은 인생의 가이드가 되는 지식과 지혜의 창고이기도 하지만 때로 불편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클린턴 역시 책에서 안식처를 찾고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배우 알란 래드와 빌리 밥 손톤(Billy Bob Thornton)도 핫스프링스와 맬번 출신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고향을 빛낸 사람들이다. 빌리 밥 손톤은 무명배우는 아니지만 누구나 아는 인기 절정의 배우도 아니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의 남편이라고 하면 영화광이 아닐지라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톰크루즈나 죠니 뎁 같은 섹시 가이는 아니지만 날카로운 시선과 어딘지 모르게 배어나오는 외로움과 허무감이 발산하는 매력이 졸리에게 어필했을 지도 모르겠다. 손톤이 헐리우드로 가서 성공한 자양분 역시 조용한 휴양도시 핫스프링스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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