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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와 국민의 <국민일보> 이게 무슨 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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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와 국민의 <국민일보> 이게 무슨 꼴인가?

    [변상욱의 기자수첩] 국민일보 경영진은 양화진으로 가보라

    ㄴㄴ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국민일보 노조의 파업이 70일을 넘기고 있다. 그 와중에 국민일보 사장인 조용기 목사의 아들 조사무엘민제 씨가 국민일보 대표의 자격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 한국의 신문사 사장이 ''미쿡인''이었어?

    조사무엘민제 사장은 26살이던 1996년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얻어 지금까지 계속 미국인이다. 그리고 2006년 12월부터 국민일보 사장직을 맡고 있다. 신문법 13조 4항 2호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대표자로 되어 있는 법인이나 단체는 신문을 발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일보 등기부등본에는 대표이사에 ''미합중국인 조사무엘민제''라고 적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또 일간신문의 이사 중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의 총수가 3분의 1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한 신문법 조항(18조2항)도 있는데 국민일보는 이사 4명에 아버지와 아들인 조용기 회장·발행인과 조사무엘민제 사장이 들어가 2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제기됐다.

    언론으로서의 신문은 사회의 공적 자산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나 외국인, 특정 가족이 차지할 수 없도록 한 규정들을 어기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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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사측인 국민문화재단은 ''국민일보의 발행인은 회장 조용기 목사이고 발행인이 곧 대표자이기 때문에 국민일보 대표는 조용기 회장으로 볼 수 있다. 곧 아버지인 조용기 목사가 진짜 대표이고 조사무엘민제 씨는 대표가 아니라 대표 이사, 즉 사장일 뿐이니 신문 발행에 법적 문제는 없다''고 반박한다.

    쉽게 설명하면 순복음교회 신도들의 성금으로 세우고, 한국 교회 신도들의 성금으로 유지해 온 신문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아들이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United states of America) 사람이어서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물러나지 못하고 신문사 발행인 겸 대표자인 회장을 맡고 있고 아들은 봉급사장으로 대표자가 아니라 대표이사일 뿐이다. 미국인 아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인 아버지가 나서서 방패가 되어 주고 있다는 얘기이다.

    ◇ ''일본인 출입금지''라 써붙인 영국인 사장도 있었다

    우리나라 신문사를 외국인이 사장이 되어 경영한 예는 과거에 있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를 창간한 영국인 베델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해가면서 민간신문들이 자유롭게 언론으로서 구실하기 어렵게 되자 왕실과 우국지사들은 일본총감부의 견제에 맞설 언론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그래서 격일간지이던 <매일신보>를 일간지 <대한매일신보>로 바꾸면서 영국 <데일리 뉴스="">지의 임시 특파원이던 어네스트 베델(한국 이름 배설)을 사장으로 내세웠다.

    영일동맹이 맺어져 있으니 영국인을 앞에 내세워 일본 총감부를 막는 방패 노릇을 하고 취재 보도, 논평의 자유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고종황제가 비밀리에 왕실 자금을 출자했고 애국지사들이 기꺼이 의연금을 내놓았다. 박은식, 신채호, 안창호, 양기탁 등 열혈 우국지사들이 대한매일신보로 모여든 배경이 이러하다. <대한매일신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두 가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 신문사 앞에 커다란 방이 써 붙여져 있었는데 "일본사람 출입금지".

    2) 일본이 <대한매일신보>에 대항하기 위해 급히 대한일보, 대동신보, 동양일보, 중앙신보, 조선일일신문을 창간해 여론을 장악하려 했으나 대한매일신보 하나를 감당하기 벅찼다. 모든 신문들의 독자를 합친 것보다 대한매일신보의 독자 수가 더 많았다. 역시 위기 때마다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앞에 나섰던 영국인 베델의 힘이 컸다.

    그러데 △신도와 국민의 정성이 담긴 신문사를 미국인 아들에게 주려하고,△ 내 나라 국적을 포기하고 나갔지만 재산은 물려받아야겠고, △그래도 미국 국적은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한국인 아버지는 재산도 지키고, △아들 미국 국적도 지키겠다며 회사 등기에 이름 빌려주고.... 이게 무슨 꼴인가?

    정부 관계부처는 국가 법률사무를 지원하는 정부법무공단에 유권해석을 먼저 들어보겠다 한다. 그러나 신문법에 대한 해석을 어찌 하든 이에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하면 어차피 법원으로 가야할 문제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전에 대한매일신보 베델 사장이 묻혀 있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원에 노사 대표와 조용기 목사 가족이 함께 가보기를 권한다. 흔히 선교사 묘역이라 알고 있지만 417기 중에 선교사 묘는 145기이고 나머지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들''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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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원 광혜원 원장 헤론(미국인)이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다 전염병에 감염돼 34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이때 조선과 영국의 수호통상조약에 근거를 두고 마련된 것이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다.

    배화학당 설립자 켐벨,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턴, 고종의 밀사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위험을 무릅 쓴 헐버트, 배재학당과 정동제일교회를 세운 아펜젤러, 새문안교회와 연세대를 세운 언더우드, 세브란스 병원을 세운 에비슨(캐나다), 소다 가이치(일본인) - 양화진 묘역 유일한 일본인.

    소다 가이치는 부인과 함께 평생을 한국 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사회사업가이다. 1913년 서울에 경창보육원을 처음 창설한 이래 1945년 광복까지 1,000명 이상의 한국 고아들을 돌보았다. 특히 3.1 독립만세시위 때 체포된 청년학생들의 석방을 위해 활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 고종의 밀사가 되어 위험을 무릅쓰고 활약했던 헐버트 박사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묘비 앞에 서서 그 글을 읽노라면 느껴지는 게 있을 것이다. 주머니에 뭘 넣고 걷는데 자꾸 불편하면 너무 많이 넣었거나 내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대한민국 최대 교회 목사 가족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송구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기도해야 한다.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가 우리의 욕망을 순결케 하고 속되고 병든 영혼을 정결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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