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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가 할인''에 혹한 당신…부자들이 웃는다



경제정책

    ''현금가 할인''에 혹한 당신…부자들이 웃는다

    무자료 현금결제, 부자 배불리고 지하경제 키워
    현금영수증 신고로 포상금 받고 조세형평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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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금으로 결제하시면 비용을 좀 더 빼드릴 수 있어요."

    상담실장은 차트에 적힌 ''330''이란 숫자 위에 선을 긋고 그 아래에 새로운 숫자 ''320''을 썼다.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자 실장은 다시 숫자를 고쳐 썼다. "현금영수증이 필요 없으시면 여기까지 맞춰 드릴게요." 그는 숫자 ''300'' 위에 동그라미를 쳤다.

    지난 10일 찾은 강남의 한 성형외과. 방학시즌을 맞아 찾아오는 사람들로 병원 자동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분주했다. 연령대도, 찾은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상담을 마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성형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바로 ''현금확보''라는 것이다.

    인근 피부과에도 다닌다는 이모(26)양은 "알바를 뛰어서라도 현금을 싸들고 가야한다. 그게 요즘 트렌드"라고 말했다. 현금가보다 비싼 수술비에 할부 이자까지 내면서 카드결제를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성형외과만의 얘기가 아니다. 피부관리, 라식수술, 치아 임플란트 등 대부분의 비보험 시술에서는 여전히 현금 결제가 공공연히 이뤄진다. 현금으로 결제하면 할인을 해주거나 추가 시술이나 관리 서비스를 해준다고 유도한다.

    유흥주점은 대 놓고 현금장사다. 한 유흥업소 종업원은 "평일에는 하루에 룸이 열 개 정도 차는데, 거의 모든 방이 현금을 낸다"고 말했다. 유흥주점 광고에는 아예 카드 가격과 할인된 현금가가 따로 적혀 있다. 좀 더 싸게 즐기려는 마음에다 지출내역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손님들이 알아서 현금을 낸다.

    "아 그건 현금 내실 때 가격입니다" 용산 전자상가의 한 점포에서 카드를 꺼내들자 직원이 대뜸 말한다. 이어지는 변명. "카드 수수료 내면 남는게 없거든요." 전자상가에서는 현금결제를 전제로 견적을 뽑는다. 신용카드를 내밀면 웃돈이 붙는다.

    심지어 온라인 쿠폰 사이트에서도 할인을 받으려면 현금결제가 기본이다. 음식점과 주점, 미용관련 상점들이 제시하는 쿠폰 할인혜택 뒤에는 거의 예외 없이 ''현금결제'' 라는 단서가 따라 붙는다.

    ◈ 누이 좋고 매부좋은 현금결제?.. 알고보면

    손님들도 현금결제를 하면서 이것이 사업자의 탈세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본인도 할인을 받기 때문에 일종의 담합이 형성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현금결제로 사업자들이 얻는 이익은 생각보다 크다. 특히 고소득 자영업자의 경우는 무자료 현금결제를 통해 10% 할인을 해주고도 소득의 40%를 탈루 이득으로 챙길 수 있다. 일 년에 과표 소득 3억 원 이상을 버는 변호사 A씨가 있다. A씨는 이번에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로 38%의 소득세율을 적용받는다.

    수임료 1천만 원짜리 사건을 맡으면, 수임료 전체를 소득으로 볼 때 380만원(38%)을 소득세로, 또 소득세의 10%인 38만원을 주민세와 지방세로 납부해야 한다. 부가가치세 10%까지 추가하면 모두 518만원이 세금이다.

    대신 의뢰인에게 수임료를 10% 깎아주고 현금으로 받으면 세금으로 내야 할 차액 418만 원이 고스란히 주머니로 들어온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납부액도 그만큼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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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국세청의 소득-지출(PCI) 분석시스템에 의사 B씨가 포착됐다. B씨는 지난 5년 동안 병원을 운영해 3억 2천만 원을 벌었다고 신고했다. 매달 5백만 원 남짓 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A씨는 28억 원짜리 상가를 사들이는가 하면, 자녀 3명을 캐나다에 유학 보내고 해외여행을 32차례나 다녀왔다. 조사결과 신고한 소득보다 무려 27억 원을 더 쓴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수십억 대 상가를 사고 자녀 3명을 모두 유학시킨 비용은 상당부분 고객들의 현금결제에서 충당됐을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의사와 변호사, 학원장, 유흥업소, 예식장 등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 결과, 이들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루율(소득 적출률)은 39.1%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1천만 원을 벌면 400만 원을 숨겨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이 2010년 12월 발간한 ''지하경제 규모의 측정과 정책시사점'' 보고서는 정부의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른바 ''지하경제''의 규모가 200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7.1%, 17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175조 원의 지하경제 중 사업소득 탈루 규모만 최대 29조 원에 이르고, 이로 인한 탈세금액도 5조 원을 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쯤 되면 현금결제 할인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니라, 사업자의 배만 불리고 지하경제를 키워, 결국은 봉급생활자의 세금 부담을 높이는 악순환의 출발점이 된다.

    ◈ 현금할인 받고,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로 포상금도 받고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현금영수증을 요구해, 소비자 스스로 사업자들의 소득을 노출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조세연구원은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결제율이 1% 올라가면 지하경제 규모가 0.12%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현금영수증을 요구하면 현금할인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국세청의 현금영수증 미발급/ 발급거부 신고제를 이용하면 오히려 득이 된다.

    일단 현금을 내고 간이 영수증이나 이체 기록 등 증빙을 받아 둔다. 그리고 증빙사진을 찍어 국세청 현금영수증 홈페이지(www.taxsave.go.kr)에서 신고 서식에 맞춰 온라인 접수하면 끝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 ''m현금영수증''도 개발돼 스마트 폰으로도 간단히 신고 할 수 있다.

    미발급 신고를 하면 현금영수증이 사후 발급돼 소득공제를 받는 것은 물론, 신고금액의 20%에 해당하는 포상금도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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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현금결제 한 달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하는 규정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피부과에 다니는 이 씨에게 신고 제도를 설명하자 "성형수술도 그렇고 피부과도 몇 달 동안 꾸준히 사후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한 달 안에 신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뜸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최근 세법 시행령을 고쳐, 현금영수증 신고 기한을 5년으로 대폭 늘리는 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다음 달 쯤에는 본격 적용될 전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신고 기한이 5년으로 늘어나면, 특히 연말정산 시기를 전후해 신고가 많이 들어 올 것으로 본다"며 "신고가 활성화 되면 사업자들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세연구원 분석대로라면 누락된 사업소득이 양성화될 경우, 적어도 5조 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부자들이 소득을 숨겨 호의호식하던 돈이 아이들의 보육에, 학생들의 장학금에, 어르신의 의료비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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