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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있는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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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고있는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

    [변상욱의 기자수첩] 회개의 눈물은 죄의 원천에까지 흘러 닿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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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김근태 민주당 고문이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해오다 최근 건강이 악화돼 입원 가료 중이다. 2007년에 파킨슨씨병 진단을 받았고 이번에 뇌정맥혈전증 진단을 받았다. 지난 10일 열린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치 못해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 "김근태, 너 오늘 예수처럼 죽어봐라"

    서울대 학생운동 조직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를 받던 김근태 고문은 1985년 9월에 체포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고문 시간은 각각 5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김근태 고문이 외우고 있던 고문일자는 4일, 5일, 6일, 8일, 10일, 13일... 모두 11차례. 잠을 안 재우고 밥을 굶기는 건 기본이었고 비명을 너무 지르다 목이 찢기고 부어 말을 못하면 약을 투여해 목을 트이게 한 뒤 계속해 심문했다고 한다.

    고문을 주도한 인물 이근안 경감은 알몸 상태로 고문대에 눕히고 물고문, 전기고문, 폭행, 성적 모욕까지... 한마디로 짐승만도 못하게 다루었음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죽을 각오해라, 지금은 네가 당하고 민주화되면 내가 그 고문대 위에 올라 가마, 그 때 네가 복수해라", "9월 13일이다. 13일에 금요일인데 예수처럼 한 번 죽어봐라."

    9월 25일 고문수사관들은 집단폭행을 가해 김근태 고문은 굴복시켰고, 김근태 고문은 거짓 진술서를 쓰고 검찰로 송치됐다. 이 과정에서 부인이 김 고문 몸의 고문상처를 발견하고 변호사에게 알림으로써 잔혹한 고문실태가 폭로되었다.

    변호인들은 1986년 1월 고문 경관 15명을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1년 간 질질 끌다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변호인 측이 다시 재정신청을 냈으나 역시 2년 가까이 묵혀 있다 민주화 이후 1988년에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뀌어 정치쟁점이 되면서 서울고등법원이 재정결정을 내렸다.

    이근안 경감을 제외한 4명이 특별검사에 의해 기소돼 그로부터 5년 뒤인 93년 8월에야 감옥에 수감된다. 이근안 경감은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뀌자 자취를 감추고 10년 10개월 도피생활을 하다 1999년 10월에 자수해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06년 11월에 출소했다.

    ◇ 얼굴 없는 고문기술자의 얼굴

    경찰청의 비호 아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채 ''얼굴 없는 고문 기술자''로 불리던 이근안 경감은 1989년 1월 <한겨레신문>에 의해 얼굴이 알려진다. <한겨레신문>이 창간 기획으로 ''인권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고문'' 분야 취재를 맡은 기자가 지금 민주당의 문학진 의원이다. 당시 문 기자가 김근태 고문을 다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근태 의장, "내 나름대로 고문한 경찰관을 추적해 봤다, 이름 모르는 고문기술자는 이근* 인데 끝에가 ''한'' 같기도 하고... 경기도경 공안분실에 있을 것 같다. 얼굴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마침 치안본부를 담당하고 있던 문 기자가 치안본부 인사과에 경기도경 인사 파일들을 좀 보자며 별 취재 아닌 듯 뒤적거리다 ''이근안''이란 이름을 발견해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주소가 동대문구 OO동으로 확인되자 동대문 지역 담당 기자가 해당 동사무소에 가 주민등록부만 잠깐 확인해보자며 얻어내 뒤적거리다가 주민등록표 상의 사진을 잡아떼어 확보했고, 김근태 고문이 사진 속 얼굴이 고문 가해자임을 확인하면서 ''얼굴 없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진다.

    지금 이근안 씨는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 선교활동 중이다. 교도소에 수감돼 생활하던 중 교도소에 정기적으로 들르는 목사에게 신학공부를 하고 싶다고 요청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측 총회신학교 통신신학부 4년 과정을 옥중에서 밟고 출소 후 소정의 과정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았다.

    ◇ 회개의 눈물은 죄의 원천에까지 흘러 닿아야

    최근 논란이 커진 ''자신의 고문은 예술이었다''고 한 발언은 2010년 2월 시사주간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등장하는데 "고문 기술자라는 호칭은 맞지 않고 굳이 부른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다고 본다. 범죄자와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간단히 줄이면 ''말로 최대한 겁을 주고 적절한 타이밍에 살짝만 자극을 주어 자백하게 만드는 과정이 고도의 기술이고 예술로도 불릴 만 하다''는 설명이다.

    전기고문 당한 김근태 고문은 발끝에서 고통이 시작돼 머리끝까지 쑤시고 혀를 이빨로 깨물 정도라 하는데 이근안 목사는 아이들이 건전지 갖고 놀며 혀로 장난치는 정도라고 설명한다.

    [BestNocut_R]그럼 (이재오 장관이 당했다는) 관절빼기 고문은 뭘까? 피의자가 반항하는 걸 제압하느라 툭 치거나 유도 기술로 업어치기 한 거지 고문이라고 할 게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애국심으로 임무를 수행한 것이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일할 것이다... 라고 자부심을 보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며 여기저기 간증하러 다닌다고 하는데 그것이 신앙간증이라니, 차라리 부풀려진 소문이었으면 좋겠다.

    2004년 김근태 고문이 이근안 씨를 면회 갔을 때 "용서를 빈다" 고 말했고, 김근태 고문이 망설이자 옆에 있던 목사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하나님이 가리실 영역 아니겠냐"고 충고해 "용서한다, 건강하시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왜 망설였는가에 대해 김근태 고문은 이근안 씨가 눈물을 전혀 흘리지 않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잘못과 실수를 깨달아 참회할 수 있고 하면 된다. 그렇게 흘리는 진실한 눈물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눈물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의 원천에까지 내려가 닿아야 하고 그 죄의 원천을 모두 녹여 없앨 때까지 흘러야 한다. 그것이 회개의 눈물이다.

    자신이 저지른 고문 피해자 앞에서 눈물도 없고, 고문도 최소한의 고통으로 진술을 받아내는 예술이라 하고, 다시 태어나도 그 길을 걷겠다면서 ''빨갱이 잡느라 고생했는데 정권 바뀌니 죄인이 되어버렸다''고 간증하고 다닌다면, 하나님이 목사로 인정하다해도 나는 인정 못한다.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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