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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사람이다''…작은 모임부터 지원해야



사회 일반

    ''이들도 사람이다''…작은 모임부터 지원해야

    [경남CBS 특별기획- 이주노동자, 해방구가 없다 ④] 이주노동자 여가문화를 위한 대책 "작은 것 부터"

    국내 거주 외국인 120만 명 시대.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이 55만 명으로 가장 많다. 물론 통계에 빠진 불법체류자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최근 들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산업재해에 노출되는 등 노동환경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들의 ''퇴근 후 삶''에 대해서는 관심 자체가 없다. ''월급을 주면 딴생각 말고 일만 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 기본적인 여가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고된 육체노동에, 고향을 떠나온 스트레스를 풀 곳 없는 이들은 이곳저곳 떠돌다 결국 유흥이나 범죄로 빠진다. 과연 이들에게 여가를 즐길 권리는 주어질 수 없는지 경남CBS가 짚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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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아메드(39).

    한국인 작업반장으로부터 매일같이 듣는 말은 "열심히 일만 해서 빨리 돈 벌고, 너희 나라에 돌아가라"다.

    힘든 하루, 힘든 일주일을 보내고 즐거운 여가를 보내고 싶지만, 한국인들의 시선도, 여건도 안돼 서글프다.

    ◈ "일만 해" 차별적 시선과 인권 없는 이주민 정책이 원인

    이 같은 차별적 시선과 함께, 긴 노동시간과 저임금이라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들에게 여가활용은 남의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조차도 "이주노동자들이 아직도 짐승처럼 부려 먹고도 월급을 떼이는 판국에 이주노동자들의 복지나 여가 활용은 씨도 안 먹힐 얘기"라고 말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폐지와 함께 새로운 외국인 정책이나 제도로의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과 제도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여가 활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이주민지원센터에서 한글교육시간이나 더 해주고, 외국인 대상 축제나 몇 번 더 열어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안산이주노동자의 집 이정혁 목사는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허가제에 따라 3년에서 5년 정도 일하다가 돌아가는 소모품 정도로만 여긴다면 이주노동자들의 복지나 여가활용 문제는 해보나 마나 한 얘기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주근로자의 놀 권리도 사실은 이들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

    ◈ 다문화 정책에 밀려 이주노동자는 더욱 소외

    최근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급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은 줄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관련 지원사업들이 민간단체 중심의 초기 지원단계를 지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정부 중심의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과 정책 개발로 집중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오히려 소외 받게 됐다는 것.

    경남이주민인권센터 이철승 소장은 "정부와 지자체의 외국인 정책과 지원 예산이 다문화 가정으로 쏠리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이 결혼이주여성보다 훨씬 더 많지만, 정책적인 지원은 오히려 다문화 가족으로 편중돼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주민을 한국인의 배우자로 한국 땅에서 한국인의 혈통인 2세를 낳아 기를 사람에 한정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현상"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이주민 지원 정책에서조차 차별받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안산 이주노동자의 집 이정혁 소장도 "최근 다문화 가정에는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몰리면서 중복 투자가 우려될 정도지만, 이주민 노동자들에게는 오히려 그러한 지원이 전혀 없다"며 "중복되고 실효성 없는 다문화 가정 지원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주민노동자들에게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해 ''미얀마 도서관'', ''스리랑카 크리켓대회'' 좋은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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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의 여가 활용에 대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도 대안으로 삼을 만한 의미 있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경남 김해시 동상동 외국인 거리의 한 건물 3층에는 일요일만 되면 백여 명의 미얀마 인들로 북적댄다.

    ''황금 빛살 독서실''로 이름 붙여진 이곳은 지난해 12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의 도서관이자, 쉼터다.

    이 곳은 두세 시간씩 한글공부 수업이 열리는 강의실이기도 하고, 대부분이 불교 신자인 미얀마인들의 법회가 열리기도 한다.

    또, 간단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대화나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해 미얀마인들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도서관에는 백여 권의 책이 있는데, 이 책들은 미얀마인들이 쓰던 책을 기증받거나, 필요한 조금씩 책들을 모아서 장만한 것들이다. 한글 공부 서적에서부터 미얀마 소설까지 다양하며, 대부분 이주노동자들로 꼭 필요한 책이다.

    도서관은 미얀마인들이 생산적인 여가활용과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미얀마인들이 조금씩 회비를 걷어 건물세와 전기세 등을 내면서 운영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얀마 인들은 정기적으로 돈을 조금씩 모아 본국에서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도록 송금을 하기도 한다.

    한글 교사를 맡은 미얀마인 유학생 라민턴(30) 씨는 "도서관이 생기면서 놀기보다는 공부를 하는 동포들이 늘었고, 그냥 놀기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며 "사실 운영하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좋은 취지에서 생긴 공간이니만큼 잘 꾸려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만든 모임이나 활동들도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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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산에서는 스리랑카인들이 십여 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자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크리켓 대회를 열어왔다.

    매년 4월 스리랑카 설날에 맞춰 열리는 이 대회는 외국인지원단체인 안산이주민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서 시작돼 이제는 전국의 스리랑카인 4천에서 5천여 명이 모이는 대규모 대회로 성장했다.

    이날에 스리랑카인들은 크리켓 경기 외에도 배구나 달리기 등 다양한 게임을 즐기며 하루를 즐긴다. 그들에게 이 하루는 한국에서 그 어떤 날보다 즐거운 축제가 된다.

    안산이주민인권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여가문화를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자존감이나 정체성을 살리는데 더욱 효과가 크다고 보고대회를 자체적으로 열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 이주민인권센터 김형민 소장은 "정부와 자치단체는 아직까지 이주노동자들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고 스스로 만드는 행사를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문화행사나 공동체 활동 등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손쉬운 레크리에이션, 외국인밀집지역부터 활용해야

    외국인들의 여가 활용에 반드시 많은 돈과 노력이 드는 것도 아니다.

    한국노사문화 진흥원 윤재섭 사무총장은 "이주민들의 여가활동도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거창하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말이 통하는 사람과 만나서 자기 언어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스트레스 해소법이 될 수 있어 그런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스트레칭이나 요가, 이미지 연습 등 간단한 오락프로그램이나 축구나 농구 등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만으로도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바우처 제도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지자체, 기업, 지원단체들이 공동으로 부담해서 외국이주노동자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BestNocut_R]

    이와 함께, 경기도 안산의 ''국경 없는 마을''과 같은 전국 곳곳의 외국인 밀집지역을 이주노동자들의 여가 활동 등을 위한 공간으로 특성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몰리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치안이 불안한 혐오지역이라는 이미지도 있는 외국인 밀집지역을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의 여가 활동을 위한 순기능을 높이고, 부작용을 최소화시켜 이주노동자들이 문화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산이주민인권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안산 인근에 이주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문화를 즐길 만한 곳은 사실상 국경 없는 마을이 있는 원곡동 밖에 없다''''며 ''''하지만 질서나 치안이라는 잣대로만은 이주노동자들이 문화적으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문화적 욕구 해소를 위한 대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곳 주변에 스트레스를 풀 공간이 생겨야 접근성이 좋고, 비슷한 처지의 다양한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위치에 그러한 공간이 생겨야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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