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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리운전을 하게 될 줄을…아직도 챙피하죠"



사회 일반

    "내가 대리운전을 하게 될 줄을…아직도 챙피하죠"

    [2011 벼랑끝 이웃들 ③] 쪽방촌에서 꿈 잃어가는 대리운전 기사

    경남CBS는 2008년 겨울, 불황의 시기에 질병과 가난에 내 몰린 이웃들의 이야기를 ''특별기획 2008 벼랑끝 이웃들''로 다루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벼랑끝에 내몰린 서민들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2011년 겨울, 하루 하루를 시리도록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다시 만나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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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 대리운전 부르셨죠?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더니 3분도 채 안돼 한 중년의 남성이 2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허겁지겁 달려왔다.

    늦게 온 것도 아닌데 계속 "기다리게 해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인다.

    그러면서 한 손에 들고 있던 PDA 단말기에 손님을 태웠다라는 표시로 콜 센터에 확인 버튼을 꾹 눌렀다.

    "어디로 모실까요" 자동차 키를 받아든 그가 숨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석씨는 이날 밤 이렇게 기자를 세 번째 손님으로 만났다.

    ◈ "내가 대리운전을 하게 될 줄을…아직도 챙피하죠"

    대리운전 2개월 차인 이상석(57.진해시.가명)씨는 대리운전 초보다.

    대리운전을 ''투 잡'' 형식으로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씨에게 대리운전은 마지막 생계 수단이다.

    "대리운전을 할 줄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핸들을 잡은거죠. 동선에 맞춰 손님을 모셔야 하는데 요령이 없어 막무가내로 다니다보니 하루 몇 콜 잡기 힘들어요. 대리운전 만만치 않네요"

    말하는 도중에도 이 씨는 계속 PDA 단말기를 만지작 거렸다. 한 콜이라도 더 빨리 접수하기 위해서다.

    이 씨는 중소 건설회사의 임원까지 지냈다. 3년 전 회사를 나온 뒤 조그마한 토목회사를 차렸지만 경기 불황이 불어 닥치면서 사업은 이내 망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 이 씨의 명의로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한 동생마저 부도가 나면서 5억이 넘는 빚을 떠안게 됐고, 그의 인생도 내리막길로 치닫게 됐다.

    자신 소유의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고, 빚을 갚지 못하다보니 순식간에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가 붙고 말았다. 아직도 2억 가까운 돈이 빚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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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돈. 그 큰 돈을 갚아 나가야 할 생각에 가슴이 메어 온다.

    "동생 사업 실패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 쫓겨났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저에게 생긴거죠. 아직도 2억이 남았는데 도저히 갚을 수 없어요. 한 번도 써보지도, 만져 보지도 못한 돈인데. 한번이라도 만져봤으면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아내도 충격에 한동안 실어증세를 보였다.

    거리로 내쫓긴 이 씨의 가족은 진해의 한 쪽방촌으로 나앉았다. 보증금도 없는 월 20만원짜리 방이다.

    부엌하나 딸린 좁은 방. 그 좁은 방에 고 2짜리 작은아들과 아내, 그리고 이 씨가 살고 있다. 다행히 큰 아들은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대리운전을 하기 전 지인의 공장에서 막노동 일도 했다. 하지만 6개월 일한 돈은 그대로 차압을 당했다.

    몸도 망가졌다. 처음 해본 막노동이라 팔 인대가 늘어났다.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도 못받아 아직도 팔을 제대로 못 들 정도로 욱씬거린다.

    어금니가 썩어 잇몸이 퉁퉁 부었는데도 현금이 없으니 치료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신용카드라도 있으면 할부라도 끊어 치료를 받겠는데, 신용불량자라 현금이 없으면 생활이 안됩니다. 살면서 이렇게 불편한 것을 처음 느껴봐요"

    대리운전을 시작한 이유다.

    "공장에서 일하고 월급 나오는 족족 차압을 당하니, 대리운전을 하게 됐죠. 일당이지만, 하루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예전 회사 다닐 때 대리운전 부르면 잔돈을 안받았거든요. 그 땐 몰랐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소중한 돈이거든요. 아직도 챙피하죠. 누가 알아 볼까봐요. 그런데 먹고 살라니깐 다 하게 되더라구요"

    대리운전을 시작한 후 누가 알아볼까봐 한 달동안은 손님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휴일도 없이 두 달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했다. 밤 새도록 일했다. 그러나 수입은 한달에 150만 원도 벌기 힘들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잠은 한 두시간만 자고, 낮동안 1톤 트럭을 몰며 짐을 나르고 있다.

    중소기업 임원에서 대리운전기사로 180도 바뀐 삶. 이 씨는 하루 24시간을 꼬박 일하면서도 ''''다시 일어 설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다. [BestNocut_R]

    아니 살아갈 힘 조차 없어 보인다.

    "다시 일어서기 힘들 것 같아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자체도 힘든데 빚까지 갚으려고 하니 도저히 살기 힘들죠. 여유가 없죠. 몸이라도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몸만 건강하고 안 아프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제 소원은 이것 하나 뿐이죠"

    아이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눈물이 앞선다.

    "좁은 집에 부대끼며 사는 것도 미안하고. 공부도 시켜야 하는데...이런 상황을 아니까 아이들도 용돈 달라고 하질 않아요. 대학 다니는 큰 녀석은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 해가며 학비를 벌고 있고... 다른 아빠처럼 용돈도 풍족하게 주고 싶은데,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때 2,3만 원 쥐어주는게 전부니…가슴이 찢어집니다."

    끝내 눈물을 보이는 이 씨.

    이 씨는 대리운전비 만 원을 받아 들고 다시 PDA 단말기를 뚫어지 듯 쳐다본다. 금새 전화를 건다.

    "사장님 대리운전 부르셨죠? 지금 금방 가겠습니다"

    ◈ "남편 사업 망해 시작한 대리운전…손님 너무 없어요"

    저녁을 일찍 챙겨 먹은 주부 김정화(52.창원시.여)씨가 집을 나섰다.

    IMF 시절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시작한 대리운전. 벌써 10년이 넘었다. 10년째 대리운전을 해 번 돈으로 빚을 갚고 있지만, 아직도 수 천만 원의 빚이 남아있어 그만둘 수 없다.

    PDA 단말기를 켜는 순간 전쟁은 시작된다. 같은 구역에 있는 대리기사들이 집중돼있기 때문에 남보다 먼저 콜을 잡아야 한다.

    "대리기사들이 요즘 너무 많아 손님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빚을 갚기위해 식당에서도 일 해봤지만 돈 벌이가 시원치 않아 대리운전을 하게 됐어요. 잘 만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으니까요''''

    10년 전 이 일을 시작할 때만해도 벌이가 괜찮았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고 업체가 늘어나면서 경쟁도 치열해져 수입이 뚝 떨어졌다. 요즘은 새벽 1시만 넘어서면 손님이 거의 없다.

    "초저녁에 집에 나와 새벽 3,4시까지 일하는데 요즘은 손님이 너무 없어요. 귀가도 일찍하고, 예전엔 접대 손님이 많았는데 경기가 안좋은지 통 없네요"

    시내 요금으로 8천 원을 받으면, 절반은 회사에 줘야하는 ''''콜비'''' 등 비용으로 나간다. 요즘 같이 손님이 없을 때는 밤 새도록 뛰어도 하루 3만 원을 벌지 못할 때가 많다.

    "하루 10시간을 한 달 꼬박 일해도 한달 100만 원에서 130만 원쯤 법니다. 위험 부담도 많고, 쉬지 않고 달려도 손님이 없어 돈이 안 될때가 많아요. 그래도 빚을 갚아야 하니까…"

    깜깜한 새벽까지 술에 취한 남성 손님을 태우는 것도 여자로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술 취한 남성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요금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매일 매일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김 씨는 꾹 참는다.

    "무섭죠. 특히 변두리로 가면 신경이 특히 많이 쓰이고 힘들죠.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이 위험도 감수해야죠. 이런 각오 없으면 대리운전 하기 힘들어요. 어떤 손님들은 여자 기사가 왔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함부로 대하죠. 마음이 너무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객지에서 막노동하는 남편 생각하며 참고 하는 거죠"

    김 씨와 대화를 나눈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다음 손님이 있는 곳까지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재촉하는 전화에 택시라도 잡아타면 남는게 없다. 가까운 곳에서 콜이 잡히기만 초조하게 기다릴 뿐이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콜이 접수됐다. 찬 바람 속에 옷깃을 꼭 여민 채 그는 다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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