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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0만 원을 받더라도 오래 일하고 싶어요"



사회 일반

    "7, 80만 원을 받더라도 오래 일하고 싶어요"

    [2011 벼랑끝 이웃들 ②] 노숙자 전락 29살 청년백수
    "평범하게 사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경남CBS는 2008년 겨울, 불황의 시기에 질병과 가난에 내 몰린 이웃들의 이야기를 ''특별기획 2008 벼랑끝 이웃들''로 다루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벼랑끝에 내몰린 서민들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2011년 겨울, 하루 하루를 시리도록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다시 만나본다. [편집자 주]

    점심 때가 되자 한 청년이 무료급식소로 힘없이 걸어왔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옷은 때로 찌들었다.

    김 씨가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무료 급식소 앞 벤치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20분을 걸어왔다고 한다. 무료 급식이 시작되자 청년은 얼른 줄을 서기 시작했다.

    "먹을 게 없어서 여기까지 걸어왔어요. 쌀이 좀 있긴 한데 혼자 먹기 싫기도 하구요''''

    나이든 노숙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밥을 받아든 청년은 인근 벤치로 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김현성(29.마산합포구.가명)씨.

    그는 오늘도 한 끼의 식사를 이렇게 해치웠다. 따뜻한 국물을 남김없이 들이킨 그는 "맛있네요.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라며 약간의 웃음을 보였다.

    김 씨는 세상이 말하는 ''청년 백수''다. 취업을 하려 했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고등학교 중퇴라는 학력이 취업의 벽을 더욱 높게 만들었다.

    새벽에는 매일 인력시장으로 향하지만, 이 일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벌써 3일째 일을 못했다.

    "생활비가 제일 급하죠. 노가다 뛰면 하루 7만원이라도 버는데 벌써 3일째 일을 못했어요. 당장 방세가 필요한데…" 인상이 굳어졌다.

    김 씨는 15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20살 때는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때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불법 전단지를 돌리다 적발돼 자퇴 처분을 받았다.

    안 해 본 일이 없다. 공장에서 일도 해보고, 식당과 주유소, 나이트클럽 등 전국을 떠돌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주유소에서 일하다 경유를 넣어야 하는데 휘발유를 넣어 짤리기도 하고,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할 때는 월급 500만 원을 사장이 떼먹기도 했죠. 숙식도 제공해 주는 사장이 너무 고마워서 믿고 월급을 맡겼는데 결국 받질 못했어요"

    월셋방을 살다가 돈이 없어 몇 번이나 쫓겨나기도 했다. 오갈 데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노숙 생활도 하게 됐다. 불과 2년 전만해도 그는 노숙자였다. 계속된 절망과 좌절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충청도, 전라도, 서울, 부산을 돌아다니며 일도 하고 노숙도 했죠. 돈 있으면 방에서 자고, 돈 없으면 빈 건물 같은데 들어가서 버려진 이불을 덮고 잤죠. 너무 추우면 잠도 안와요. 그러면 밤새 계속 걸어 다녀요. 배는 고프고, 너무 춥다보니 몇 번이나 죽을 생각을 했어요. 바닷가에 나가 뛰어들 생각까지 했죠.

    가족이 없냐고 물었더니 긴 한숨을 쉬었다. 누나가 위로 3명이 있지만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다. 워낙 가난하다보니 뿔뿔이 다 흩어졌다. 너무 일찍 가족과 이별을 하게 되니 ''가족''이란 단어도 어색하기만 하다.

    "예전엔 있었는데 얼마 전 등본을 떼 보니 누나들이 다 사라졌더라구요. 다 결혼을 했나봐요. 보고 싶기도 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아요. 누나들 삶이 있으니깐요. 부모님도 보고 싶죠. 생각은 많이 나는데 안 하려고 해요. 속만 아프니까요. 혼자 있으면 울컥하죠." 그의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김 씨의 집을 찾았다. 보증금도 없는 월 16만 원짜리 단칸방이다. 차갑고 습한 방 안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보일러를 돌릴 처지도 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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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가지와 이불이 널려 있었고, 벽지는 군데군데 뜯겨 있었다. 먹다 남은 컵라면에는 곰팡이가 잔뜩 붙어 있었고, 상한 반찬과 생수통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냉장고 안은 오래된 김치가 전부였다.

    한쪽에는 우편물이 잔뜩 쌓여 있다. 1년 전 대부업체에서 빌린 100만 원이 140만 원이 되어 돌아왔다. "이달 말까지 돈을 갚지 않으면 소송절차를 밟겠다"는 마지막 통지문이었다.

    TV 유선비, 주민세 등 온갖 독촉장이 대부분이다. 이 방도 곧 빼야 한다. 방 값이 두 달치나 밀렸다.

    "다시 노숙 생활을 해야죠. 어렵게 구한 방인데 방 값이 없어요. 제가 가진 전 재산은 180원이 전부입니다." 그는 호주머니를 털어 180원을 꺼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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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말할 때마다 발음이 샜다. 치아 대부분이 빠졌고, 남아있는 이 몇 개도 모두 썩어 있었다. 이가 아파도 참고 산다.

    만성간염 판정도 받았지만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이가 아파도 돈이 없으니까 그냥 참고 살아요. 간염도 앓고 있지만 치료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돈이 없으니까..."

    그래도 그는 절망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를 꿈꾸며 산다. 세상에 홀로 남긴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기도 했다.[BestNocut_R]

    "20대 중반까지는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너무 힘들었거든요. 가족이 없다보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 하나 말을 해 주지 않았어요. 아무도 도움을 못받았어요. 하지만 지금의 생활도 나에겐 좋은 경험이자, 교훈인 것을 깨달았어요. 죽을 결심을 한 것도 지나보니 바보같은 짓이었구나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에게도 꿈은 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혼자 사는 게 정말 힘들어요. 좋은 직장을 구하기보단 7,80만원을 받더라도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런 날이 꼭 올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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