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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애나의 플랜테이션 농장 ''오크앨리의 창(窓)''



여행/레저

    루이지애나의 플랜테이션 농장 ''오크앨리의 창(窓)''

    [자동차로 미국 누비기 29] 초강대국 미국의 소수인종문제는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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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브라함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야만적인 노예제도가 막을 내린 지 한 세기 반 세월이 흘러 갔지만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의 후손인 흑인들은 여전히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힘겨운 차별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흑인 최초로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에 오른 지 4년이 지나고 있지만 흑인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흑인 대통령에 흑인 대법관, 루이 암스트롱과 마이클 잭슨, 오프라 윈프리 같은 성공한 인물들을 배출했지만 다수의 흑인 대중들은 감당하기에 어려운 짐을 진 채 힘겨워 한다.

    미국사회의 견고한 주류를 형성한 백인들은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이주한 선조들의 투쟁과 북미대륙 정복의 역사에 힘입어 기득권을 누리고 있지만 흑인들에게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백인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미국땅에 첫발을 디뎠지만 흑인들은 타의에 의해 노예로 미국 땅에 팔려왔을 뿐이니까.

    애초 다른 출발선상에서 시작했으니 흑백간의 격차는 당연할 귀결일 지도 모른다. 노예해방이 이뤄지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지도 못했던 차별이 사라지고 흑인을 지칭하던 ''블랙''이나 ''니그로''란 말도 조금은 고상한 아프리칸 어메리칸이란 용어로 대체됐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까지는 어쩔 수 없다. 또 본질적으로 부의 격차는 계층을 만들어 내고 이른바 ''그들만의 리거''는 상속이란 이름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미국 노예해방사에서 큰 획을 그은 드레드스콧 노예해방 소송이 1846년 중부 미주리주에서 제기됐고 당시 미주리를 비롯한 중부 콘(Corn)벨트의 주들은 노예제도를 불법화하고 있었다.

    남부의 대농장을 탈출한 흑인노예들이 북부와 캐나다로 도주하기 위한 1차 경유지로 미주리를 택했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흑인들의 운신의 폭이 넓었던 곳이 미주리주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흑인 거주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 중서북부지역에 비해 흑인 인구의 비율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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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곳에도 극빈층 소외계층은 예외없이 흑인이다. 미주리 주립대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하기 위해 콜럼비아시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낯설고 물선 동네였지만 2,3개월이 지났을 무렵부터 콜럼비아 사회가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구 10만 남짓한 중소도시 콜럼비아는 전형적인 백인 중심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내가 적을 두고 있던 미주리 주립대 저널리즘 스쿨에서는 한 강의실에 한 두 명의 흑인 학생이 눈에 띌 정도로 백인 학생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공공기관과 은행, 마트 어디를 가도 백인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고 흑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흑인들은 주로 다운타운의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에서 거주하거나 변두리지역의 듀플렉스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나마 대부분 세들어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운타운에서 가까운 거리에 ''더글라스''라는 한 고등학교가 있다. 그 곳엔 외국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강좌를 개설해 두고 있어 종종 들르곤했다. 학교 주변은 흑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촌이고 그 곳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대체로 흑인들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말이 아파트지 백인들이 거주하는 호화로운 단독주택과 비교하면 거의 쪽방촌에 가까울 정도로 주거환경이 열악하다.

    저널리즘스쿨에 다닐 때 살았던 곳은 콜럼비아시의 서쪽 변두리에 위치한 제나코트(JEANA Court)였다. 이 곳은 전형적인 듀플렉스 촌으로 동네 조성 초기만해도 백인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흑인 거주인구가 크게 증가해 백인과 한인 연수생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듀플렉스라고는 해도 앞뒤로 꽤 넓은 잔디밭이 조성돼 있고 집의 규모도 1,2층을 합쳐 5,60평가량 되기 때문에 주거환경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생계를 꾸려가기에 바쁜 흑인들이 자연 자녀 관리에 소홀하다 보니 그 곳을 포함해 많은 흑인거주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민원이 끊이지 않게 된다. ''동네에 흑인이 한 두 가구 들어오기 시작하면 백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노예제도가 흑백간 계층을 만들어 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도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차별이 온존하고 있는 셈이다.

    {IMG:7}흑인들과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문제의 소지가 많은 이웃이 현실적인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묘책도 없고 그대로 덮어두고 갈 수도 없으니 소수인종문제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루이지애나에서의 두 번째 여정은 흑인 노예들을 부리던 대농장이었다. 뉴올리언즈 북서쪽 베체리(Vacherie) 부근에 오크 앨리(Oak Alley Plantation)라는 이름의 맨션이 있다. 남부지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목화농장 가운데 하나지만 저택 주위에 조성된 참나무 길이 워낙 독특한 풍경과 기운을 발산하는 곳이라 관광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3층짜리 저택 뒷뜰에는 성인 2명이 손을 맞잡아도 닿지 않을 만큼 굵은 아름드리 거목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깊은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다. 거대한 고목들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아예 땅바닥으로 내려 앉은 것도 있고 한국의 노송처럼 무거운 가지가 아래 쪽으로 처진 것도 있다. 고목에는 흑인노예들의 힘겨운 삶을 반영이라도 하듯 울퉁불퉁한 옹이와 이끼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숙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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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 앨리의 참나무들은 현재의 맨션이 건축되기 전인 18세기 초에 심어졌으니 수령이 대략 30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저택 앞으로는 더 넓은 평원, 뒤로는 250여 미터 길이의 오크 앨리(참나무 터널길) 터널이 미시시피강 둑까지 뻗어 나갔다.

    참나무 숲으로 조성된 정원의 한 가운데로 정방형의 저택이 자리잡고 있다. 바닥면적만 100평이 넘을 것 같은 저택은 사방으로 28개의 돌기둥이 뾰족한 지붕을 받치는 프렌치 크레올 양식으로 당시 미시시피밸리에 건축된 맨션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지붕과 외벽, 기둥은 대리석 처럼 보이게 할 목적으로 흰색으로 채색했다. 내부는 대리석과 오크 등 고급 마감재로 처리됐고 중후하면서도 화려한 엔틱 가구로 채워진 침실과 거실은 백인 농장주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맨션의 주인은 부유한 백인 농장주들이었고 이들은 일상생활은 물론 경제활동도 철저히 흑인 노동력에 의존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고된 밭일에서부터 가축관리, 의식주와 관련된 허드렛일, 심지어 식탁머리에서 파리 쫓는 일까지 모든 노동은 흑인들의 몫이었다.

    그나마 가족들과 함께라면 그마저도 행복이다. 부모 형제가 다른 농장으로 팔려가면 생이별의 고통까지 감내해야 했으니 흑인들에게는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주인이 10달도 되지 않은 젖먹이를 노예상인에게 팔아버리자 엘리저란 여성이 아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 얘기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란 소설에 나오는 얘기지만 소설에 반영된 사건들은 비인간적인 노예생활의 단면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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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 앨리에는 평원 위에 덩그러니 솟은 맨션과 주위에 조성된 이색 정원을 빼면 특별히 볼거리가 없다. 하지만, 인류가 채택한 최악의 제도 가운데 하나인 노예제의 흔적들을 들여다 보며 삶과 고통, 행복과 불행이란 근원적인 화두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노예제에 기반한 백인 농장주들의 영화(榮華)도 남북전쟁 패배로 종언을 고했다. 조지아와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등 미국 남부에는 플랜테이션 농장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다수가 전쟁의 포화 속에 파괴됐다. 오크 앨리 역시 남북전쟁 당시 폐허로 변했다 다시 복원되는 과정을 거듭하다 1925년 소유권이 앤드류와 조세핀 스튜어트에게로 넘어갔고 조세핀 사후에는 역사유적지로 지정돼 공공에 개방됐다.

    오크앨리 부근에는 St.Joseph 플랜테이션을 비롯해 아직까지 다수의 플랜테이션이 남아 있고 오크 앨리 처럼 역사 랜드마크로 지정돼 관리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개인이 상업적 목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루이지애나는 플랜테이션도 가볼 만 하지만 끝없이 넓은 습지를 품고 있는 곳이다. 텍사스 남부에서 루이지애나주로 접어들다 보면 핸드슨 스웜프란(swamp) 늪지대가 나온다. 전 지역이 거의 물반 땅반의 습지이다 보니 도저히 땅위로는 도로를 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US 10번 고속도로는 습지대 위로 고가도로를 만들어 설치했다. 그 길이가 수십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장대하다. 도로 아래로는 크고 작은 호수와 소택지들이 점점이 퍼져 있고 주변으로는 아열대 수목들이 밀림을 이루는 습지식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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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팔라야(atchafalaya)강이 관통하는 루이지애나 남동부지역은 대개가 이런 습지이고 강을 흐르는 흙탕물은 주위의 숲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아차팔라야 배신(basin)은 시메스포트로부터 멕시코만에 이르는 14억 7천만평의 방대한 규모로 아메리칸 엘리게이터와 다양한 어류, 조류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면서 미시시피강의 홍수조절지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다.[BestNocut_R]

    미국 정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경우처럼 폭우가 쏟아져 미시시피가 범람할 위기에 처하면 하류에 위치한 뉴올리언즈를 구하기 위해 아예 강의 물길 자체를 바꿔 버리는 예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아차팔라야 배신이다.

    엄청난 담수면적을 활용해 미시시피 홍수의 거의 절반 정도를 받아들여 아차팔라야 강을 거쳐 멕시코만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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