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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겆이 역할분담 : 국회 날치기, 경찰 물대포, 언론 왜곡보도



기자수첩

    설겆이 역할분담 : 국회 날치기, 경찰 물대포, 언론 왜곡보도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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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한미 FTA 비준안이 22일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기습강행 처리됐다.

    23일자 <조선일보> 사설. "여당이 기습적으로 군사작전 벌이듯 비준안을 처리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대통령·정부·여당이 정성과 진심을 다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야당 역시 FTA를 국익보다는 내년 선거에서의 득실을 기준으로 저울질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다."

    <중앙일보> 사설. "민주당은 그간 한나라당 단독 처리를 유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내년 총선 때 표를 얻기 위해 한나라당에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게 당의 전략 아니었던가. 비준안이 가결되자 옳다 하고 농성에 들어간 것도 그런 맥락 아닌가."

    <동아일보> 사설. "어제 민주노동당 소속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린 행위는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한 테러다. 엄격히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은 야당의 무조건적인 반대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우리는 본다."

    ◇조중동으로 읽는 날치기의 시각차

    이들 신문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의 여당 날치기 처리 때는 어떻게 보도했을까?

    <2004.12.8 조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날치기를 하면서 의사봉 대신 국회법 책자로 책상을 두드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여태 이 지경이구나 하고 부끄러웠다."

    <1999.5.5 조선> "새삼 강조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는 룰의 정치, 절차의 정치이다. 이번 사태가 날치기냐 변칙처리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군사독재시절이건 민주화 시절이건 다수가 소수를 강압적으로 제압했다는 폭력적 측면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2006.5.3. 중앙> "타협을 일절 거부하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한 독선이다"

    <2000.8.3. 중앙> ''''날치기는 누가 뭐래도 잘못이다. 명백하게 사과부터 하라''''

    <1999. 5.4. 동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주요 법안들을 일거에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은 국민주권을 유린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요 민생이다.''''

    <2000.7.4. 동아> ''''야당의 강경저지를 뻔히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 것은 보스를 위한 충성심 보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회운영 파행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날치기 관련 발언도 살펴보자.

    22일 FTA 비준안 통과 후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 후, 홍준표 의원이 남긴 말은 이러하다.

    ''''나는 국회의장석 몸싸움을 보면서 1996년 12월 25일 새벽, 날치기 노동법 기습처리를 생각했다. 당시 우리는 승리했다고 ''양지탕''에 가서 거사를 축하하고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YS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바로 한보사건이 터졌고 IMF가 초래되면서 우리는 50년 보수정권을 진보진영에게 넘겨줬다.''''

    그렇게 반성하는 투로 글을 올려 한나라당 내부에서 비난을 받았던 홍준표 대표가 이번엔 전격 기습처리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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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치사에 남은 날치기의 추억

    한국 의정사에 길이 남아 홍준표 대표가 트라우마처럼 간직한 1996년 12월 25일 새벽의 노동법 날치기 처리 전말은 이러하다.

    야당 의원들과 취재 기자들의 눈을 피해 퇴근하는 척 의사당을 나선 여당 신한국당 의원들은 팔레스 호텔, 나이아가라호텔, 마포 가든 호텔, 리버파크 호텔 4곳에 분산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새벽 4시 쯤 4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각각 국회로 출발했고 이때 국회 본회의장에는 국회 사무총장 지휘 아래 속기사 등 국회 사무직원들이 배치돼 있었다. 새벽 6시 오세응 국회부의장이 본회의를 개회하고 노동법, 안기부법 등 11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그 때는 일어서서 가부를 표시하는 방식이어서 한나라당의원들은 11번 일어섰다 앉았다로 처리했고 6분 걸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BestNocut_R]이 자리에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앉아 있던 초선의원들이 안상수 전 대표, 홍준표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특임장관, 이번에 의사봉을 쥔 정의화 국회부의장 등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당시 복지부 장관 신분으로 참석해 22일 그날처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홍구 당시 신한국당 대표는 ''''내가 책임지겠다. 누가 옳았는지 내년 대선을 통해 심판 받겠다''''고 소신 발언했고 결국 심판을 받아 정권을 내줬다.

    우리 국회의 날치기 처리의 역사는 깊다. 본격적으로 날치기의 장을 열었다 평가되는 제 3공화국 3선 개헌안 날치기 처리 장면을 보자.

    △1969년 9월 14일 새벽 2시 30분. 여당인 민주공화당 의원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3번째 대통령 연임을 위해 헌법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야당의원들이 회의장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대학생, 고교생까지 나서 3선 개헌을 반대하던 상황이었다. 여당 의원들은 국회 제3별관 (지금 서울시의회 자리)에 전등을 끈 채 어둠 속을 더듬어 모인 뒤 찬성 122표, 반대 0표로 통과시켰다. 그 때부터 여당의 시간차 이동공격이란 전술이 국회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1979년 당시 김영삼 야당 총재 제명 동의안은 의사당 1층 146호실(여당의원 회의실)에서 여당 의원 159명이 찬성 159, 반대 0표로 처리. 회의 개시와 제명동의안 발의 과정에 40초, 제명 결정에 20초. 1분 안에 끝낸 날치기의 최단 기록이다.

    △1986년 전두환 정부 때 예산안은 민정당 의원 휴게실에서 새벽 3시에 처리.

    △1994년 12월, 김영삼 정부 예산안 처리 때는 이춘구 국회부의장이 본회의장 2층에 마련된 지방신문사 기자실에 슬그머니 들어오더니 ''실례합니다'' 하고 나서는 주머니에서 무선 마이크를 꺼내 1층 회의장에 있는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회의를 진행하며 순식간에 예산 통과처리.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는 국회부의장이 여당 국회의원들 의석 한 가운데에 선 채로 회의를 진행했다.

    이런 식의 날치기가 계속되면서 국회에 대한 불신이 쌓이자 결국 국회법을 고쳐 의장석에서만 안건을 처리하도록 방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국회의장석이 백마고지처럼 되어 버렸고, 여당은 국회 경호 인력으로 의장석을 보호하면서 처리하는 경호령 발동 방식을 새로운 강행처리 방책으로 삼고 있다.

    참으로 정치하기 쉽지 않은가. 국회에서의 현안 처리는 국회 경위들이 맡고, 국민의 반발은 물대포가 처리한다. 여론 호도는 중앙 언론사들이 설거지를 맡아 한다. 대통령은 해외 돌면서 인심이나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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