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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분노' 앞에 그들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었다



여행/레저

    '자연의 분노' 앞에 그들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었다

    • 2011-11-16 09:38

    산과 물, 사람이 빚어낸 '녹색의 땅'… 靑森 <아오모리>

    11월 4일 아침. 서울은 흐리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새벽까지도 망설였던 여행. 일본 아오모리현 팸투어를 떠나는 맘이 가볍지가 않다.

    지난 달 팸투어 제안을 받자마자 해당지역 방사능 수치부터 확인했던 터였으니, 낮게 깔린 대기는 그런 맘을 더 무겁게 했다.

    인천공항에서 두 시간. 아오모리 시내에서 20여 분 거리의 아오모리 공항은 약간 상기된 듯 보였다.

    지난 쓰나미 참사 이후 중단했던 인천-아오모리 노선이 최근에 복항했기 때문일까. 일본인들의 미소엔 반가움과 긴장감이 동시에 비쳤다.

    ■ '사과의 고장' '아오이사과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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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모리 공항에서 40여 분 거리의 사과체험농장 토미코(60)씨도 간만에 찾은 한국관광객 앞에 긴장하고 있었다.

    '아오이사과'란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아오모리 사과의 명성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70년 이상 된 사과나무들이 즐비한 과수원은 이곳이 사과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큰 기후가 아오모리 사과를 만들었다지만, 나이 많은 사과나무처럼 주름이 깊게 펜 토미코씨의 손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3대를 이어 일군 아오모리 사과는 크고, 달고, 향이 좋았다. 사과농장엔 지역 방송사 기자도 기다리고 있었다.

    대참사 이후 다시 찾은 한국관광객들은 이 곳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으리라. "아오모리에서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ATV 타쿠시 기자의 질문에 무어라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곳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고 했지만, 일본어를 모르니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

    무엇을 보러 여기까지 온 것일까? 사과농장을 떠나 차창으로 펼쳐진 거대한 삼나무 숲을 본 순간 따로 답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아, 좋다!'

    ■ 해안까지 펼쳐진 붉은단풍… 자연이 만든 거대한 작품

    하코다산을 정점으로 해안까지 펼쳐진 늦가을 아오모리의 숲은 깊고 쓸쓸하고 아름다웠다.

    잎이 진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숲은 거대한 캔버스였다. 연회색의 캔버스에 짙은 초록의 삼나무 붓질은 경쾌하고 평화로웠다.

    다음날 케이블카로 하코다산 정상을 오를 수 있었는데, 회색 바탕에 초록과 아직 남은 단풍까지 어우러진 아오모리 전경은 자연이 만든 거대한 작품이었다.

    해안에 붙은 도시와 반대편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숲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연등 축제인 네푸타 전시장과, 사과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a팩토리까지 둘러본 후, 숙소인 아오모리야 고마키온천으로 향했다.

    '박주원'의 기타연주를 들으며 어둠이 내린 아오모리 외곽 도로를 달리니 팍팍했던 하루의 피로가 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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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키 온천은 주말을 이용해 이곳을 찾은 일본인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은퇴한 노인들이었고, 젊은 가족 단위의 관광객은 소수였다.

    온천이 원래 노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지만, 일본이 가진 세대간 빈부격차를 반영한 현상은 아닐까하는 추측을 했다.

    단풍숲으로 둘러싸인 고마키 온천은 조용했다. 한국 온천가 주변의 시끌벅적함과는 많이 달랐다. 온천이 문을 닫는 12시가 지나면 몇 안되는 상점도 문을 닫는다.

    조용히 쉬기에 좋았지만, 새벽의 허기를 달래기엔 불편했다. 해산물 위주의 온천에서 제공한 뷔페식은 썩 괜찮았다. 튀고 흘리기 쉬운 간장을 젤리로 만들어 제공하는 꼼꼼함이 음식 곳곳에 묻어났다.

    매일 열리는 사미센 공연까지 보고나니 피곤하고 시간도 늦었다.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객실에 비치된 녹찻잎을 욕조에 불려놓고 나만의 객실온천욕을 즐겼다.

    ■ 작은 도시와 어우러진 예술세계 '토와다시 현대미술관'

    다음날 새벽.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야외온천은 신비로웠다.

    단풍이 오른 나무 사이를 새들이 날았고, 온천과 맞붙은 호수엔 잉어들이 잡힐 듯 유영했다. 잠시 지상의 일들은 잊어도 괜찮겠다는 허세를 즐기며 누워 쉬었다.

    온천을 나와 간 곳은 토와다시 현대미술관이다. 현대미술관이라니? 이렇게 작은 도시에?

    일단 크게 짓고 보는 우리의 현대미술관들에 익숙해진 상식은, 소박하고 단출한 이곳 전경에 어울리지 않게 크게 솟아 있는 기괴한 건물을 상상했다.

    그리고 '예술'을 '예술회관'으로 생각하는 관료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마치 몇 개의 아담한 상자들을 연결해 놓은 듯한 토와다시 미술관은 나의 편견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간의 신체를 극도의 사실적인 묘사로 크게 만든 Ron Mueck의 작품이 그런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서 있었다.

    작은 공간, 큰 작품. 껍질의 크기가 내용의 크기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진짜 상식을 토와다시 미술관은 보여주고 있었다.

    아오모리는 조금만 도심을 벋어나도 숲이다. 미술관을 나와 오이라세 계류로 가는 길. coldplay의 새앨범 Mylo Xyloto를 들으며 숲길을 달렸다.

    도쿄 공연을 했던 coldplay의 이전 앨범엔 일본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일본의 어떤 것이 그들을 끌어 당겼는지 알 수 없지만, 깊은 평화가 흐르는 아오모리의 자연은 도쿄에서 느꼈던 그것과는 다른 매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오이라세 계류의 원시림을 감상했다.

    ■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재앙…그리고 자연의 치유

    거대한 칼데라인 도와다코 호수에서 흐른 계류 주변으로 계수나무 뿌리와 바위와 이끼들이 제멋대로 엉켜, 말 그대로 자연(自然)을 이루고 있었다.

    계수나무 잎이 품어대는 달달한 향을 즐기며 계류를 따라 걸었다. 팸투어의 특성상 이동시간을 지켜야 함에도 걸음은 자꾸 느려졌다.

    바위든 이끼든 모두가 제 얼굴을 갖고 있어서 지겨울 틈이 없었고,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맑은 물은 조용한 음악이었다. 처음 아오모리를 찾을 때 가졌던 불안은 기억나지 않았다.

    거대한 원시림은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감싸주는 듯 했다. 쓰나미에 이은 원전폭발로 일본은 많은 것을 잃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했다.

    더 크게 짓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을 멈출수 없는 세상에서 그 절망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믿고 기댈 것은 자연밖에 없음을 아오모리는 보여주고 있었다.

    저녁 어스름을 밟으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 '루시드 폴'의 고등어를 듣는다. 나지막한 주택의 창으로 나오는 불빛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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