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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여기서 나가면 불법 체류자야"… 현대판 노예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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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여기서 나가면 불법 체류자야"… 현대판 노예제 논란

    불법체류자 양산… '외국인근로자고용법' 이직 제한 · 고용주 중심 시각 지적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품삯과 함께 숙식을 제공받는다. 한 번 계약하면 거처를 마음대로 옮길 수 없고 옮길 때에는 주인의 '허락'이 담긴 각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항상 일손이 부족한 주인은 다른 이유를 들먹이며 일꾼에게 족쇄를 채운다.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2011년 21세기에 이루어지고 있는 진짜 사건이다. 다만 일꾼은 한국인이 아닌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다. 고용의 권한이 업주에게 주어지는 현행법상 공장을 나가면 바로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이주 노동자들. 근로자가 아닌 노예가 된 사람들의 절박한 사연과 고용허가제가 가진 문제점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ㅊㅊ

     

    "샤에르 여기다 사인해."

    지난해 6월 기계로 금속을 자르던 네팔인 샤에르(38,가명)씨를 불러낸 사장님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회사는 책임지지 않으며 만약 다쳤을 경우 모든 책임은 샤에르가 진다'는 내용의 '각서'였다.

    "이런 사인 안돼요" 각서 내용을 읽어 본 아샤르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사장은 막무가내였다. 손가락을 다쳐 일을 며칠 쉬었던 샤에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장은 "여기에 사인하지 않으면 일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

    "너 여기서도 나가면 바로 불법체류자야. 너네 나라로 가고 싶어?" 세 번째 직장이었던 샤리아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각서에 사인했다.

    필리핀 이주 노동자 바토(32,가명) 씨는 업주의 괴롭힘에 못 이겨 얼마 전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자발적' 불법 체류자가 됐다. 사장의 부당한 해고에 불복한 게 화근이었다.

    지난달 바토 씨는 '기숙사에서 말다툼을 벌였다'는 이유로 공장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얼마 뒤 바토 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했고 복귀 명령도 받아냈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이틀도 버티지 못했다.

    "사장님이 작업복 가지고 혼냈어요. 계속 시비 걸었어요. 월급도 30만원만 준다고 했어요."

    회사 측은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온 바토 씨에게 "야간 수당 포함 기존 170만 원 하던 월급을 방값과 잔업 수당, 4대 보험비을 제하고 30만 원만 주겠다"고 통보했다. 이곳이 세 번째 직장이었던 바토 씨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회사를 나갔고 스스로 불법 체류자가 된 뒤 최근에 자취를 감췄다.

    일부 고용주가 이주 노동자의 이직을 3차례로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를 악용해 이주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25조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는 근로계약 해지, 임금 체불, 상해 등 특정 사유가 있을 때에만 회사를 3차례 옮길 수 있다. 3차례를 넘길 경우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이마저도 근무처를 변경할 때는 고용주의 승인을 받아야 해 많은 수의 이주 노동자가 열악한 작업장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난해 5월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2010 국제엠네스티 연례보고서'에서 고용허가제의 이주 노동자 이직 제한을 지적한 바 있다.

    엠네스티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권한이 과도하게 부여되고 있다"며 "이직횟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없애고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엄격한 근로감독제를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주 노동자의 이직을 제한하는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이주 노동자의 이직을 3차례로 제한하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25조'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지난 2007년 9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국적의 이주 노동자 5명이 청구한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8명 중 4명은 '내국인 근로자의 고용기회 보장과 중소기업의 원활한 인력수급'을 이류로 "해당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기본권은 대한민국 국민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재판관 중 다른 한 명은 '기본권은 주권자인 대한민국 국민만이 주장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라며 아예 각하 의견을 냈다.

    정부도 "이직 기회를 3차례로 제한한 조항은 이주 노동자에게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BestNocut_R]고용노동부 외국인인력정책과 관계자는 "근로계약기간의 경우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16조가 폐지됐기 때문에 고용 기간이 3년인 외국인 근로자의 이직을 1년에 한차례씩 총 3번으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요즘 같은 세상에 외국인에 불리한 게 있으면 인권 단체가 더 난리"라며 "3차례로 이직 횟수를 제한했다고 해서 이주 노동자에게 불리한 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인 이주노동자 상담소 박문순 공인노무사는 "강제 근로가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3차례로 제한하는 것은 인권과 노동권 침해"라며 "헌재의 판단은 단순히 국내 노동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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