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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주민투표'' 정치권 눈치보는 헌법재판소



법조

    ''무상급식 주민투표'' 정치권 눈치보는 헌법재판소

    적극적 판단 유보, 스스로 존재이유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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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중학교 학생들에 대한 단계적 무상급식이냐, 전면적 무상급식이냐를 놓고 주민투표까지 실시되는 등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쟁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과거에도 미디어법 처리와 행복도시 건설 등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에 대해 가처분 신청이나 권한쟁의 심판 결정을 의도적으로 미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어 향후 헌재의 권위가 서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 "헌법재판소의 전형적인 눈치보기"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당초 무상급식 대상과 범위를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시작된 주민투표는 이제 보수.진보 진영에 대한 지지 강도를 확인하는 투표로 확장됐다.

    24일 주민투표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소모적 힘겨루기가 본격화됐고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까지 나서 투표참여와 거부를 독려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등 정쟁이 심화돼 왔다.

    이 과정에서 지난 1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상대로 "주민투표 실시는 교육감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주민투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그러나 헌재는 3주가 넘도록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대한 본안 결정은 물론 가처분 효력정지에 대한 판단도 유보하고 있다.

    권한쟁의심판이 청구된 지 1주일 이상 지나서야 전체 재판관 평의를 여는 등 지금까지 두차례 평의를 가진 게 전부다.

    촉박한 시한을 감안해도 헌재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헌재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한 반면 검토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선고나 결정이 늦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서는 헌재가 정치적 부담이 큰 결정을 스스로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법학자는 "헌법재판소의 전형적인 눈치보기"라며 "불필요하게 정치적 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헌재의 한 연구관은 "주민투표를 사법부에서 중단시키기에는 정치적으로 판이 너무 커져버렸다"면서 "기존 선례라도 있었으면 좀더 발빠르게 선고 혹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관은 "권한쟁의심판 등 의견차가 첨예한 사안에 대해 법리적 판단을 빨리 내려 소모적 갈등을 줄여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의무는 맞다"며 "시간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헌재로서는 당분간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법 67조1항은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강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기관간 혹은 국가기관과 지자체긴 분쟁 해결 권한과 함께 의무를 헌재에 부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분쟁해결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신속히 해결해야한다는 의무도 포함됐다고 풀이된다.

    지난 1988년 민주화의 열망 속에 태동한 헌재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 ''정치적 판단'' ''우보전술'' 이번이 처음은 아냐

    문제는 헌재의 정치권 눈치보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

    지난 2009년 7월 일명 ''미디어법''으로 불리는 방송법과 신문법의 국회 ''날치기 통과''와 관련해 청구된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헌재는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지만 미디어법은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절차적 하자는 있지만 결과물의 효력은 인정된다는 판단으로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정치적 해석을 내렸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음주는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바람은 피웠지만 불륜은 아니다'' ''커닝은 했지만 합격은 인정된다'' 등의 비아냥도 쏟아졌다. 이후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야당의원들이 두번째로 낸 권한쟁의심판에서 헌재는 "침해된 권한을 회복시키기 위해 의장이 재논의 조치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며 기각했다. 헌재가 ''정치의 사법화''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 헌재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한다는 지적이 당장 제기됐다.

    지난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법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근거로 내세운 ''관습헌법''도 문제가 됐다.

    헌재는 당시 "해당 법률은 우리나라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변경한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학계와 시민단체로부터 ''대책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 강원도지사로 당선됐지만 항소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직무가 정지된 이광재 전 지사의 헌법소원도 결정에만 두달이 넘게 걸렸다.

    당시 이 전 지사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직무수행을 제한한 지방자치법 제111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과 직무수행제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헌재 판단이 지연되면서 63일간 강원도정이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헌재의 ''정치권 눈치보기'' 원인을 제도적 한계에서 찾는다.

    획일화된 헌법재판관 임명과 6년 중임제라는 제도가 정권 눈치보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남복현 호원대 법행정학부 교수는 "현 헌법재판관들은 당초 헌법을 전공으로 하지 않았다"며 "자신들의 상식에 입각해 사안을 판단하려 하지 헌법에 대한 치열한 인식과 이해에 바탕해 판단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남 교수는 또 "헌법재판관들의 임기가 6년 중임이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만만찮다"며 "현정권 코드에 맞춰 다음 임기를 기약하는 제도적 유혹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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