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정부가 최근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우리사회 한편에서는 빚을 지도록 조장하거나 방관하는 풍조가 자리잡고 있다. 이에 CBS는 '빚 권하는 사회'를 세 차례에 나눠서 들여다 본다. 5일은 첫번째 시간으로 경마와 카지노 등 합법화된 사행성 산업과 주변 실태를 보도한다. [편집자 주]
한때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1989년 처음 경마 도박에 빠지기 시작한 뒤 사채와 은행 대출까지 끌어쓰다 결국 2006년 20억원의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중간에 마음을 다잡기도 했지만, 언제 어디서든 결제가 가능한 휴대전화를 이용해 도박을 하게 되면서 온라인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됐다.
A씨는 "말이 12마리가 뛴다고 할 때 지금 이 말이 나올 것 싶다가 (결과가) 맞으면 마권을 못 산 게 억울해진다. 결국 도박에 계속 빠져 들게 된다"고 말했다.
CBS 취재진이 마사회가 운영하는 과천 경마장을 찾아가 보니 A씨와 같은 중독자들이 경마장을 꽉 채운 채 허름한 차림으로 경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인발권소나 무인마권발매기에서 수 차례씩 마권을 뽑아갔다.
마사회가 규정한 한 경기당 1인 한도 10만원은 전시용에 불과했다.
해당 경마장에 각 층당 많게는 10대 가량 설치된 무인발매기를 통하면 아무 제한없이 수천만원까지 마권을 살 수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화상경마장 역시 각 층마다 설치된 한 금융기관의 현금서비스 기계 앞이 경기시작 전후로 북적였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바닥에는 경마책과 찢겨진 신문지들이 널려 있었고 곳곳에서 한숨과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부터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는 한 40대 중반의 남성은 "여기 사람들 대부분 그렇게(현금 인출을 받아가면서) 도박한다"며 "한 번 찾을 때 백만원 정도씩 찾기 때문에 돈이 금방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하루만 140만원을 찾아 일곱 경기를 참여했다고 했지만, 또 현금인출기에서 10만원을 뽑아 들었다.
경마장 주변에는 도박전문 불법 대출인 일명 '꽁짓돈' 업자들이 빚을 내라고 유혹하고 있었고 근처 지하철역에는 사채업자들이 돈을 쓰라는 전단지를 뿌리고 있었다.
이들은 개인 명의로 된 휴대전화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30만원에서 50만원 정도씩 도박 참여자들에게 빌려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공공기관인 마사회와 은행, 불법업자들이 건전한 여가와 오락의 경계를 넘어 도박에 빠지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합법화한 사행산업은 카지노와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스포츠 토토까지 모두 6종류로 총 매출액은 17조 3,000억원 상당에 달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매출액의 10%가 불법도박산업의 순익이라고 가정했을 때 순익은 연간 최대 2조 1,600억에서 2조 8,800억원이다.
대표적인 사행산업으로 꼽히는 불법 카지노의 경우 경마, 경륜과 달리 도심의 불법 업소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더 많아 발생 현황 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아주대 산학협력팀에 따르면 전국의 사설 카지노를 300개로 가정했을 때 2007년 기준 카지노의 연 순익은 약 3,480억원이다.
여기에 무허가 화상 경마장 등 불법 도박 규모는 최대 88조원으로 합법적 사행산업의 서너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온라인 도박의 경우 전체 불법 도박 시장의 40~6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BestNocut_R]
정부는 지난달 말 가계부채를 절감하겠다며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면에는 도박빚을 부추기는 사회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경래 박사는 "홍콩의 경우 은행과 사업자, 경찰이 조직적으로 사행산업을 억제하는 데 힘을 합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관련 부처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금융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규제 체계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도박을 권유하는 그야말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