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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노동자는 개?…이게 국격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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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업 노동자는 개?…이게 국격입니까?"

    [변상욱의 기자수첩] 땀 흘린 노동에 대한 존중, 땀 흘리지 않고 챙긴 부(富)에 대한 부끄러움

    ㄱㄱ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1. 파업 노동자를 ''개'' 취급?


    충남 아산 유성기업의 파업·농성이 20일 째를 맞는다. 지난 주에 전해진 심각하고 충격적인 파업현장 이야기다.

    -- 파업에 참가했다가 사측이 요구하는 대로 공장으로 복귀하기로 한 조합원이 지난 1일 회사로 들어가려는데 정문에서 사측이 고용한 용역경비원들에게 가로 막혔다. 들어가겠다고 요구하자 용역경비원들은 "나는 개다"라고 세 번 복창할 것을 강요했다. 결국 이 조합원은 용역경비원들에게 에워싸여 "나는 개다"라고 세 번을 외치고 정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정문을 통과한 뒤 공장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회사 측 관리자가 "왜 여기 왔냐, 공장 밖으로 나가라"고 다시 쫓아냈다고 한다. 이걸 맨 처음 전한 사람은 파업 중인 조합원이 아니고 공장 안에서 이걸 지켜 본 직원으로 노조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알렸다. "조합원이 현장에 복귀할 때 정문을 막고 있는 용역깡패들에게 ''나는 개다''라는 말을 3번 외쳐야 들여보내준다고 한다. 우리가 무슨 개입니까?..." (인용: 민중의 소리)

    이 소식을 접한 뒤 설마... 하며 노조 지도부 관계자에게 취재한 결과 정문 밖에서 현장을 목격한 조합원들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묻는다, 대통령 말대로 이 기업이 연봉 수천만 원에 이르는 황송한 일자리라고 치자, 거기 들어가려면 개처럼 3번 짖고 들어가야 하는가? 이 나라의 국격이 여기까지인가?

    2. 귀 있는 자에게는 ''개''가 ''기도''로 들린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5장에 등장하는 ''개가 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이방인으로 차별과 편견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던 가나안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구해달라며 예수에게 애원하는데 예수는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살피러 왔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가나안 여인이 "저더러 개라고 하시면 개라 여기겠습니다. 그렇지만 개도 주인이 있어 주인이 보살피지 않습니까?"라고 되묻자 예수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답하며 크게 감동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개다''를 외치는 노동자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누군들 그런 모욕을 당하며 일터로 가려 하겠는가. 비록 연봉이 적고 가난하다고 모욕에 둔감하고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집에서 안타까이 가장만 바라보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며 가나안 여인처럼 ''그래 개가 되라면 개가 되지''라고 마음을 다잡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자존감을 겨우 꺾어 눌렀을 것이다.

    ''나는 개다''라고 울음처럼 뱉어낸 그 외침이 복음과 다르지 않고 또한 간절한 기도와 다르지 않다. 진실이 통하지 않고, 인간이 상처받고, 생명의 존엄함이 짓밟히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연약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 다만 울고 비명을 지르는 것, 그것이 기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 ''무엇에 관해 아는 것''과 ''무엇을 아는 것''은 다르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에 관해'' 아는 것과 ''노동''을 아는 것은 다르다. 식당에 가서 메뉴판보고 ''여기 있는 음식, 내가 다 예전에 본 적 있고 먹어도 봐서 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가. 그 식당 것을 그 자리에서 먹어봐야 아는 거다. 그래야 겨우 아는 것이고 직접 만들어도 봐야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측이나 정부 노동당국이나 대통령이 노동과 노동자에 관해 알만큼 알 거라 생각한다. 통계도 있고 보고서도 있으니 읽어보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관해서 아는 것''''무엇을 아는 것''은 크게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두고 겸허해지길 촉구 한다.

    유성기업에서는 최근 1년6개월 동안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제 때 잠자지 못하는 오랜 심야노동이 건강을 갉아먹었기 때문이라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몸으로 느낀다. 이런 심야노동이 우리나라 44% 기업에서 행해지고 있고, 이들 야간노동 사업장 중 40%가 유성기업처럼 1주일 단위로 주야 맞교대하는 근무형태이다. 주야간 번갈아 노동하는 건 생체리듬 교란과 파괴, 그로 인한 조산과 유산, 불면증, 수면장애, 소화기 장애, 심혈관계 질환, 정신질환까지 불러온다고 의학자들이 말한다.

    지난해 12월 행정법원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도 했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야간작업 관리지침에도 <야간작업은 연속해="" 3일을="" 넘기지="" 말="" 것,="" 야간작업자는="" 주간작업자보다="" 연간="" 쉬는="" 날이="" 더="" 많도록="" 할="" 것,="" 야간="" 근무="" 후엔="" 최소한="" 24시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할="" 것,="" 조명을="" 잘="" 맞춰줘야="" 하고,="" 적절한="" 음식을="" 제공해="" 줄=""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심야노동은 2급 발암물질을 취급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유해하다고 한다. 유성기업 노조도 별다른 요구사항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밤에는 잠 잘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살기 위해 목숨을 깎아가며 일한다는 건 얼마나 서러운 이야기인가 말이다.

    4. 국격이 부끄럽다, OECD 산업재해 사망 1위

    화학섬유연맹 측에 따르면 1급 발암물질을 실제로 다루는 사업장도 많다. 공단 내에 노조가 없는 중소영세사업장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업주가 발암물질 사용사실조차 노동자에게 알려주지 않고 안전교육도 실시하지 않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미군이 고엽제 뿌릴 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한국군이나 한국인 노무자에게 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지금도 버젓이 우리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BestNocut_R]산업재해로 3시간마다 1명이 숨지고 5분마다 1명이 다치는 OECD 산재사망 1위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한 해에 2천여 명이 죽고 9만여 명이 일터에서 다친다. 그래서 산업보건협회나 보건관리대행기관을 지정해 노동자들의 건강검진을 철저히 하라고 법에는 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부 점검과 감사원 감사 결과 이들 대행기관들이 부실부패에 빠져 노동자를 외면하고 이득만을 챙기고 있다.

    무자격 의사 고용, 보고서 허위 작성, 엉터리 진단, 허위 판정, 작업환경 부실측정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음이 밝혀졌다. 노동부 자료에 나온 부실부패비리만 100건이 넘는다. 노동부의 감독과 시정조치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노동현장의 아우성이다.

    지난해 점검한 내용을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이 함께 국회 회견장에서 발표한 것이 1주일 전인 지난 1일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도한 언론을 보니까 CBS노컷뉴스,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뉴시스, 경남도민일보, 민중의 소리, 메디컬투데이, 달랑 7곳이 전부이다. 그러니 ''영혼을 잃어간다''고 하는 것이다. 땀 흘린 노동에 대한 존중, 땀 흘리지 않고 챙긴 부(富)에 대한 부끄러움 - 이것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국격의 기반이고 공정사회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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