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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만도 못한…" 무국적 탈북자의 한숨



사회 일반

    "원숭이만도 못한…" 무국적 탈북자의 한숨

    "중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니고…" 탈북자와 차별받는 '무국적' 탈북자들

     

    50대 중반은 되어보였다. 다 빠진 앞니로 발음이 샜다. 흰머리에 왜소한 체구가 그를 더 나이들어 보이게 했다. 45살 김영철. 그는 탈북자다. 아니, 그는 북에서 내려와 국적없이 떠도는 '난민'이다.

    그는 현재 중국 동포 쉼터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영등포 노숙인 쉼터에서 그는 "한국 국적의 노숙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쫓겨났다. 한국에 온 지 1년4개월. 탈북자 김씨는 지난해 10월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서 나왔다.

    그의 사연은 이랬다.

    ◈ "정식 탈북자 아냐" 하나원서 화성 보호소로 보내져

    답답한 체제와 가난이 싫었다. 소형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남쪽의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중국 밀항 어선을 타고 동생과 함께 탈북했다. 남한에서 열심히 일해 돈도 벌고 북에 남아있는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한민국에 들어온 뒤 하나원에서 기거하던 어느 날, 직원이 그를 불렀다. 그는 김씨에게 "정식 탈북자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으로 송환하겠다"고 통보해왔다.

    탈북을 위해 중국인 아버지를 따라 국적을 중국으로 바꾼 게 화근이 됐다. 북에서만 외국인 등록증을 만들고 정작 중국에는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원에서 나온 그는 곧장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보내졌다.

    매일 밤을 "북으로 송환되면 죽는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대통령한테 편지하고 법무부 장관한테도 '북에 가면 죽으니 살려달라'"고 편지를 썼다.

    보호소 직원에게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때마다 돌아온 건 욕지거리뿐이였다.

    "쌍욕 많이 먹었죠. 묻지도 말라는 거에요. 너네 죽갔으면 죽고 우리는 왔던 길로 보내는 의무밖에는 없다 이거디요."

    절망 속에서 도움의 손길이 전해졌다. 법무부의 '허가'아래 난민인권센터는 그를 포함한 5명의 '무국적 탈북자'를 보호소에서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 출소하고 노숙자로 전락…경찰관에 "개XX야" 욕설 듣고 '인권'떠올려

    지난해 10월 화성 보호소에서 나온 뒤, 그는 의욕적으로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찾아가는 곳마다 'No' 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법무부로부터 받은 비자 때문이었다.

    그가 받은 비자는 F-1. '방문 및 동거'용이었다. 이 비자로는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중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니고… 입직도 못하니 기냥 굶어죽으라는 거나" 한국에서 자신은 '골칫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를 찾을 수 없던 그는 노숙자로 떠돌았다. 일용직 일자리를 찾아 경남 진주까지 내려갔지만 거기서도 노숙 생활을 해야 했다.

    "나도 가족을 버리고 죽을 각오하고 왔는데 살고픈 것도 없어요. 일할 수 없는 비자인데다 생활 풍습도 잘 모르고 악 밖에 남은 거 없으니 나도 모르게 싸움을 하게 되고.."

    잃을 게 없던 그는 술로 살았다. 걸핏하면 싸웠다. 지난 4일 그날도 노숙자와 함께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전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던 중 자신의 옷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려 한 노숙자와 싸움이 붙었다. 노숙자는 돌멩이를 들었고 김씨는 그의 얼굴을 피가 나게 때렸다.

    몇 분 뒤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다짜고짜 그에게 욕설을 하더니 '피의자'신분으로 수원 서부경찰서에 넘겼다.

    경찰은 그를 '개XX'라고 불렀다. '구속영장' '피의사실' '판사' 등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그에게 경찰은 "무식해서 조사 못하겠다"며 비아냥댔다. '개, 원숭이만도 못한 취급이냐'는 김씨의 푸념에 "너는 원숭이만도 못한 X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는 "내 돈을 훔치고 나를 돌로 치려던 사람 편만 드는 경찰"이 이해가지 않았다.

    "돌로 맞아도 가만히 있어야 하냐"고 묻는 그에게 경찰은 소리쳤다. "아무것도 아닌거 가지고 와서 지X을 떨고 있어. 밥 먹고 올테니까 저기 앉아서 반성하고 있어 XX야"

    그는 처음으로 '인권'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그 사람은 칼자루 쥔 법기관이고 난 백성만도 못한 사람이었지요."

    ◈ "무국적 탈북자에 한국 사회 교육이라도 받게 해야"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전국의 무국적 탈북자는 모두 5명. 모두 부모 중 한 명이 중국인이거나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자들로 북한 주민증 대신 외국인 등록증을 소지하고 있다.

    현행법상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있는 이들은 탈북자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는 "북한이탈주민이란 북한에 주소와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자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자"로 명시하고 있다.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은 "이들을 한국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해 준 만큼 한국 사회에 대한 교육 실시와 취업할 수 있는 자격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탈북자는 하나원에서 교육도 받고 정착금도 지원되지만 무국적 탈북자들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 적응도 못하고 이해도 못합니다. 이들이 더이상 방황하지 않도록 탈북자와 동등한 지원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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