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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산책길''…고라니·꿩·들꽃도 벗이 되는 길



여행/레저

    ''말의 산책길''…고라니·꿩·들꽃도 벗이 되는 길

    • 2011-03-24 10:13

    제주 숲길 홀로 걷기

    제주에서 길을 걸었습니다.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안도로 대신 숲길을 택했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곶자왈''을 걸으면서 제주의 속살을 보는듯한 신비감을 느꼈습니다. ''고라니''와 ''꿩'' 등 제주 터줏대감과도 조우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던 제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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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쪽으로 가면 올레길이 나오나요?" "어떻게 벗도 없이 혼자 왔어?"

    지난 16일 이른 점심을 먹고 서귀포시 ''저지리''에서 ''무릉2리''까지 이어지는 올레길 14-1코스 탐방에 나섰다. 출발점은 ''저지복지회관'' 길 건너편.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자 돌담으로 둘러싸인 텃밭이 딸린 아담한 민가들이 나온다.

    한 할머니에게 올레길 가는 길을 묻자, ''이거 맛있다''라면서 다짜고짜 바구니에 담겨 있던 밀감부터 건네준다.

    한 30분쯤 걸었을까? 배추밭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 씨알도 굵은 배추가 탐스럽게 자랐다. 햇볕은 따스했고 급할 것은 없었다.

    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어차피 올레길의 모토는 ''놀멍 쉬멍 걸으멍''이 아니던가.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 떨어져서 제주말 6마리가 따라온다. 백마 2마리가 끼어 있다. 모두 배가 불룩 한 것을 보니 새끼를 밴 모양이다. 이 녀석들이 찾아간 곳은 넓디넓은 목초지였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녀석들은 행복해 보였다.

    경주마를 키우는 이곳 명성목장 변창순 대표는 제주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겨울에도 풀이 자라는 제주만큼 우리나라에서 말을 키우기 좋은 곳은 없죠. 그래서 전국 말 생산의 80%를 제주가 맡고 있어요. 세계 최초로 말을 대상으로 한 특별법인 ''말 산업 육성법''이 공포돼 기대가 큽니다."

    14-1코스는 길이 그리 험하지 않은데다 차량이 다니는 도로와도 떨어진 숲길이 대부분이어서 아이와 함께 걸어도 좋다. 특히 말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듯하다.

    이제 문도지 오름(산봉우리의 제주도 방언)을 오를 차례. 이곳도 말들의 산책코스인 듯 바닥에는 말똥들이 즐비하다. 정상까지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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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더니 강한 바람과 함께 제법 굵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멀리 한라산과 봉긋봉긋 솟은 사방의 오름들. 발아래에는 드넓게 펼쳐진 곶자왈(용암이 굳은 땅 위에 형성된 독특한 숲) 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만, 흐려진 날씨 탓에 시야가 선명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웠다.

    지난해 4월 개장한 14-1코스는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과 오름을 체험할 수 있는 한라산 중산간 코스인 만큼 무성한 숲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식당이나 상점이 없어 도시락 등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 코스 가운데 천연 원시림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동물농장 숲길 입구에는 올레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고문이 있다.

    ''휴대전화가 잘 연결되지 않는 깊은 숲이니 절대 경로를 이탈하지 마세요. 식물에 손대지 마세요. 독초도 많습니다.''

    한 사람이 걸으면 적당할 듯한 숲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바닥에는 용암이 굳으면서 생긴 작은 돌들이 이리저리 뒹군다. 초봄인데도 수풀이 제법 울창하다. 바위에는 이끼가 가득하다.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봤더니 촉감이 좋다.

    숲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간이 새소리가 들릴 뿐 고요했다. 거센 바람도 숲 속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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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나무도 서 있고 나도 서 있다. 나무도 숨 쉬고 나도 숨 쉰다. 나무도 소리를 내지 않고 나도 말이 없다.

    그럼 나무와 나의 차이는? 식물과 동물? 이 깊은 숲 속에서 그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뭇가지에는 파란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숲은 또 한 번의 화려한 부활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잔디가 깔린 넓은 흙길이 나왔다.

    녹차 밭인 ''오설록''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이다. 가지런히 정돈된 탁트인 녹차 밭에서는 일꾼 2명이 가지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숲 속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강한 바람이 다시 옷 속을 파고들었다. 오후 5시. 해는 기울고 갈 길은 아직 멀었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청수곶자왈에 들어섰다. 일행이 없었던 탓에 은근히 겁이 났다. ''과연 해가 지기 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만일 해가 져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어쩌지? 그냥 오설록으로 돌아가 콜택시를 부를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갈 데까지 가보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온 신경은 다리에 집중됐다. 한가롭게 주변의 경치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목표는 하나. 최대한 빨리 걸어서 해 떨어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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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였다. 저 앞에 고라니 한 마리가 수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인기척은 느끼지 못한 듯 움직임이 여유롭다. 카메라를 꺼내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런데 이 녀석은 나를 놀라게 하려는 듯 내 앞을 지나 반대편 수풀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지만 화면은 흔들렸고 몸통은 반만 찍혔다.

    아쉬움을 달래며 다시 길을 걷는데 이번에는 커다란 꿩 한 마리가 발소리에 놀라 ''푸드덕''하며 날아올랐다. 어둑어둑한 저녁, 숲길에서 그 녀석만큼 나도 놀랐다.

    야생동식물의 서식처이자 천연원시림인 곶자왈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가 시급한 이유를 절감했다.

    제주하면 먼저 바다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제주는 천의 얼굴을 가진 곳이다. 제주도 중산간지대를 걸으며 살아 숨 쉬는 제주의 ''식생''과 ''생태''를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도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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