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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의 다니구치 지로 "등산은 못해요"



책/학술

    ''신들의 봉우리''의 다니구치 지로 "등산은 못해요"

    산악인 엄홍길 씨와 대담…엄 씨 "실제 에베레스트 옮겨놓은 듯 생생"

     

    산악만화 ''신들의 봉우리''의 사실주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63)가 지난 16일 방한했다. 2010부천국제만화축제 및 국제만화가대회 참석 차 한국에 온 그는 이날 산악인 엄홍길(50) 씨와 특별 대담회를 가졌다. ''13년 차이''가 나는 이들은 각자 활동분야는 다르지만 ''산''을 매개체로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음양사'' 시리즈로 유명한 유메마쿠라 바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신들의 봉우리''는 산악만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림에선 에베레스트의 고도와 웅장함이 그대로 느껴지고, 8천미터급 고산을 경쟁적으로 등반하는 산악인들의 심리 묘사도 섬세하다. 빠른 장면 전환으로 긴박감을 조성하고 미스터리 기법을 도입해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독자들은 "실제 고산을 오른 느낌이 들어 몸이 힘들다"고 하소연할 정도.

    세계 최초로 8천미터 16좌를 완등한 엄홍길 씨는 "그림이 생동감있고 사실적이다. 실제 에베레스트를 책 속에 옮겨놓은 것 같다. 한 편의 히말라야 다큐멘터리를 본 느낌"이라고 말했다. [BestNocut_R]

    그러자 다니구치 지로는 "(내 그림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세계다. 산악인이 내 만화를 보고 ''엉터리''라고 지적할까봐 걱정했는데 칭찬해줘서 고맙다"며 "산악인이 어떤 생각으로 산에 오르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산에 오르는 장면을 리얼하고 생동감있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나는 등산에는 취미가 없다. 에베레스트같은 고산 등반 경험은 전혀 없고, 고향에 있는 2천미터 높이 산을 오른 게 전부"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신들의 봉우리''는 1924년 영국 히말라야 원정대에 참가해 에베레스트 정상을 200여 미터 남기고 실종된 조지 맬러리의 종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축으로 가공인물인 전설적 산악인 하부 조지의 일대기를 그렸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명언을 남긴 조지 맬러리의 시신은 1999년 발견됐지만 등정 성공 여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두 사람은 등반과 만화 그리는 작업이 결과물을 얻기까지 끊임없이 인내하고 끈기가 필요하다는 점에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엄 씨는 "등반대 대장은 대원들의 생명권을 갖고 있다. 대장의 판단에 따라 등반의 성패는 물론 대원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고독하고 외롭지만 극복해야 한다"며 "만화가도 매순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지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니구치 지로는 "만화 그리는 작업은 실패해도 목숨을 잃을 걱정은 없지만 등반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고독한 작업"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이어 그는 "나같은 경우 편집 1명, 그림 4명, 배경그림 1명 등 6명이 공동작업을 한다. 이들에 대한 생명권은 없지만 생활은 보장해줘야 한다"며 웃었다.

    엄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등반으로 쇠핀이 박힌 다리를 이끌고 1999년 안나푸르나(해발 8091m) 정상을 정복한 순간을 꼽았다. "1998년 안나푸르나에 네 번째 도전할 때였죠. 정상 500m를 앞두고 로프에 발이 걸려서 발목이 돌아갔어요. 발목을 억지로 끼워맞춘 후 2박3일 사투 끝에 베이스캠프로 기적적으로 생환했죠. 당시 제 발목을 수술했던 의사는 ''앞으로 뛰는 것도 힘들다''고 했어요. ''포기할까'' 했는데 퇴원하고 산을 본 순간 심장이 두근댔어요. 결국 1999년 수술 후 10개월 만에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죠."

    이에 다니구치 지로는 "내 작품 ''개를 기르다''의 마지막 장 ''약속의 땅''도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등반 중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산악인이 나오는데, ''산을 오르는 사람은 산의 사랑을 받아서 다시 돌아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화답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엄 씨는 "20년간 산에 젊음과 열정을 바쳤다. 8천미터 16좌를 완등한 건 동료들의 땀과 희생 덕분이다. 나를 받아준 자연과 신에 무한히 감사한다"며 "2년 전 ''엄홍길 휴면재단''을 세워 히말라야 오지마을 아이들을 위해 교육,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산에서 내려와 인생이라는 8천미터 17좌를 넘는 중"이라고 말했다.

    "작품을 그리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지금보다 더 새로운 건 없을까'' 고민한다"는 다니구치 지로는 "만화가라는 직업은 정년이 없다. 죽을 때까지 만화를 그리면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니구치 지로는 ''신들의 봉우리''로 2005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화상을 받았고, ''열네 살'', ''아버지'', ''개를 기르다'' 등 10여종이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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