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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일본인 집단 이주? 실체없는 소문만 무성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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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집단 이주하기 위해 마을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다시 번지고 있다. 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불안한 일본인들이 외국으로의 이주를 구상하고 있고 가까운 우리나라가 그 대상지역으로 거론되는 것.

결론적으로 한국이나 동남아시아로 거주지나 업무용 사무실 또는 기업 전체를 옮기고 싶어 하는 움직임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을 새로운 사업 종목으로 보고 중개업자나 컨설팅 회사들이 여기저기 찔러보긴 하지만 실제로 진척되는 것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재패니스 타운? 아직은 피싱일 뿐

물망에 떠오르는 곳은 일본을 오가기 좋은 인천공항 주변과 남해안 지역. 경기도에서는 파주 탄현 통일동산 쪽에서 물색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남해안 지역에서 일찍부터 ''재패니스타운'' 이야기가 나온 곳은 부산 해운대 지역. 최근 일본인의 해외 체류를 지원하는 일본 공익재단 한국 지부가 해운대에 처음 설립되면서 소문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막상 부산지역 일본인 부동산 취득 건수는 분기당 한 자릿수로 변화가 없다.

2011년 일본인이 신규 취득한 부동산 건수는 총 25건, 2010년 18건과 큰 차이가 없다. 누적 취득 건수도 2008년 165건, 2009년 153, 2010년에는 154건, 2011년 173건으로 미국(925건), 중국(343건)보다 일본이 훨씬 못하다고 지역언론인 국제신문이 보도하고 있다.

기타 남해안 지역으로는 경남 산청군, 남해군이 일본인 집단이주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소문이 나돌았다.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정부지원을 받아 2004년부터 도시민의 농촌이주를 끌어들이기 위해 농촌전원마을을 짓고 있으나 오는 사람이 없어 실패작이 되었다. 이를 만회하려고 외국인 마을을 꾸미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됐고 경남 남해군이 독일인 마을과 미국인 마을을 만들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이어 추진되는 것이 일본인 마을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로 이민 갔던 교포들이 돌아와 ''독일인 교포 마을''이 됐고, ''미국인 교포 마을''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인 마을 역시 일본 교포들을 대상으로 추진 중이다. 산청군은 주민들의 반일감정 섞인 반대가 일자 주춤하고 발을 뺀 상태다.

경기도 지역이나 부산 해운대 지역의 아파트나 빌라 등도 대부분은 일본 교포들이 매입한 것이어서 일본인 집단거주지는 아직은 사실무근인 상태이다. 일본 언론들이 교포 등 일본인 집단이주라고 오보를 낸 탓도 있고, 고급 아파트를 판매하기 위해 건설사나 분양사들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탓으로 파악된다. 일본인들이 사기 시작하면 값이 뛰니 미리 사두라고 고객들을 끌어들이려는 마케팅인 것이다. 앞으로 혹시 원전 사태를 겪은 어린 세대나 새로 태어나는 세대에서 방사선 감염에 따른 이상 징후가 발생해 사회적 충격이 커진다면 모를까 아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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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노동자 해외 이주의 역사

일본인들은 외국에 나가 사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집단주의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곳곳에 일본인들이 많이 산다. 이는 19세기에 이뤄진 아시아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해외 이주 붐에 의한 것이다.

일본 농민들은 짬짬이 도시로 나가 노동을 해 빈곤한 살림을 보충하며 살아왔다. 이 습성이 해외 이주노동자로 확대된 셈이다. 1860년대 경부터 아시아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시작은 중국인들의 하와이 이주이다. 이어서 일본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갔고 다음은 조선 노동자, 필리핀 노동자 등이었다.

미국 농장주들과 기업주들은 아시아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 간 경쟁을 붙이는 방법을 썼다. 중국인 노동자들의 입김이 세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인 노동자들을 불러들였고 일본인 노동자가 파업 등으로 권익 강화에 나서자 조선인 노동자를 불러 들였다.

결국 일본은 총감부, 총독부를 통해 하와이로 가려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대신 조선 노동자들을 하와이 대신 멕시코로 보내는 방법을 썼다. 몰려드는 한국인 노동자 탓에 일본인 노동자의 임금이 깎이거나 자리를 잃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결국 일본인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개발 붐으로 대규모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임금도 높은 싼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로 옮겨갔다. 연일 전쟁을 치르는 유럽으로는 이주가 많지 않았다. 일본 노동자들은 대신 안전하고 유럽의 전쟁 덕분에 최대 호황을 누리는 남아메리카로 향했다. 브라질과 페루 등이 일본 노동자가 진출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남미 북미에 일본인 거주지역이 생기고 이곳들이 일본의 전자 제품, 스시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발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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