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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배기 딸, 68년 만에 만나는 89세 할아버지



통일/북한

    세 살배기 딸, 68년 만에 만나는 89세 할아버지

    • 2018-08-15 06:05

    황우석 옹, 68년만에 부녀상봉
    "강산이 일곱번 변한 시간, 딸 얼굴도 잊혀져"
    이수남 씨, 인민군에 끌려간 형 68년만에 만나
    2세·6세 동생 보는 박기동 씨는 "부모님 기일 묻고 싶어"

    이번 상봉에서 동생들을 만나게 된 박기동(82)씨가 선물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오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68년 만에 피붙이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에 두고온 딸은 71세의 할머니가, 인민군에 끌려갔던 큰형은 87세의 할아버지가 돼버렸다.

    ◇"3개월 뒤에 돌아올 줄 알았는데 68년이 지났어"

    황우석(89)씨는 68년 만에 세살 때 헤어졌던 딸을 만나게 됐다. (사진=공동취재단)

     

    1남3녀 중 장남이었던 황우석(89)씨는 국군이 1.4후퇴를 했을 당시 중공군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자신의 세 살배기 딸은 부모님께 맡겨둔 채 '딱 3개월'만 피난한 뒤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68년이 됐다. 3살짜리가 68년이 되니까 71세가 됐다"는 게 황씨의 말이다.

    황씨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자신의 딸을 만나게 됐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 아내, 여동생은 이미 모두 사망한 상태. 그는 "내 혈육이라고는 걔 하나 살았다. 이번에 외손녀인 39세 된 자기 딸을 데리고 온다고 한다"고 말했다.

    딸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미안함이다. 황씨는 "집안에 남자라곤 아버님 한 분 계셨는데 일찍 돌아가셨더라. 고생을 많이 했을 거고, 외로웠을 거고, 사실 참 미안하다"고 말헀다.

    그는 딸에게 "지금까지 살아줘서, 살아서 만나게 돼서 고맙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해주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딸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걱정이다. 황씨는 "세 살적의 그건 기억도 없다. 이번에 가서 이름보고 찾아야 한다. 강산이 7번 변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쉬움도 크다. 황씨는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게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13만명 넘게 접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5만 여명이 신청을 해놓고 상봉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황씨는 "10년전 만 됐어도 여동생들도 다 만날 수 있었다. 2016년도에 세상을 떠난 여동생도 있다"며 아쉬워했다.

    ◇"자상했던 큰형님, 남산골 여우 기억하실까"

    당시 9살이었던 이수남(77)씨는 인민군에 끌려갔던 10살 터울의 형을 만난다. 이씨가 간직하고 있는 가족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이수남(77)씨는 10살 터울의 큰형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생사확인을 통해 68년만에 알게 되니 거짓말 같았다"며 "처음에는 진짜인가 싶어서 이웃, 친척에게도 이야기도 안했다"고 했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이씨는 "만나서 확인을 해봐야 이런 감정이 가시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10살 많은 큰형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큰형이 잡혀간 뒤, 매일 새벽 어머니는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다놓고 기도를 했다. 이씨는 "그렇게 10년, 20년 하시니 연로하고 기력이 없어지셔서 포기하고 체념하고 사시더라"고 회상했다.

    다시 만나게 될 큰형은 차분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어린시절 남산자락에 살았던 이씨는 큰형과 남산에 올라가다 여우를 만났던 추억을 돌이켰다.

    그는 "여우 두마리를 보고 놀라서 도망을 가려했는데, 형님이 지나가던 어른들을 붙잡아 '여기 여우가 있다'고 말해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10살 남짓의 아이였던 이씨는 이제 연로한 형을 걱정하고 있다. 이씨는 "우리도 늙어가지만은 (큰형이) 한국나이로 87세니 상상이 잘 안된다"며 "건강이 좋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가족은 형님 한분을 잃었지만, 형님은 모든 가족을 다 잃어버리고 사셨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상봉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착잡한 마음도 든다. 이씨는 "이산가족들이 나이가 많다"며 "영구적으로 상설면회소라도 생긴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말했다.

    ◇"부모님 기일과 묘소가 가장 궁금하다"

    박기동(83)씨는 6.25 전쟁 당시 6세였던 여동생과 2세였던 남동생을 만난다. 박씨는 "나는 중학생 때였지만, 동생들은 형이나 오빠를 잘 모를 거다"라고 말했다.

    고향인 강화도를 떠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던 박씨는 가족들이 끌려갔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직접 보지는 못했다.

    살아계시면 100세가 넘으셨을 부모님, 박씨는 동생들이라도 살아있다는 것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가족들을 만나면 부모님의 기일을 묻고 싶다고 한다. 그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니까. 또 묘지는 어디있는지 가장 궁금하다"고 말했다.

    요즘 설레서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박씨는 치약, 칫솔을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에 자신도 입어보지 못한 고가의 겨울 점퍼를 선물로 줄 생각이다.

    박씨는 "나도 15만원짜리 이상은 안사봤는데, 상표도 유명상표고 하니까 겨울에 추울 때 따뜻하게 입었으면 해서 산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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