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용산참사 피해자가 본 '공동정범'은 생각보다 "약했다"



영화

    용산참사 피해자가 본 '공동정범'은 생각보다 "약했다"

    [현장] 김창수-이충연 씨와 함께 한 영화 '공동정범' GV

    지난 1월 25일 개봉한 영화 '공동정범' (사진=시네마달 제공)

     

    지난 1월 25일 '공동정범'(감독 김일란·이혁상)이 개봉했다. '두 개의 문'(2012) 이후 6년 만이다. 두 작품 모두 2009년 1월 20일 도심 재개발 정책에 반대하며 투쟁 중인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죽은 '용산참사'를 다뤘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분명히 다르다.

    전작이 사건을 작전에 투입됐던 경찰특공대원의 시선으로 재구성해 거대한 '국가폭력'에서 놓쳤던 빈틈을 보게 했다면, '공동정범'은 망루 투쟁에 함께 하다 공동정범이 된 다섯 명의 용산참사 피해자들에 카메라를 댔다.

    성남시 단대동 철거민 김창수, 서울 신계동 철거민 김주환, 서울 순화동 철거민 지석준, 서울 상도4동 철거민 천주석, 서울 용산4구역 철거민 이충연 5명이 옥살이를 마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그려졌다.

    '공동정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흔히 생각하는 '피해자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치지 못하는 감정적 골을 솔직히 드러내고, 원망하고, 아프다 소리친다. '낯선' 피해자들이 정면에 두드러지는 불편함이 있어서일까. 7만 3천여 명의 관객을 모은 '두 개의 문'과 달리 '공동정범'은 현재까지 1만 관객을 조금 넘겼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공동정범'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김일란-이혁상 감독과 사회자인 변영주 감독은 물론 영화의 주인공인 김창수, 이충연 씨가 함께하는 특별한 자리여서인지, 적지 않은 관객들이 자리를 채워주었다.

    ◇ 선입견 지워주는 영화… 감독들 신뢰해 참여

    가장 첫 번째 질문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영화를 당사자들이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김창수 씨는 "사실 굉장히 긴장됐다. 다른 분들이 어떤 폭로를 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게 궁금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저만 보게 되더라"라고 말해 주변을 폭소케 했다.

    김창수 씨는 "두 번, 세 번 보니 다른 게 보이는데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다. 얘기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영화는) 약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용산참사 피해자들 집담회에서는 물병이 날아다닐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는 것이 그의 전언.

    하지만 이내 "제가 느꼈던 건 약하다는 거였지만, 다른 분들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걸 보고 이 영화가 사람들 마음을 열게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수감 생활 당시 '두 개의 문' 소식을 빠짐없이 스크랩했던 이충연 씨는 제작진에 대한 '높은 신뢰'가 영화 참여의 바탕이었다고 밝혔다. "너무 외롭고 힘들 때 또 싸울 수 있는 희망과 힘을 만들어준 계기"였다고.

    이충연 씨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저도 제 모습만 보이더라"고 말했다. "너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영화 보고서 다른 동지들이 먼저 다가와서 얘기해 주셔서 어리둥절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왼쪽부터 변영주 감독, 김일란 감독, 김창수 씨, 이충연 씨, 이혁상 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그는 "제 옆, 뒤에 앉은 관객이 (제 장면을 보고) 아휴~ 그러시는 거다. 그 후로는 영화관 갈 생각을 안 했다. 너무 힘들어서"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영화가 너무 (흥행이) 안 되다 보니까 영화를 봐야 저도 영화 뭐가 좋다고 권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중에야) 몇 번 더 봤다"고 덧붙였다.

    김창수 씨는 영화를 보고 난 관객에게 들은 기억에 남는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키가 굉장히 큰 줄 알았다는 얘기였다. 김창수 씨는 "도심의 테러리스트들은 왠지 키가 클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저희는 고집, 자존심 이런 쓸데없는 것들만 큰데 이미지가 덧씌워진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똑같이 가정생활 하면서 가계를 일궜던 너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재개발, 재건축하는 지역에 살았던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뿐이다. 이 영화가 어떤 선입견을 많이 지울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용산참사 구속동지회 설립에 반대하는 등 극중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립하는 장면이 잦았던 이충연 씨는 아쉬운 점을 설명했다. 그는 "제가 삭제하고 싶은 장면을 삭제하면 영화가 안 되니까 그런 요구를 하진 않았다. 다시 영화를 찍는다면 제 좋은 모습도 조금 넣었으면 한다"고 해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 이혁상 감독이 선택한 '인상적인 장면'은

    '공동정범'은 연출자에게도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주인공들이 갈등하고 반목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다. "저희가 가만히 있자니 갈등이 심화될 수 있고, 말을 잘못 옮기면 이간질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는 김 감독의 말에서 고민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다.

    "계속 이런 갈등을 다룰 거라고 말했지만 막상 화면으로 보면 느낌이 다르잖아요. 같이 보는데 계속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천주석 씨는 영화 보면서 내내 울어서 창수 씨가 등을 토닥거리기도 했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싶었죠. 충연 씨는 고개를 숙이고 영화를 잘 안 보는 것 같아 불안했어요. 다들 감독들 정말 고생했다는 얘기를 제일 많이 해 주셔서, 그 말 한마디에 약간 안심이 됐어요."

    이 감독은 영화에 나온 장면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김창수, 이충연 씨의 장면을 꼽았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이충연 씨의 장면이 첫 번째였다. 제작진은 확보한 모든 자료를 프레임별로 확인한 끝에 1초가량의 이 짧은 장면을 세상에 내보였다. 이충연 씨 본인조차도 '공동정범'을 통해 처음 본 장면이었다.

    이 감독은 "저희도 굉장히 우연한 기회에 찾아냈다. 누가 실려 가는 장면인데 (화면을) 당기다(확대하다) 보니 이충연 위원장이더라"라며 "꿈처럼 짧은 순간 등장했는데, 그 모습을 찾은 것에 굉장히 반가웠다"고 부연했다.

    이 감독은 또한 김창수 씨가 딸과 통화하는 장면을 인상적인 장면으로 소개했다. 이 감독은 "따님과 전화하는 장면을 보면 포커스도 다 나가 있고 흔들려 있다. 사실 그런 통화를 하실 줄 몰랐다. 이 영화에 (감정의) 여러 높낮이가 있겠지만 (그 장면이) 감정적인 클라이맥스가 아니었을까"라고 밝혔다.

    ◇ 피해자들을 '치유'케 한 '공동정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공동정범'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이충연 씨는 '공동정범' 감독들에게 특히 감사를 표했다. 그는 "저희가 용산 피해자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치유사업을 했는데 결과가 상당히 안 좋았다"며 "그런데 다큐를 찍으면서 영화가 주는 감동을 느꼈다. 어떻게 영화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놀랐다. 감독님들한테 정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는 참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다섯 분의 주인공도 이 다큐가 우리 싸움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실 것"이라고 전했다.

    참사 이후 9년이 흐른 지금, 진상규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김창수 씨는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지난해 12월 말에 저희(용산참사 철거민 25명)가 사면 복권됐다. (문제 해결) 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3월부터 경찰청 내부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데 내부 조직이다 보니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그래도 처음으로 다뤄지는 거라 기대가 안 될 수가 없다"며 "지금은 저희끼리 뭉쳐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진상규명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지켜봐 주신다면 바른길로 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용산에 관심이 있던 분들, 영화를 보고 관심 생기신 분들을 보니까 너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충연 씨)

    "영화가 정말 보기 힘든 영화라는 말을 들었어요. 재밌어도 재밌다고 말을 잘 못 하겠다고. 재밌다고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봐 주러 오시는 게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김창수 씨)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