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그 아이들' 다녀간 뒤 마을이 달라졌다



대전

    '그 아이들' 다녀간 뒤 마을이 달라졌다

    마을 우범지대 바꾸는 학교 밖 청소년들

    대전 문화동의 한 골목길에서 유성구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과 반석고 봉사동아리 '히야신스' 소속 청소년들이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이야, 몰라보겠네."

    대전 문화동의 한 골목길. 마을 사람들의 눈이 한곳에 닿았다.

    주택가를 따라 이어진 담장은 바닷속 세상으로 변신이 한창이었다.

    "이건 스펀지밥이고 이건 스펀지밥 친구 뚱이, 저건 인어공주…."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스펀지밥'이 담장 한 귀퉁이를 차지하자 마을 어린이들은 눈을 떼질 못했다. 밀짚모자를 쓴 한울(15)이 작품이다. 옆에선 고래가 유유히 헤엄을 쳤다. 손이 담장을 스칠 때마다 물고기 떼며 산호초들도 제 색깔을 찾아갔다.

     

    페인트와 붓을 들고 담장에 옹기종기 모인 이들은 열다섯살에서 열여덟살의 청소년들. 이번이 4번째 벽화봉사라는 진성(17)이는 "이번이 제일 힘들어요. 너무 더워서"라며 혀를 내밀었다. 그래도 "우와 잘 그렸다" 한마디면 언제 힘들었느냐는 듯 벽화에 열중하곤 했다.

    곳곳이 갈라지고 벗겨진, 본래의 회색 시멘트 담벼락의 모습을 떠올리긴 힘들었다. 어둡고 외져 우범지대로 꼽히던 골목이었다. 인근 학교 학생들이 비행과 탈선장소로도 찾아들곤 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더위도 잊은 채 담장 속 풍경에 빠져든 이유다. 인근 제과점에서는 "고생이 많다"며 아이스크림을 내왔다. 이따금 담배연기만 피어오르던 이곳에 오랜만에 사람들 간의 대화가, 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 김경희(54·여) 씨는 "어른들도 손대지 못하던 곳을 아이들이 바꾸니까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유성구 낙후지역으로 꼽힌 궁동 '헌 동네', 다문화여성 쉼터, 학교폭력 피해학생 치유기관인 해맑음센터에서도 벽화를 그렸다.

     

    "칭찬받으니까 좋은데... 어색하기도 해요."

    정작 아이들은 어른들의 반응이 아직도 얼떨떨한 눈치다.

    아이들을 부르는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은 '학교 밖 청소년'.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원치 않게 학교를 떠난 아이들마저 사회에서는 편견과 냉대가 더 익숙했다고 털어놨다. 벽화가 그려지기 전 소외되던 곳들과, 사실 닮은 점이 있었다.

    갈피를 못 잡던 아이들은 유성구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을 통해 지난해 처음 붓을 잡았다. 한길(18)이도 그 중 하나였다.

    "저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벽화봉사를 놓지 않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한길이는 "다 완성되면 그냥… 저한테 한 번 칭찬해주고 싶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아이들이 그린 벽화.

     

    반석고 봉사동아리 '히야신스'에서 활동하는 주희(17·여)는 우연한 계기로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벽화봉사를 하게 됐다.

    "사실 친구들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었어요. 사고를 쳐서 학교를 그만뒀나 생각도 하고… 그런데 같이 해보니까 굉장히 자상하고, 다정하고, 착한 거 있죠."

    주희는 우연히 같이 그린 벽화가 학교와 학교 밖을 나누던 벽을 허물어줬다고 했다.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친구들을 이해하게 되고… 저도 자란 것 같아요."

    아이들이 벽화를 통해 배우고 꿈꾸는 것은 어쩌면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담장 없는 세상'은 아닐까. 어른들이 방치한 공간을 바꾸고 온기를 더해가는 이 청소년들의 다음 행선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