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방송 : FM 98.1 (14:05~15:55) ■ 진행 : 김미화 ■ 게스트 : 고 박희석 씨의 아내
◇ 김미화> 촬영을 위해 타고 가던 버스가 전복 되면서 목숨을 잃었던 보조출연자에 대해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승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판을 하지 않고 보조출연자에 대한 산재가 승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힘들었던 산재 승인 과정, 그리고 여전히 열악한 보조출연자들의 상황. 고 박희석 씨의 아내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유족> 네, 안녕하세요.
◇ 김미화> 촬영을 위해서 타고 가던 버스사고가 난 게 지난 4월 18일. 산재 승인에 5개월이나 걸렸네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요?
◆ 유족> 지금까지 보조출연자는 근로자로 인정을 못 받아서 계속 불승인을 떨어뜨렸거든요. 근로복지공단에서.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 김미화> 그럼 이번에 어떻게 인정받으셨어요?
◆ 유족>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부에서 고정된 사고방식이었거든요. 보조출연자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틀을 깨는데 가장 어려웠고요. 보조출연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용주에 의해서 고용형태가 결정되고 근로를 제공한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는 점. 그런 점들은 요목조목 반박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근로복지공단에서 이번 사안을 취급하시는 분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확한 판단을 하고자 이리저리 발로 뛰는 모습을 봤고요. 그래서 이번에 승인을 받은 것 같고. 개인적으로 근로복지공단 본부의 보험 적용부 차장님께서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너무 감사드려요.
◇ 김미화> 도움 없이는 승인 나는 게 어렵거든요. 그동안은 보조출연자들이 사고를 당해도 재판 없이는 산재승인이 안 됐었다면서요?
◆ 유족> 네, 그렇습니다.
◇ 김미화> 과거 판례를 들춰보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셨죠?
◆ 유족> 사고 후 한 달 동안 제가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막막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너무 속상한 가운데 자료라는 자료는 다 찾아보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2008년도 똑같은 사고를 보게 됐어요. 거기서는 사망이 아니라 사고였고 개별로 소송을 해서 이긴 사건이 있었어요. 그걸 제가 알고 담당 변호사를 찾아가서 의뢰를 했습니다.
◇ 김미화> 함께 타고 가다 사고당한 30여 명은 여전히 산재신청을 안 하셨다고 하는데 왜 그러셨어요?
◆ 유족> 참 그게 말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인데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예전에도 그렇고. 사고 현장이나 지금 방송 현장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게 뭐냐면 다치거나 사고 나면 누구하나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고요.
◇ 김미화> 왜요?
◆ 유족> 예를 들어 제가 만약 다쳐서 산재처리를 하면 위에서 일을 안 주는 거예요. 이와 비슷한 사례도 많이 있었고. 산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 보험으로 처리하고 비용을 받는 게 여태까지 이뤄져왔던 것 같아요.
◇ 김미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네요.
◆ 유족> 네. 산재를 하면 당연히 일을 안 주고. 이번에 같이 사고 당한 분들도 산재가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산재가 안 되냐고. 어느 용역 업체인지 말씀을 못 드리지만, 산재가 안 된다 길래 누구 씨는 어떤 이유로 산재가 안 되냐고 물었어요. 저는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라 알고 봤더니 현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산재를 하면 큰 일 나는 상황이에요.
◇ 김미화> 눈치 보이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여태까지 그런 관행이 지속돼왔군요.
◆ 유족> 과거 영화에서 보면 노예시장에서 이뤄지는 그런 장면들을 방송국 별관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노동을 제공하면 노동자는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잖습니까.
◇ 김미화> 실제로 박희석 씨 아내분은 보조출연자의 여건이나 환경을 보시니 어때요?
◆ 유족> 아까 말씀드렸지만 노예시장을 방불케 했고요. 열악한 근로 환경을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도 나중에 감당해야 할 불이익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 김미화> 실제로 보조출연자들이 길거리에서 밥 먹는 거 비일비재하고 옷 갈아 입을 데도 없고 씻을 데도 없고. 그렇죠.
◆ 유족> 하다못해 화장실도 없어요. 60년동안 방송사 관계 시설 중에 보조출연자 대기실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말 다했죠.
◇ 김미화> 사과나 보상은 어디까지 이뤄졌나요?
◆ 유족> 보상은 받은 적이 없고요, 배상입니다. 손해배상. 제가 4월18일 사고 이후에 5월20일부터 방송사 앞에서 105일간 일인시위를 하게 됐습니다. 그때 돈 때문에 아이를 앞세워 시위한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시위를 했는데... 제가 아이 얘기만 나오면 제가 눈물이 나서...
저는 모든 일들이 제 뜻대로 되지 않잖아요. 사고도 관계 방송사들이 시간 내줘서 된 상황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사고인데. 관계자분들도 무슨 죄가 있겠어요. 하지만 사후처리부분에 대해서 저는 최선을 다해주실 것이라 믿고 사고 당시부터 시위하는 날까지 기다려왔었던 거고요. 사과는 없었고 이튿날 빈소에 찾아온 게 전부고요. 언론플레이만 했던 거예요. 사력을 다해서 사후처리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빈소에 이튿날 찾아온 게 전부였습니다. [BestNocut_R]
그래서 제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고 시위를 했던 거고. 마지막 자막 방송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애도 자막을 올려준다고 했을 때 제가 거부를 했어요. 그런 거 필요없다. 시위를 하게 된 동기를 올려달라고 저는 싸운 거거든요. 모르시는 분들은 보상과 사후처리 다해줬고, 자막까지 해줬는데 유족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냐고 했거든요.
저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자. 어느 누구 하나 이런 상황이 안타깝습니다라고 말 한 분이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언론에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자막만 올렸지 유족을 찾아온 분은 한 분도 없으셨어요. 시위를 할 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어요. 거대 방송사를 상대로 힘 없는 서민이 싸운다는 건 너무 힘든 상황인 건 알았는데, 각오하고 싸웠거든요. 끝까지 지쳐 쓰러질 때까지만 하겠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고 했는데. 어쨌든 주위분들이 신경을 써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마지막 방송에 자막을 얻었습니다.
◇ 김미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 유족> 저희도 아빠가 이런 사고로 큰 일을 겪게 됐는데 같은 환경에서 일 하는분들이 저같은 일을 당하시지 않았으면 좋겠고.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모든 부분이 근로자들을 위해서 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번 산재 같은 경우도 저를 초석으로 삼아서 앞으로 어려운 환경속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사고가 발생해도 당당하게 권리 주장하고,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미화> 마음으로부터 위로를 보내고 힘 내십시오. 오늘 고맙습니다.
◆ 유족> 네, 고맙습니다.
◇ 김미화> 촬영을 위해서 이동하다 교통사고를 당하셨던 보조출연자 유족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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