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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견통령, 대령… 막 나가는 언론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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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견통령, 대령… 막 나가는 언론 열전

    [변상욱의 기자수첩]

    cc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모 신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잘못 표기해 화제가 됐다. 2011년 2월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오기한 신문 보도가 있었다. 기사를 쓰다보면 관성에 의해 이명박 대통령은 무의식적으로 단숨에 써내려가는 단어이다. 그런데 앞에 ''전(前)'' 이란 글자를 굳이 왜 붙이게 됐을까?

    그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최근에 전직 대통령 이야기를 자주 쓰다 보니 이어진 실수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맞서는 박근혜 위원장의 그늘 속에서 임기 내내 기를 못 펴고 살아온 셈이다.

    ◇대통령, 황제를 견(犬)으로? 이건 역모야!

    한자 문화권 나라들의 신문은 표의문자인 한자를 쓰다 보니 실수가 발생하면 단순한 오자 아닌 전혀 다른 뜻의 사건을 부른다. 이것도 필화(筆禍)라면 필화. 납으로 만든 활자를 하나 하나 뽑아 판에 심어서 조판하던 시절엔 여러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1950년대 대구매일신문과 삼남일보, 국민일보의 ''이승만 犬統領(견통령)'' 오기 사건이 대표적 사례. 대구매일은 사장 구속, 책임편집자 사임, 삼남일보는 편집자 구속, 정간조치 되었다. 부산일보는 1954년 대통령에서 ''통(統)''자가 빠져 ''이승만 대령''으로 강등시켰다. 이런 사건으로 다들 견(犬)자를 활자에서 없애버리거나 ''대통령''이란 활자를 하나로 묶어 썼다.

    하나의 판으로 주조하기도 했고 급하니 고무줄로 묶어놓고(띠활자) 쓰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하나의 판으로 만들어 둔 ''대통령''이란 활자판을 거꾸로 집어넣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통령 이란 활자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다보니 ''대통령''이란 활자는 몇 번이고 확인해 제대로 나갔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성 이(李) 위에 지푸라기가 묻어 ''계(季)승만 대통령''이 되어버리는 사건도 발생했다.

    1955년 3월 동아일보는 "고위층 재가 위해 대기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며 "괴뢰 휴전협정 위반"이라고 다른 기사 제목으로 뽑아놓은 활자 중 ''괴리''를 잘못 가져다붙여 "괴뢰 고위층"으로 나간 적이 있다. 고위층이라면 대통령이나 경무대 측근을 지칭하는데 괴뢰라니. 가판으로 360부가 찍혀 나간 뒤 정정했으나 해직, 사임, 한 달 정간 조치되었다.

    2011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원자바오 총리의 이름을 잘못 표기해 세계의 화제가 됐다. 원자바오를 한자말로 쓰면 ''온가보(溫家寶)''이다. 그런데 인민일보는 보배 ''보(寶)''자를 ''온가실(溫家室)''로 적어 온실 내지는 찜질방으로 만들어 버려 17명이 문책 당했다.

    시진핑 국가부주석도 ''다오진핑''으로 한자가 잘못 표기된 적이 있다. 다오는 간사하다는 뜻이 담겨 이것 역시 대사건. 시 는 한자로 익힐 ''습'', 그런데 이것이 간사할 ''조''로 바뀐 것이다. 중국중앙방송이 저지른 실수도 있다. 장쩌민 국가주석은 칭호에서 국(國)자가 빠져 가(家)의 주석, 집안 책임자가 되어 버린 적도 있다. 또 강택민에서 ''택'' 자가 비슷한 모양의 ''괴(怪)''로 바뀐 적도 있다.

    인민일보의 전과는 또 있다. 1990년대 ''전국인민대회''에 들어가는 클 ''대(大)''자를 개 ''견(犬)''자로 내보내는 만용을 저질렀다.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들의 정기국회를 ''개들의 모임''이라고 쓴 셈인데 복날을 앞둔 개들의 대책회의였나?

    일본도 피해갈 수 없다. 1980년대 요미우리신문의 똑같은 실수다. 메이지대제(明治大帝)가 아닌 ''메이지견제(明治犬帝)''로 표기하여 역모 아닌 역모를 감행했다.

    신문은 아니고 출판사 이야기인데 어떤 출판사의 사장은 1980년대 초반 책 교정을 보다가 ''이순자 여시''를 발견했다고. ''여사'' 와 ''여시''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1951년 대구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식 일화다. "지금부터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겠다"고 식순을 진행해 하객들이 박장대소했다. 주인공은 주례를 맡은 당시 허흡 대구시장이었다.

    ◇신문은 그렇다치고 방송 너마저

    다음은 방송.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당시 스포츠 중계 아나운서들은 중계방송 중간 중간 대통령께서 축구를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지 운동장 시설을 확충하는데 얼마나 도와주셨는지, 이렇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게 대통령의 치적 덕분이라는 등등 대책 없는 찬사를 마구 남발했다. 그러다 대통령이 우연히 중계방송을 듣고 기분이 좋으면 벼락 출세길이 열렸다고 한다.

    어떤 아나운서는 박정희 대통령 찬사가 입에 배어 전두환 대통령으로 바뀌었는데도 "... 네,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박정희 대통령" 했다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씨가 보안사령관에서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모 방송 아나운서는 뉴스에서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을 적극 지지할 것으로 보입니다"를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을 적극 저지할 것으로 보입니다"로 잘못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할까.

    4년 전인 2008년 여름 모 텔레비전 방송 자막 뉴스. ''이명박 대통령''을 ''이멍박 대통령''으로 잘못 표기한 것. 그런데 그 다음에는 ''이명박 대통렁''으로 잘못 적어 연발 사고가 났다.

    신문이나 책을 만들며 글을 쓴 사람, 편집자, 교정 담당 등 교정을 1교 2교 3교 몇 번이고 본다. 아무리 완벽을 기하려 해도 마지막 하나의 오자는 절대 찾지 못해 마지막 오타는 하나님도 못 찾는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이것을 노어지오(魯魚之誤)라고 한다. 한자의 ''노'' 와 ''어''가 모양이 비슷해 자칫 틀리기 쉽다는 의미로 글씨의 잘못 쓰는 실수를 경계하는 말이다.

    그런데 과거 중국에는 일부러 ''오자''를 남겨 통치자를 비웃는 지식인도 많았다 한다. 허리를 자르는 참형과 삼족, 구족을 멸하는 혹독한 처형이 내려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통치자를 조롱했다니 놀랍다.

    "빈 산 빈 계곡에 황금 만 냥과 미인 한 명이 있는데, 누군가 그대에게 마음이 동(動)하지 않겠는가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

    이렇게 ''동한다''를 39번을 적어 내려가는 시(詩)로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들어선 청 왕조를 규탄했던 명나라 말의 문인 김성탄의 글이다. 그런데 겁낼 권력이 없는 21세기의 언론인이 곡학아세로 정치권에 줄을 대 사장 한 자리, 감사 한 자리 얻고, 그것도 자랑이라고 떵떵거리다니 부끄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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