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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끌어안고 가야 한국의 미래도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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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동포 끌어안고 가야 한국의 미래도 밝아"

    [노컷피플] 불법체류자서 여행안내자로 골드차이나 대표 문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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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중국동포 및 재외동포들이 상생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방향을 하루빨리 제시해야 한다."

    골드차이나 문경철(41) 사장은 지난 1994년에 고용노동부 산업연수생으로 당시 스물다섯의 젊은 꿈을 가지고 한국땅을 밟았다. 김포에 도착하자마자 구미로 내려가 건축자재와 물탱크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하지만 입사한지 3개월 만에 회사가 부도를 맞았고, 친인척도 없는 지방에서 한동안 힘든 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단순노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10여년을 공사현장에서 보냈다. 전국을 다니면서 천정공사를 했다. 새벽에 현장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당시 문 사장에게 음악과 낚시는 버팀목이었다.

    문 사장은 "9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고 중고등학교 때엔 기타도 치는 등 악기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다"며 웃는다.

    문경철 사장은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3~4개월에 한 번씩 미화 5000달러를 보냈고 부모님이 그 돈으로 집을 장만하고 생활형편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보람으로 암울한 시기를 버텨냈다"고 말했다.

    ◈ 불법체류 10년, 그리고 결혼과 동시 한국국적 취득

    문경철 사장은 올해로 한국에 입국한지 15년이 됐다. 10년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생활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문 사장은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과 같은 삶이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문 사장에게 불법의 굴레를 벗고 안정을 찾는 계기가 찾아왔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 서로 위로해 주면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지금은 1남1녀를 둔 가장이 됐다.

    문 사장은 "당시 아내는 한국국적을 취득한 상태였다"면서 "한국 국적자와 결혼을 하면 불법체류자에서 합법적으로 귀화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고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았다"고 말했다.

    사실 문 사장은 한국국적을 취득하기위해 출입국에 몇 차례 신청을 했지만 그때마다 서류보완이 필요했고 필요한 서류를 찾기가 여의치 않아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사무실 책꽂이에 문씨 집안 족보를 보관하고 있는 문 사장은 집안의 역사를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전해줄 생각을 가지고 있다.

    "1980년에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경상도 참외가 많이 나는 경북 성주가 고향이고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나 결혼을 했다. 중국 하남성 남양사법학교 졸업하고 중국에서 잠시 사회생활을 했다"는 문 사장은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중국동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국말에 능통했다.

    그는 "흑룡강성 수하시는 경상도 출신들이 많았고, 연변쪽은 함경도 평안도 출신들이, 길림성쪽은 일부 전라도 출신 동포들이 집단거주를 하고 있다"면서 "부락과 부락은 20~30km 떨어져 있고, 한국에서 친인척들이 같은 동네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 음악이 좋아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결혼 전에 막노동을 하다 일산 모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있어 주말에 교회를 갔는데, 그 교회는 매주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고 마침 봉사 활동하는 성가대 밴드에 드럼을 치는 사람이 없어 수소문하고 있었다. 드럼도 치고 봉사활동도 하고 싶어 선뜻 밴드에 참여했다."

    문 사장은 그때부터 지방 공사현장에 가는 경우를 빼고는 늘 봉사활동을 했고 그러면서 친구가 생기고 사회와의 소통에도 점차 자신감이 생겼다.

    교회보컬주자로 많은 교인들이 따뜻하게 반겨줘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고 지난날을 돌이켰다.

    "지난주에는 인천광역시 주최로 열린 차이나타운 축제 개막 공연에 초청을 받아 공연도 가졌다.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사회자로, 기타리스트로, 드럼주자로 여기저기 많은 행사장에서 불러줘 예약을 해야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 사장은 "큰 딸이 아버지의 음악적 소질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피아노도 잘 쳐 이번 서울시와 구로구에서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뽑는데 당당히 합격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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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한국에서 중국과 세계로

    문 사장은 결혼과 동시에 불법체류자 신분에서 인테리어 사장으로 안정된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도 무척 잘 됐다고 한다.

    그러다 아내가 여행사 직원으로 일을 하면서 배운 실력으로 여행사를 하겠다고 해서 잠시 1년 정도 도와줄 생각으로 여행사업을 시작했고, 결국 인테리어 사업은 후배에게 물려주고 여행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문 사장은 개인사업자에서 법인대표로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도 합법적으로 마련했다.

    "여행 사업은 크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사업으로 나눠진다"는 문사장은 "현재 아웃바운드를 많이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기업·개인간 이벤트·개발사업에서 여행상품과 투자상품을 묶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한중간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문 사장은 "최근 중국의 한류열풍과 성형열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이 교류를 하고 있는데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여행 등 다양한 부문으로 더욱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정부는 재외동포를 끌어안고 세계로

    문 사장은 "대한민국의 출산률은 작년 186개국 중 185위에 머물고 있으며 186위는 홍콩이고 홍콩은 중국이다. 대한민국은 결혼 정년기를 넘어선 독신들이 늘어나고 있고, 노인인구의 급증으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지난 4월27일자 ''노컷뉴스 중국''을 보면서 중국동포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책이 크게 3가지로 압축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H-2(방문취업)비자 정책은 방문취업비자 연장, H-2비자를 C-3로 입국시켜 재외동포기술교육을 시키는 방법, 마지막으로 재외동포 비자를 주는 방식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문 사장은 " H-2비자 만료시 다시 C-3·D-4로 해서 H-2비자를 주겠다고 하는 것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고, F-4비자를 주는 것도 현재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며 "제조업이나 농축산업 어업 등의 일을 하는 중국동포들은 F-4비자를 받기위해 종사하고 있고 건축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자와도 분명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문 사장은 "처음 H-2비자의 만기자로 연장을 해주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이것 역시 좋은 방법은 아니다"며 "결국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단기 정책일 뿐,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경철 사장의 해법은 단호했다.

    "앞으로 갈수록 전 세계뿐만 아니라 중국역시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인 제조업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력차이가 몇 년, 몇 시간으로 줄어들고 오히려 중국이 앞서가기 시작한 분야도 많다. 재외동포들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수 있고 중국동포를 끌어안을 수 있는 정책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중국동포 및 재외동포들과 상생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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