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주목 받은 답변 중 하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내민 덕담이었다. 관련한 2개의 질문 모두에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답변에 잠시 뜸을 들였던 윤 대통령은 한 전 비대위원장과의 불화설을 일축하는 데 힘을 실었다.
다만 한 전 비대위원장의 정치권 등판 이후, 공개적으로 확인된 '윤·한 갈등'만 2차례이고, 한 전 비대위원장이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의 초청을 거절하며 양 측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이날 윤 대통령 발언을 두고 당내에서는 갈등 확산을 피하기 위한 이례적 표현이라는 분석부터 한 전 위원장의 '홀로서기' 움직임을 경고하려는 것이라는 관측까지 다양한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尹, 韓 질문에 옅은 미소 "앞으로 정치인 길 잘 걸어나갈 것"
윤 대통령은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총선 전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나. 한 전 위원장과는 과거에 비해 소원해진 관계인 건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 직후 옅은 미소를 보이던 윤 대통령은 "비서실장, 원내대표, 한 전 위원장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바로 그 문제는 풀었다"고 말했다. 거취 관련 이야기가 오고간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해결됐기 때문에 별도로 더 언급할 내용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어 윤 대통령은 "(오해는) 해소를 했고, 한 전 위원장은 정치 입문 기간은 짧지만, 주요 정당의 비대위원장 겸 총괄 선대위원장으로 총선을 또 지휘했기 때문에 이제 정치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잘 걸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총선 전후로 두 사람 사이 불편한 기류는 기정 사실로 여겨져 왔지만, 윤 대통령은 한 전 비대위원장과의 관계에는 이상이 없으며, 오히려 앞날을 응원한다며 덕담을 해준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다른 기자가 '오찬이 불발된 이후 혹시 따로 연락하셨거나 아니면 따로 연락이 왔나. 차후에 다시 만날 계획은 있나'라고 묻자 "저와 20년이 넘도록 교분을 맺어온 한동훈 위원장을 언제든지 만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또 윤 대통령은 "선거 이후에 본인도 많이 좀 지치고, 재충전이 필요할 것 같아 부담을 안 주고 기다리는 것이 맞지 않나 이렇게 생각한다"며 "언제든지 식사도 하고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초청 거절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을 두고, 당내에서 한 전 비대위원장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윤 대통령은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한 전 비대위원장을 옹호해준 셈이다.
관계 회복 징후는 없는데, 손 내민 尹, 韓 홀로서기 운명은?
연합뉴스이처럼 윤 대통령이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을 두고, 당내에서는 아직 두 사람의 갈등이 해소됐다는 명확한 정황이 없기 때문에,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의례적 발언'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명품백 논란부터 비례대표 사천 논란까지 양측의 축적된 갈등을 풀었다고 볼 만한 정황도 기류도 없다. 윤 대통령도 직접 연락한 것은 없다고 인정한 것 아니냐"라며 "질문을 받은 윤 대통령이 좋은 말로 원론적으로 답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윤 대통령 입장에서 윤·한 갈등이 계속 노출되고 부각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당내 혼란상을 수습하기 위해 나온 덕담으로 봐야지 실제 두 사람의 관계가 과거로 돌아갔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20년 이상'이라는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언제든 만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한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당선인은 "단순한 친분 관계를 넘어 서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라며 "서운한 점은 언제든 쉽게 풀 수 있다고 손을 내민 것인데, 그럼에도 한 전 비대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대로 수도권 원외 당협위원장은 "정치인 한동훈을 인정해 준 그 자체를 보면, 자신의 선택에 알아서 책임을 지라는 의미로 읽힌다"며 "자신과의 사적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 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는데, 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선택을 맡긴 셈"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