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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진통 예견됐다…헌재판결 후 국회 토론회 단 '3번'



사건/사고

    '낙태죄' 진통 예견됐다…헌재판결 후 국회 토론회 단 '3번'

    • 2020-10-08 05:20

    정부, 임신 14주 낙태 허용 등 개정안 입법예고
    사회 각계 반발…"낙태죄 유지" vs "낙태 사실상 허용"
    "의견수렴 과정 없었다"…국회 공개 토론회 3회 불과

    (사진=자료사진)

     

    정부가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사회 각계에서는 반발이 빗발치고 있다. 무엇보다 큰 파장을 부를 수 있는 낙태와 관련한 법 개정 작업을 하면서 '공론화' 과정을 제대로 거쳤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다.

    정부는 그간 긴밀하게 여론 수렴을 했다고 하지만 여성단체, 의료계 등은 소통 문제를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는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관련 공개 토론회를 단 '3번' 개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입법예고 기간인 40일 동안 각계 의견수렴이 예정돼 있지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촉박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민사회각계 "의견 수렴 과정 없었다"…국회 토론회는 '3번'

    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5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관련 쟁점 및 입법과제' 보고서에서 헌재 결정 이후 낙태죄와 관련한 법 개정 작업에 있어 세부 사안별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에는 "낙태에 대한 인식과 관점은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그 간극이 커서 좀처럼 사회적 합일점을 도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제한된 시간 내에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기초한 법률개정이 가능하려면 국회가 중심이 되어 토론회·공청회 등 논의의 장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라는 조언이 담겼다.

    현재와 같은 상당한 사회적 진통을 예견하면서 예민한 사안인만큼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나서서 의견 수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 4월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약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낙태죄 개정 등 후속조치와 관련한 공개 토론회가 열린 것은 단 '3번'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토론회는 △지난해 5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 등 주최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그해 6월 민주당 인권위원회 주최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입법과제' △그해 7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박인숙 의원실 주최로 '낙태죄 헌재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정책토론회' 등으로 파악됐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4월 낙태죄와 관련한 법안 발의를 서두르기보다 여성계·의료계 등의 의견을 먼저 수렴하는 '속도조절'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올해 8월 "(낙태죄와 관련한) 당정 차원의 공식 논의는 아직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여당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게 쉬운 법안이 아니라서 모두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며 "국회가 침묵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라고 밝혔다.

    국회가 침묵하는 동안 청와대와 정부는 조용하게 움직이는 행보로,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여성계·의료계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민문정 공동대표는 통화에서 "소통이 없었고,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요구를 했을 때 전혀 반응이 없었다"며 "정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다른 데서도 요구하는데 안 만나고 있다'라고 했다. 입법예고안도 이번에 처음 본 것"이라고 밝혔다. 위은진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여성인권위원장 역시 "낙태죄 비범죄화라는 여성계의 일치된 의견은 전혀 반영이 안됐고, 여성가족부 역시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헌재 판결 이후에 두차례 만난 적은 있지만, 의료계와 (정식적인) 회의는 한번도 한적이 없다"며 "올해도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견수렴을 최대한 했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공청회나 간담회는 법무부나 복지부 소관이라 공식적으로 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우리도 전면 비범죄화 입장이라 이를 요구했고, 여성계와 수시로 소통해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해 5월부터 10월 사이 정부부처 합동으로 각계와 간담회를 가졌다"며 "올해 7월초에는 법무부 장관이 여성계 면담을 하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낙태죄 위헌판결이 난 지난 2019년 4월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포옹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낙태죄 유지했다, 전면 비범죄화 해야" vs "사실상 낙태 허용"

    이번 입법예고안은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으로 임신한 여성의 임신 유지·출산 여부의 결정 가능 기간을 '임신 24주 이내'로 설정해놓고, 이를 다시 임신 14주·24주로 구분한 것이 골자다. 14주는 여성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고, 15~24주 이내는 사회적·경제적인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헌재는 작년 4월 낙태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등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정한 '14주 기준'은 당시 헌재의 일부 의견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러한 입법예고안을 두고 낙태를 반대했던 측은 "사실상 낙태를 허용했다", 찬성했던 측은 "낙태죄를 유지했다"고 주장하는 등 양측 모두 반발하고 있다. 낙태 시술을 해야 하는 의료계와 그간 낙태를 반대해왔던 종교계 역시 비판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민문정 공동대표는 "여성들이 낙태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 경제적, 문화적 주권에 대한 역할을 국가가 하지 않으면서 낙태 결정만으로 여성을 처벌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성명을 내고 "임신중지는 처벌받아야 할 범죄가 아니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의료 서비스로서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라며 낙태의 전면 비범죄화를 촉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역시 성명을 통해 "정부는 낙태죄의 사실상 부활이 아니라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권리보장적 법과 제도를 구축했어야 했다"며 "법무부의 형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여당 간사인 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간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역시 입법예고안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낙태죄에 대해 위헌판결이 난 지난 2019년 4월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단체가 선고 결과 소식을 들은 뒤 입장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반면 낙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인 '행동하는 프로라이프'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낙태의 95.3%가 임신 12주 이내에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14주라는 기준에 살아남을 태아는 없다"며 "태아와 엄마 모두에게 너무 야만적"이라고 비판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이명진 소장 역시 "국민의 생명에 대해 경시하는 국가의 태도"라며 "생명을 존중하는 정권인지 경시하는 정권인지 결정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개신교계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은 "무분별한 낙태 합법화를 통해 생명 경시를 법제화할 것이 분명해 강력히 반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의료계에서는 '14주 기준' 자체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한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14주 이내에 수술하는 경우가 거의 90% 가까이인데, 정부 법안은 유명무실하다"며 "모성 건강을 봤을 때 가장 안전하게 수술할 수 있는 주수는 10주 정도"라고 밝혔다.

    한편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낙태를 허용하되 가능한 시기를 제한하는 국가는 미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 61개국이며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는 핀란드, 일본 등 13개국으로 나타났다. 임부의 생명을 구하거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는 콜롬비아, 이스라엘 등 59개국, 임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모든 낙태를 불법으로 하는 국가는 66개국이다.

    낙태가 가능한 기간을 정해놓은 국가 중에 10주는 터키·포르투갈, 12주는 오스트리아·몽고, 14주는 벨기에·미국, 18주는 스웨덴, 24주는 싱가포르·영국 등으로 나타났다.

    입법조사처는 "외국 입법례와 법률 개정 동향을 참고하여 우리 실정에 적합한 법제 정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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