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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코네 역전마라톤에서 ''어깨띠''의 가치는?



스포츠일반

    일본 하코네 역전마라톤에서 ''어깨띠''의 가치는?

    일본서 매년 1월 2~3일 개최…''인생은 함께 하는 것'' 의미 일깨워줘

     

    역전마라톤이란
    역전 마라톤은 주자와 주자가 어깨띠(tasuki)를 건네받는 마라톤 릴레이를 말한다. ''역전''(ekiden)은 station(駅)과 transmit(伝)가 합쳐진 말로, 역전 마라톤 강국 일본에서 처음 유래됐다. 역전 마라톤은 1917년 요미우리 신문이 일본의 도쿄 수도 이전을 기념하기 위해 3일간 교토~도쿄 508km를 달리는 대회를 개최한 것이 시초. ''역전''이라는 말은 당시 요미우리 신문 토키 제마로 사회부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때 일본은 길가를 따라서 역이 일정한 간격으로 위치해 있었는데, 역전 주자들은 역과 역 사이를 달렸기 때문이다. 특히 하코네 대학 역전 마라톤은 역전마라톤의 꽃.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유학생 토요후크 마이(32) 씨는 "TV로 하코네 역전 마라톤을 자주 시청했다. 여러 사람이 같이 힘을 내 달리면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게 매력적이다. 뛰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언제라도, 언제까지고 기다려주는 벗들이 있엇다. 역전경주는 그런 경기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미우라 시온)

    [BestNocut_L]하코네 역전 마라톤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이벤트로, 매년 1월 2~3일 이틀간 일본 도쿄~하코네를 왕복하는 대학 역전경주(요미우리 신문사 개최)다. 1920년 1회 대회가 열렸고, 올해 85회 째를 맞은 역사깊은 대회. 전쟁 직후에도 선수들은 어깨띠를 이어받으며 하코네 산 정상을 향했다.

    출전자격은 간토학생육상경기맹(도쿄 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사이타마, 지바, 가나가와 등 6개 현) 소속 대학팀인데, 치열한 예선을 거쳐 1월 2~3일 본선에 참가할 수 있는 팀은 10곳. 총 거리는 217.9km(왕로 108.0+귀로 109.9)로, 1~10구간을 10명의 주자가 이어달린다. 10위 안에 들어야 다음해 본선 자동 출전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경쟁이 뜨겁다.

    대회 기간 중 길거리는 응원물결로 넘실댄다. 참가대학의 응원부는 대형깃발을 연신 흔들며 목청껏 응원가를 부르고, 도로를 몇 겹으로 둘러싼 시민들은 힘찬 박수로 선수들을 독려한다. 87년부터 TV로 일본 전역에 생중계되는 하코네 역전 마라톤의 시청률은 25~30%로, 일본 연간 TV 시청률 ''베스트 10'' 단골손님이다. 그렇기에 하코네 역전 마라톤은 대학 육상선수들의 꿈이며 동경이다.

    황규훈 대한육상연맹 전무는 "일본 간토지역 대학 육상선수들은 이 대회에 나가려고 1년 내내 준비한다"며 "올해 85회째를 맞은 전통있는 대회라서 우승하면 선수, 학교 모두 자부심이 크다. 신정연휴에 TV로 생중계되기 때문에 학교 홍보에도 좋은 기회"라고 했다.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하코네 역전 마라톤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아프리카 용병을 데리고 온다. 물론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보다 스피드가 월등하기 때문에 대회에는 팀당 1명만 뛸 수 있다. 황 전무는 "용병은 일종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준다. 함께 뛰면서 레이스의 전체적인 스피드를 향상시킨다"며 "일본은 이 대회를 통해 자국 선수들의 스피드를 업그레이드하고, 장거리 저변을 넓히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코네 역전 마라톤의 가장 큰 미덕은 혼자가 아닌 함께 달린다는 것이다. 주자들은 어깨띠를 이어받으며 흥분과 일체감을 맛보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두가 온힘을 다해 노력하면서 달리기도 마음도 서로 통한다. 10구간의 모든 선수가 달리지 않는 한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싸움. 인생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소중한 가치를 선수들은 달리면서 배운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하코네가 아니다. 달리는 것으로만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어딘가 더 멀고, 깊고, 아름다운 장소. 지금 당장은 무리더라도 난 언젠가 그 장소를 보고 싶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달릴 것이다.

    ◈ 토요대 첫 우승 "서로 믿었기에"

     

    하코네 역전 경주는 우리 모두의 꿈이 되었지. 나는 달리는 게 재밌어. 힘들어도 즐겁고 너희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가슴 설렌다고.

    "우승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선수들이 연습을 묵묵히 소화해낸 후 실력 이상으로 잘 달려줬다. 서로를 믿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사토 시사시 감독 대행)

    "내게 어깨띠가 건네졌을 때 우리팀이 2위 팀을 1분 26초 앞섰다. 내 차례가 됐을 때 거의 울 지경이었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서 부담이 많이 됐다. 하지만 팀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줬다" (료 타카미/4학년, 앵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더 강해지고 싶다"(키사와바라 류지/1학년, 대회 MVP)- 이상 요미우리신문 인터뷰

    지난 1월 2~3일 이틀간 열린 제 85회 하코네 역전마라톤에서 토요대가 첫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기록은 11시간 9분 14초. 2위 와세다대를 41초 차이로 제쳤다. 5구간까지 1위를 달리던 토요대는 6구간에서 와세다대에 추격을 허용해 18초 뒤졌다. 그러나 8구간에서 다시 45초 앞섰고, 그후론 한 번도 리드를 빼앗기지 않았다.

    대회 전까지 토요대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주장 오니시 하지메가 여고생 성폭행 의혹으로 체포됐고, 감독 가와시마 신지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10명의 주자 중 6명이 1~2학년 초짜들. 그러나 토요대는 악재를 딛고 67번째 도전 만에 하코네 역전 마라톤 첫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혼자가 아닌 함께 달린다는 것. 바로 ''어깨띠''의 힘이다.

    달리기란 힘이다. 스피드가 아니라 혼자인 상태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강인함이다. 취향도 살아온 환경도 달리는 속도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달린다는 고독한 행위를 통해 한순간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이어지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 용병들 "어깨띠를 둘렀기에"

    어깨띠를 전하기만 하면 된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해도 상관없다. 구간 기록에 한참 못미치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한 달리기다.

    80년대 이후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하코네 역전 마라톤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다. 하코네 역전 출전 첫 용병 선수는 케냐 유학생 조세프 오토리(야마나시 가쿠인대학교). 오토리는 89년 대회에서 2구간을 뛰었는데, 앞서가던 7명을 제친 그의 역주 덕분에 소속팀은 88년 11위에서 89년 7위로 도약했고, 10위까지 주어지는 다음해 본선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92년에는 팀을 하코네 정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후 다른 대학팀에도 아프리카 학생 스카우트 바람이 거셌다.

    케냐 용병 다니엘 지타우도 그런 경우. 지타우는 역전팀의 전략 향상을 위해 니혼대학교로 유학왔다. 그는 2008년 하코네 역전 마라톤에서 각 팀의 에이스가 뛰는 영예의 2구간(23.2km, 쓰루미~요코하마~도쓰가)을 달렸다. 19번째로 어깨띠를 이어받았지만 15명을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그의 기록은 1시간 7분 27초로, 대회 역대 전 구간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지타우는 경기 후 재팬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요코하마 곤타자카 언덕을 달릴 땐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팀과 다음 주자를 위해 견뎌냈다. 그래야 다음 주자가 더 유리한 순위에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나는 어깨띠를 두르고 달렸다. 어깨띠는 모든 팀 멤버들의 정신과 니혼대학교 모든 학생들의 기대를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덧붙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사무엘 완지루(케냐)도 하코네 역전 마라톤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 일본으로 유학온 완지루는 고교 역전마라톤은 물론, 도요타 자동차 육상팀에 들어간 후에는 직장대항 역전경주에도 꾸준히 참가했다.

    완지루의 매니저는 풍부한 역전 마라톤 참가 경험이 완지루가 세계 톱클래스 러너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재팬타임즈에서 밝혔다.

    "케냐 선수들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레이스를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완지루는 역전을 통해서 레이스를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목표를 향해 인내하는 걸 배웠다고 믿는다. 역전은 팀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연결됐다."

    혼자가 아닌 함께 달린다는 것. 바로 ''어깨띠''의 힘이다. 그리고 ''어깨띠''를 잇는 건 서로간의 믿음을 주고받는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는 인생이고 그 인생은 홀로 가는 여정이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인생. 어깨띠를 이어받으며 전개되는 역전경주는 인생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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