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4·19때 경찰쏜 총에 맞은 15세 소녀가 한 말은?



문화재/정책

    4·19때 경찰쏜 총에 맞은 15세 소녀가 한 말은?

    4·19 생생히 기록한 연대생 자료 문화재된다
    김달중, 안병준 교수 학생시절 기록한 4·19 자료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이 조사한 '3.15 의거' 당시 마산 성지여고 1학년 김정희(15) 학생의 부상자실태조사서(사진=문화재청제공)

     

    #1."허울좋은 자유는 필요치 않다. 민주주의 사수한다"

    1960년 4·19 혁명의 기폭제였던 '3·15 의거' 당시 마산 성지여고 1학년 김정희(15) 학생은 북마산파출소 앞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두개골 관통상을 입고 9일동안 의식불명상태였다.

    당시 만난 경찰관들은 무자비했으며 시민들은 격분해 투석전을 벌였다고 김정희 학생은 전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해 "허울좋은 자유는 필요치 않다. 민주주의 사수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2."이 XXX, 너희들이 데모하면 대한민국이 망할 줄 아느냐"

    4·19 집회에 참여한 당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2학년 이자평(21)은 경찰에 연행돼 곤봉으로 맞았다. 그는 연행당시 "정정당당하나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울 고문이 있을지 두려웠다"고 전했다. 석방되고 나서도 주모자 색출이 두려웠다고 했다.

    #3."군인들이여, 그대들의 총부리를 38선으로 돌려라"

    4·19 당시 목격자였던 권대홍(26)씨는 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쏘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보며 "잔인하고 가혹한 나머지 총이 없음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군인들에게는 "군인들이여, 그대들의 총부리를 38선으로 돌려라"고 했다.


    이같은 사실은 연세대학교 정외과 4학년 김달중, 안병준 학생이 4.19 혁명 직후 직접조사한 내용이다.

    4·19 혁명 이틀 후 두 학생은 '4월혁명연구반'을 조직해 조사에 나섰다. 이 활동은 한미재단 단장이자 호러스 언더우드의 친동생인 리처드 언더우드의 제의로 시작됐다. 김달중은 안병준과 함께 연구반을 만들어 4‧19와 관련된 기록과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미재단의 자금 지원으로 활동이 이뤄졌지만 한미재단 본부에서 허가 없이 진행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연세대 대학원 프로젝트로 작업을 계속했다. 김하태 원장과 홍이섭 교수, 조승순 박사가 '4월혁명연구반'의 지도교수를 맡았다.

    두 학생은 서울·대구·부산·마산을 다니며 정치에 대한 관심과 심정 등을 물었다. 특히 데모 사항 조사서에는 시위 참여 동기와 시간·장소는 물론 해산 시까지 충돌 과정도 기술됐다. 서울 뿐만 아니라 대구 2·28, 마산 3·15 시위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현존 유일 구술 자료로 알려졌다. 4·19 데모 목격자와 인근 주민 조사서, 교수 데모 실태조사서, 사후 수습사항 조사서, 연행자 조사서 등 9종으로 이뤄졌다.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이 조사한 4.19 목격자조사서(사진=문화재청제공)

     

    또한 이들은 기관에 의뢰해 4·19 혁명 이후 계엄사령관이 발표한 비상계엄포고문 12종을 비롯해 계엄 선포 1종, 훈시문 1종, 공고문 3종, 담화문 2종 등 19종도 기관에 의뢰해 수집했다. 이 자료를 보면 4월 19일 오후 5시에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이어 집회 해산·등교 중지·통행 금지·언론과 출판 통제·유언비어 유포 금지 공고문이 발표됐다. 이는 4월 혁명기 비상계엄 하의 사회상과 국가의 대국민 관리‧통제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후에 두 학생은 모교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가 됐다. 특히 두 사람은 당대에 없어질 수 있는 사료를 후세의 학자들을 위해 충실하게 남긴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수집한 자료는 10년 동안 비공개로 하고, 스스로도 개인연구 목적 등으로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두 대학생이 4·19 당시 상황 생생히 기록

    "정말 대단하다. 4·19 당시 대학생 두 명이 조직을 만들어 모두 직접 조사했다니.."

    이번에 문화재 지정 관련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이 자료들을 보고 흥분했다.

    이를 통해 1960년 정‧부통령 부정선거와 폭력으로 재집권 시도에 항거한 '2·28 민주운동', '3·15 의거' 등이 기폭제가 돼 일어난 4월 19일 전국 각지의 시위들, 그리고 계엄령으로 시위를 무마하려다가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으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정부 조치들,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무차별 발포와 폭행으로 인한 다수의 희생자 발생 상황 등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4·19 혁명 60주년을 맞아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를 비롯해 '학생 부상자 명단', '김주열 열사 사진' 등이 국가등록 문화재가 된다. 민주화 유산의 문화재 등록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민주화를 이뤄낸 역사적 현장을 기억하고 시사점을 짚어보기 위해 '4·19 혁명 문화유산'을 집중 발굴해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다고 9일 밝혔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자체와 유관기관 추천을 통해 4·19 혁명 관련 유물 179건을 발굴했고, 자문회의를 거쳐 7건을 등록 우선 추진 대상으로 정했다.

    '4·19 혁명 참여 고려대 학생 부상자 명단',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4·19 혁명 참여자 구술 조사서)',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4·19 혁명 계엄포고문)'는 상반기에 등록을 추진한다.

    '4·19 혁명 참여 고려대 학생 부상자 명단'은 4·19 혁명 전날인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시위에서 다친 사람 이름을 정리했다. 초안 2종과 이를 보완해 완성한 정서본 1종으로 구성된다. 여러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첫 번째 초안에는 부상 장소와 피해 정도가 상세히 기록됐다. 부상 장소는 안암동, 천일극장 앞, 국회의사당, 종로3가, 동대문경찰서 앞 등 다양하다. 학생 중에는 "천일백화점 근처에서 깡패의 몽둥이로 후두부를 맞고 실신(失神)"한 이도 있었다. 또 다른 초안은 한 사람이 쓴 것으로 판단됐다.

    4·19 혁명 참여 고려대 학생 부상자 명단(사진=문화재청 제공]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촬영한 김주열 열사 사진', '자유당 부정선거 자료', '이승만 사임서', '마산 지역 학생 일기', 동성고 이병태 학생 일기인 '내가 겪은 4·19 데모'도 우선 등록 추진 대상이다.

    김주열은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숨진 채 떠올랐는데, 1960년 4월 11일 허종 기자가 시신을 촬영하고 보도해 4·19 혁명을 촉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되면 법적 보호와 관리의 대상이 되며, 관련 기준에 따라 보수정비와 활용사업을 지원받을 수 있다.

    문화재청은 오는 17일부터 3·15 의거 발원지, 마산 시위현장 등을 기록물과 함께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EBS에 방영하는 한편 현대유산의 문화재 가치와 보존 방안을 논의하고 민주화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학술대회도 연다. 연세대학교 '4월혁명연구반'이 직접 수집한 4‧19 관련 자료들을 최초로 공개하는 특별전도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린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