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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파리는 언제였을까



문화 일반

    가장 아름다운 파리는 언제였을까

    • 2020-01-28 13:52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 3권 동시 번역 출간

    (사진=연합뉴스)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은 시간을 되돌려 1920년대의 파리에서 피카소, 달리,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등 꿈에도 그리던 거장들과 어울리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대략 한 세대 앞서는 '벨 에포크'를 동경하던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와 함께 다시 시간을 거슬러 '벨 에포크'로 떠난다. 그러나 '벨 에포크'를 살아가던 예술인들은 진정한 예술이 피어난 르네상스 시대를 찬양하며 그 시대로 가고 싶어 한다.

    우디 앨런은 이 영화에서 누구에게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야말로 '황금시대'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에게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의 파리가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은 분명한 듯하다. 최근 번역 출간된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현암사)는 이 시대 파리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예술사 전문가 메리 매콜리프가 쓴 이 책은 3권에 걸쳐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으로 파리가 폐허로 변한 1871년부터 대공황이 전 세계를 휩쓴 1929년까지를 다룬다. 위고, 졸라, 마네, 모네, 세잔, 드가, 르누아르, 피카소, 마티스, 달리, 모딜리아니, 쇼팽, 라벨, 스트라빈스키, 헤밍웨이, 르코르뷔지에 등 수많은 예술가의 파리 생활과 상호 교류, 그들의 작품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리코뮌에서 제1차 세계대전,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세계사도 당연히 관심거리다.

    제1권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는 직역한 뜻이 '아름다운 시대'인 '벨 에포크' 이야기다. 아직 전 세계 예술가이 파리로 몰려들기 전이어서 주인공들은 주로 프랑스 작가, 미술가, 음악가들이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패배는 프랑스 예술가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엄마의 품속 같던 파리는 만신창이가 됐고 보수반동의 기류에 밀려 자유, 평등의 이념은 휴짓조각이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의지는 예술가들에게 오히려 예술적 에너지를 고양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모네와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기성 화단의 무시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자신들만의 화풍을 정착시켜 갔고 음악 분야에서는 드뷔시가 당시의 엄격하고 전통적인 화음에 도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가 될 탑을 세운 에펠 역시 화강암, 벽돌 등 기존의 자재 대신 현대적 재료인 철로 된 다리와 건물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문학에서는 이미 확고한 거장으로서 민중의 정신적 지주로 서 있던 빅토르 위고, 그리고 그를 존경하기는 하지만 이미 시류에 맞지 않는 인물로 간주하며 넘어서려고 한 에밀 졸라 같은 작가들이 혼란한 사회의 지성으로서 시대의 정신을 포착하기 위해 애썼다. 특히 졸라는 부당하게 스파이로 몰린 유대인 군인 드레퓌스 대위를 위해 '나는 고발한다'를 쓰며 불의에 맞서 싸우는 데 헌신했다.

    제2권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은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피카소가 190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떠나 파리의 새 철도역 오르세 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그림 한 점이 만국박람회에 걸린 것을 기뻐하던 열아홉 풋내기 피카소는 이미 그때부터 자화상에 '나, 왕'이라고 쓸 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다.

    피카소뿐만 아니라 이사도라 덩컨, 스트라빈스키, 샤갈, 장 콕토 등 프랑스 안팎의 많은 예술가가 '빛의 도시' 파리로 이끌리듯 찾아온다. 파리에는 영감을 주는 미술관들과 예술적 고민을 나누는 동료들, 그리고 돈 많은 후원자가 있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이 예술가들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하게 된 것도 이때다. 가난한 화가나 시인들이 거주하던 몽마르트르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은 '바토 라부아르(세탁선)'라고 불렸다. 당시 센강에 떠 있던 세탁선(洗濯船)과 외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피카소와 막스 자코브, 모리스 드 브라맹크, 키스 반 동겐, 모딜리아니 등이 이곳에서 꿈을 키웠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들의 창작 열정은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결정적으로 제동이 걸린다. 조르주 브라크, 장 르누아르, 기욤 아폴리네르와 같은 많은 예술 청년이 전선에 투입됐다.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군복을 만들고 마리 퀴리는 부상병들을 위해 이동식 엑스레이 팀을 꾸렸다. 당연히 예술을 하기도, 작품을 팔기도 어려웠다.

    제3권 '파리는 언제나 축제'는 다시 한번 맞은 파리의 황금기를 이야기한다. '황금시대', '재즈 시대', '아우성치는 시대', '광란의 시대'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만큼 역동적인 시대였다. 4년간 이어진 세계대전으로 예술은 멈춰 선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과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도 바뀌었다.

    샤넬이 패션계에서 르코르뷔지에가 건축계에서 보여준 성공은 급변한 사회를 대변한 예다. 파리가 맞게 된 큰 변화 중 하나는 전쟁 후 파리를 거쳐 간 미군의 영향으로 수많은 미국인이 밀어닥친 것이었다. 헤밍웨이와 만 레이, 조세핀 베이커, 콜 포터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유분방한 파리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를 바라며 조국을 떠나왔고 나름의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만 레이의 사진, 장 르누아르의 영화, 모리스 라벨의 녹음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예술 분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극복하고 평화와 안정이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 이 시기는 대공황의 엄습과 함께 끝장이 났다. 파리로 몰려든 이주자들은 싼 집을 구해 이사하거나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어디로 가든 지난 10년의 추억을 가지고 갔다. 돌아보면 영광스러울 만큼 근심 없고 명랑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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